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마켓의 전자레인지 시장 분석기
당근일기 #1 전자레인지를 겟하기 위한 한 달간의 고군분투
새로운 집에 들어오게 되면서 우리가 새것을 구매하기로 결심한 것은 몇 개 없었다. 냉장고, TV, 청소기, 에어컨, 세탁기. 그리고 나머지는 살면서 조금씩 채워가자 생각했는데, 그 채워가는 것의 범위에는 내가 정해둔 절대 새것을 구매하지 않겠노라 하는 것들이 있었다. 첫째는 가스레인지였고, 둘째는 책장이었고, 셋째는 수납장이었으며, 넷째는 자취를 하든 살림을 하든 어쩌면 가장 중요한 가전, 바로 전자레인지였다.
오늘의 이야기는 전자레인지 당근에 대한 이야기다.
내가 전자레인지를 당근으로 구매하고자 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다년간의 자취를 해보니 전자레인지로 하는 것은 고작 햇반 데우기 뿐이었기 때문이다. 요리도 안 하는 내가 대단한 스펙을 자랑하는 비싼 전자레인지를 살 필요는 없었고, 그냥 고장 안나는 편한 기계가 필요했다. 요리에 흥미를 갖게 된다면 그때 가서 큐커인지 뭐인지를 구매하고 말리라.
자, 그래서 당근에 들어갔다. 사실 당근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알아보기 시작한 것이 전자레인지다. 전자레인지, 전자레인지. 키워드 알림을 등록해 놨다. 당근! 하고 울리는 바로 그 당근알람. 귀여움. 당근으로 구매하고자 한 모든 물건들은 들어간 즉시 마음에 드는 물건을 발견하여 구매했지만 이 전자레인지만큼은 조금 달랐다. 마음에 드는 물건은 올라오자마자 예약 중/거래 완료가 걸리기 일쑤고, 남아있는 물건들은 중고지만 그보다 조금 값을 더 주면 새것을 살 수 있다거나, 미개봉 새 상품이라 정말 새 상품을 원하는 사람들만 구매할 수 있다거나 했다.
어느 오후, 아주 잠시 핸드폰을 보지 못하던 사이 삼성 비스포크 전자레인지가 단돈 4만 원에 올라온 것을 놓쳤다. 그 매물은 올라온 지 5분도 되지 않아서 예약 중이 걸렸다. 비슷한 사건이 두세 번 반복됐다. 오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반드시 성공하고 말리라. 마음에 드는 상품이자 마음에 드는 가격을 주고 사기 위해 나는 당근 알림이 울리면 그 즉시 접속해서 메시지를 보내기에 이르렀다. 무려 1달 동안 말이다.
그렇게 해서 한 달 동안 관찰한 당근마켓의 전자레인지 시장에 대해 잠시 풀어보겠다.
1. 전자레인지는 하루에도 수십 건이 쌓일 정도로 많은 매물이 올라온다.
(우리 동네 기준인데도...)
전자레인지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당근에 내놓는지, 알람을 켜놓고 가만히 보고 있으면 놀랄 정도다. 그 종류에는 감성 있는 디자인의 모델부터 시간이 표시되지 않거나 매우 소형인 저가 모델, 집에서 오랫동안 엄마가 썼던 모델과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빨간색의 모델, 꽃무늬나 수막새 무늬까지 그려진 어느 시대를 풍미한 디자인의 모델, 최신형 비스포크 모델과 LG, 삼성의 대중적이고 대표적인 모델들이 있다.
2. 인기 있는 금액대
물론 당근에서도 이름 있는 가전이 인기가 많다. 그렇다고 금액에 대단한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엘지 삼성의 전자레인지는 3만 원~4만 원대에 거래된다. 신상이고 상태가 좋다면 4만 원에도 당장 예약이 걸리지만 5만 원이라면 조금 말이 달라진다. 시간이 지나면 거래가 되겠지만 끌어올려지는 경우가 더 잦다. 이름은 들어봤으나 이 브랜드에서 전자레인지를 만드나...? 싶은 보급형 브랜드의 경우, 상태가 좋으면 3만 원대, 상태가 좋지 않다면 만원에서 나눔으로 내걸린다. 당장 판매하고 싶다면 모델 불문 2만 원-3만 원에 올리는 것이 요즘 시세. 그래서 나도 그 금액으로 알아봤다.
3. 업자와의 경쟁
나와 같은 사람이 많은 것일까? 아니면 당근에는 업자들이 많은 것일까? 정말 괜찮은 모델이 2-3만 원대로 올라오면 그 즉시 예약 중이 걸린다. 정말 단 1-2분의 시간도 주지 않고 바로 걸린다. 안 걸려 있어서 메시지를 보내면 이미 먼저 연락 주신 분이 있다고 한다. 업자가 구매해 간다는 것은 그냥 내 가설일지 모르지만 당근에 업자들이 있는 것은 팩트다. 같은 배경으로 유사한 물건을 계속해서 올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 또 특이점 하나, 전자레인지 안에 들어있는 회전판은 올라오는 즉시 자주 숨김처리 되는 경우가 많음.
4. 기동성을 가진 자가 당근을 지배한다
당근은 물론 우리 동네 거리 제한도 가능하지만 가성비 좋은 매물의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거리 확장이 필수다. 그 말은 즉, 기동성도 필수. 일찍 가지러 간다고 말하는 당근러가 좋은 물건을 얻는다. 비단 전자레인지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부피와 무게가 있는 상품이므로 더 빨리, 차로 편하게 가지러 가는 사람에게 기회가 돌아갔다.
그리고 오늘, 그 오랜 예약중과 거래완료 문구, 이미 누군가와 거래 중이라는 메시지로 받은 나만의 고군분투와 경쟁의 끝에, 나는 전자레인지 거래에 성공했다. 그것도 대성공. 무려 99도의 당근천사를 만나서 말이다. 이 이야기는 다음 편에 이어가 보도록 하겠다.
내가 겟한 물건은 삼성 전자레인지, 3만 원!
거래 가능할까요? 메시지를 보내면서 살짝 긴장했다. 올라온 지 3분 정도 지났기 때문이었는데. 다행히 거래가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나는 편하신 시간 언제든 가능하다 대답했고, 메시지를 주고받은 3시간 후 방문했다. 그리고 깨끗하고 기능 좋은 모델을 품에 안고 집에 올 수 있었다!
뿌듯하다. 너무 기쁘다. 기뻐서 쓰는 당근일기 브런치 글.
아, 오랜 시간 당근알람을 즉시 확인한 자, 원하는 거래를 성공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