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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영 Nov 15. 2019

건강한 어른이 되는 법


철 지난 표현이긴 하지만 얼마 전 내 스스로가 '세살차이'라는 말을 입에 담았다. 세대차이를 넘어서 이제는 말 그대로 세살차이. 트렌드가 어떻다 얘기하며 X세대, Y세대를 지나 지금은 Z세대까지도 거론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같은 대학생이라고 해도 세대차이가 나는 것이니 세살차이라는 표현이 예전보다 더 와 닿기도 하다. 사회는 그런 방식으로 필요한 틀에 맞는 퍼즐 조각을 하나씩 만드는가 보다.

라디오라는 단어는 시간이 흘러도 아날로그 스러운 이름이다. 팟캐스트나 오디오북도 유행하고 있지만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낀 세대에서 자란 나는 라디오가 더 익숙하다. 수험생 시절 한창 밤잠을 설치던 나날에 기숙사에서 남몰래 빛을 숨기며 라디오를 듣곤 했다. 증상의 명확한 원인 없이 심할 때는 뜬 눈으로 아침을 맞은 적도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 신경 안정제를 찾아야만 했다. 그때 즐겨 듣던 목소리의 주인공은 유희열 이었다. 그는 라디오에서 "입 안에서 공기를 밀어내어 체온을 담아 소리를 낸다"라는 표현을 종종 했었다. 세세하고 따뜻한 대화법 덕분에 그의 사사로운 감정변화까지도 내 마음을 동요케 하는 때가 더러 있었다. 그 외에도 밤공기에 체온을 부비며 공기를 밀어내는 몇 개의 다른 목소리들도 즐겨 들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ASMR이란 표현이 없을 때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목소리들이 내가 즐겨 듣던 ASMR인 셈이었다.

군대에서 새벽 라디오를 종종 들을 기회가 있었다. 항상 듣는 건 끝무렵의 20분이었기에 그 앞의 1시간 40분가량의 내용을 상상해보기도 했었다. 저녁 라디오도 가끔 기회가 있었다. 그때 배철수의 목소리를 '집중해서' 처음 듣게 되었다. 아주 가끔씩 들을 수 있었던 배철수의 음악캠프였지만 그중에도 내가 들을 수 있었던 건 길어봤자 20분. 항상 18시 40분이면 마음의 준비를 해야만 했다. 아쉬움이 컸던 이유는 여태껏 들어본 라디오 중에서 가장 힘 있고 신선했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20분이란 시간 동안에도 그 많은 에너지와 트렌디한 선곡까지 너무나도 많은 것을 얻어간 느낌이었다. 하루의 피로를 싹 가시게 하는 게 일면식 없는 나이 든 한 사람이라니. 송골매가 아닌 배철수로 그를 만나게 된 건 다름 아닌 목소리였다.

<대화의 희열>에서 내 귀에 익숙했던 두 목소리의 주인공이 만났다. 격 없는 모습으로 많은 대화를 한다.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신뢰할 수 있는 어른'이라는 대화였다. 연륜이 곧 경험이자 신뢰의 지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나 요즘엔 나보다 나이가 많으면 일단은 꼰대로 분류되는 게 사회정서라는 생각도 든다. 그만큼 기성 권력의 빈틈이 이제는 많이 노출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필요할 때 도와주면 선배, 필요하지 않을 때 도우려 한다면 꼰대라는 말이 있다. 우스개스러운 사진이지만 요즘의 정서를 잘 요약해놓은 듯하다. 그런 면에서 배철수가 '신뢰할 수 있는 어른'이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이다. 방송에서도 나눴던 대화이기도 하지만 나의 경우에도 그가 추천하는 음악에 대해서는 반사적으로 신뢰가 간다. 태초부터 완벽한 사람은 아닐 지라도 나이가 드는 것이 성숙의 일부가 된다는 게 그저 시간이 흘러가길 내버려 두어서는 이룰 수 없는 과정인 것은 분명하다.

그는 라디오를 진행하며 지난 29년간 건강한 어른의 본보기가 되어왔다. 라디오계의 공무원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오랜 경력이 있기도 하면서 동시에 남다른 성실함을 보여왔다. 라디오라는 아날로그 미디어에서 젊은 감각을 유지하는 모습은 조금은 특별해 보이기도 하다. 아무리 전문 분야에 관련된 일이라 하더라도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새 것에 관심을 가지기 어려워지는 게 정상이다. 40년 이상의 터울이 있음에도 그에게서 내가 공감을 하고 배우기도 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내가 내 또래의 나보다 어린 친구들을 공감하기 어려워하는 것은 놀랍고도 부끄럽다.

건강한 어른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나에겐 조금 이른 고민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한 번쯤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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