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프로그램에서) 다시 만난 카피 05
지인의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보던 중 흥미로운 글을 읽었다. 내용은 그가 친구와 나눈 이야기였다. 펀딩 플랫폼에서 ‘연애하는 법’을 알려주는 전자책이 몇 억 펀딩을 받아 의아했다는 의견을 나누던 중 그의 친구가 말했다.
“연애는 꽤 높은 사회성 스킬이야. 세상에는 그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는 사람이 많아. 구두를 신은 사람은 오래 걷게 하지 않고, 사소한 꽃 선물 하나가 중요하다는 것과 흰 옷 입은 사람에게 빨간 음식은 피하게 해주는 것, 그런 걸 모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친구의 말을 들은 그는 세상에는 '당연하게 뭔가를 알고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당연하다는 건 카피라이팅에 있어 참 위험하다. 어쩌면 가장 조심스럽게 대해야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당연하다를 떠올리면 연달아 고정관념이란 단어가 연상되기 때문이다. 고정관념이 카피를 쓸 때 얼마나 위험한지는 두 말할 것도 없다. 고정관념에 빠져 카피를 쓰는 일은 아무것도 고민하지 않고 카피를 쓰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런 걸 너무 잘 안다고 생각한 나는 내가 우려하는 단편적인 생각에 빠질 리 없다고 평소 생각했다. 큰 오산이었다.
책방에 온 손님이 조용히 책을 고르고 있었다. 괜히 말을 걸어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느낀 나는 손님에게 “학생이세요?”라고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사복을 입었으나 어깨까지 오는 생머리, 안경을 썼고 화장기 없는 얼굴이라… 별생각 없이 그렇게 물었다. 그는 아주 작게 “네.”라고 대답했다. 거기서 멈췄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한 발 더 나가는 실수를 한다. “어느 고등학교 다니세요?” 딱히 궁금하지도 않았으면서 왜 그렇게 꼬치꼬치 캐물으려 했나! 사실 책방 근처에 유명한 예술고등학교가 있어 거기 다니는 학생일 거라 짐작했다. 돌아온 그의 대답에 나는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었다. “학교는 안 다녀요.” 학생이라고 하니 당연히 학교에 다닌다고 단정 짓고 무례했을지도 모를 질문을 해버렸다. 그 학생은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난처했을지도 모르는데, 굳이 왜 구석진 동네 책방에서까지 어느 학교 다니냐는 질문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등줄기로 땀이 또르르 흘렀다. “어머, 죄송해요. 실례를 한 것 같아요.” 당황한 나 때문에 그는 그 상황을 빨리 피하고 싶어 졌을지도 모르겠다. 책을 고르던 손을 멈추고 “다음에 다시 올게요.”하고 책방을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