이름들

영감에 관하여

by 치슬로

'영감 배달 서비스' 란 것을 처음으로 고안하면서 하나의... 아니 여러가지 질문에 부닥치게 되었다. 도대체 영감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을 어디에서 얻는가? 어떻게 모아서 줄 것인가? 그것이 나 이외의 다른 이에게도 똑같이 영감인가?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 속에 일단 내 영감부터 정의하기로 했다.


스타트업 업계에서 상처뿐인 영광같은 '제너럴리스트' 가 되기를 거부하고, 스페셜리스트가 되기로 결심하고 나서 내가 고른 것은 'PM' 이었다. 내가 했던 일들 중에 가장 즐겁고 재미있었던.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이 분야를 파고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어느 순간 나를 가장 행복하고 즐겁게 하던 것들이 내 속에서 서서히 풍선 바람 빠지듯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 위에 배워야 할 것들, 잘 해야 할 것들, 그를 위한 방법론들만 쌓아 놓으려니 당연히 메마른 땅에 애먼 씨앗만 뿌려대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뉴스레터에서 올리비아 랭의 <외로운 도시> 소개 글을 보게 된 나는 그때까지 읽던 모든 PM 관련 책들과 아티클을 때려치고, 급속도로 이 책에 빠져들어가기 시작했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서부터 고독의 근원을 추적해 들어간 이 책은, 그레타 가르보의 '걷기'와 낸 골딘의 'the ballad of sexual dependency' 를 거치며 여성이 '응시' 되지 않고 자유롭고 고독하게 도시를 활보할 권리와 성적 자유에 대해 논하고, 스스로를 끝없이 소외시켜 그 삶을 예술로 만들어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내고 있었다.


그런데 나를 가장 그 책에서 설레게 했던 포인트는 이름들이었다. 내가 알지 못했던 이름들과 그 이름들이 펼쳤던 과거의 향연들. 뉴욕 부두와 팩토리와 워싱턴 스퀘어까지 도시의 속살 곳곳에서 스쳐가는 몸짓들과 관계를 해석하기 위한 시도들. 그러니까 그 위험한 시도를 했던 사람들의 이름을 만날 수 있단 것이었다. 그 이름들은 현재에는 대부분 물리적인 형태, 그러니까 살아있는 사람으로서 존재하지 않고 미술 작품이나 사진이나, 그의 업적들을 찬양하고 기리고 비판하는 글들 속에서만 현신할 뿐이다. 그런데 난 왜 그게 제일 좋았을까. 뉴딜이란 급변하는 지형이자 찬란한 미래에 대한 약속들, 히피 문화들, 이러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고도성장기의 감성들을 가진 시대에 살아갔던 사람들이자, 한편으로 암약하는 여성혐오와 소수자 혐오, 관습에 대해 저항하고 좌절하는 성격의 캐릭터는 이제 다시는 볼 수 없기 때문인가. 되어야만 하는 것들이 된 사람들이 거기 있었다. 나는 이 시대에 그리 많이 저항하는 인물은 아니라 생각하지만, 그저 예술에서 어떠한 가능성들을 찾고자 했던 이름들을 볼 때엔 그 이름들을 전부 그러모아 기억하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러모은 과거의 이름들 중에 나를 더욱 아프고 도전하게 하는 이름들은 특히나 전혜린과 김명순, 나혜혜석, 이덕희와 같은 한 시대를 의지와 저항으로 살아간 여성들이었다. 특히 전혜린은 우리 할머니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인데 그녀가 걸어온 서울대 법대와 독일 유학이라는 삶의 궤적, 그리고 아이라는 '존재' 에 대한 애와 증을 그려낸 글들, 남편 '철수' 에 대한 글을 읽다 보면 그녀의 말투와 언어들이 절대 과거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고 느껴져 온통 소름을 돋게 했다. 그리고 어두운 가운데에서도 눈에 불을 켠듯 형형했다는 이덕희의 눈빛, 니진스키를 흠모한 그녀의 이력들에 대한 글을 볼때면 나는 책을 읽으면서 한국과 미국, 전세계를 통틀어 그러모은 이름들 속에 살아 숨쉬면서, 더한 가능성을 낳을 어떠한 응축된 에너지의 무서운 힘을 느끼게 되었다. 사실 이 이름을 하나씩 호명하여 지면 위에 더하는 지금도 그렇다. 분명히 자신의 삶을 하나의 예술로서 불태우고 간 사람들의 이름에는 그 이름을 불러내는 사람에게 알 수 없는 용기를 주면서, 동시에 부지불식간에 오한이 오게 하고 소름을 돋게 하는 그 무언가가 있다.


그래서 나에게 영감이란, 이름을 모으는 것이다. 현재의 이름들도 좋지만, 과거의 어떤 제약과 한계 속에서 범상치 않은 힘과 가능성들을 발휘한 사람. 상처받은 사람. 주류가 아닌 사람. 그런 사람들. 영화 <로렌스 애니웨이> 에 나온 괴상한 할머니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정말로 행복할 것 같다는 어떤 이의 영화평을 떠올리게 하는 사람 같은 거 말이지.. 그러니까 내가 지금 세상에서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꼈을 때, 나와 같은 혹은 나보다 더 말도 안되는 상황에서 이상한 시도들을 굴려 하나의 추진력을 얻은 사람들. 그런 사람을 상상만 하다가 진짜로 하나의 생애를 가진 분명히 실재한 인간이었음을 알 때에 미칠 것 같이 기쁜 그런 때를 만나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