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페퍼톤스의 연말 콘서트에 다녀왔다. 공연장이 있는 광나루역에 내리니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육성으로 “추워, 추워”를 내뱉으며(정말 아줌마가 된 걸까?) 사람들이 가는 쪽으로 서둘러 발길을 옮겼다. 매표소에서 약간의 당혹스러운 일이 있었지만 무사히 공연장으로 입장할 수 있었다(예매 사이트에 내 연락처가 잘못 입력되어 표를 주는 분이 표를 주려다 되가져갔다. 짧은 순간 ‘마흔 되기 전 액땜인가?’ 생각했다).
내 자리는 1층 D구역이었다. C구역까지가 앞쪽이었고 통로 뒤 블럭이 D구역이었다. D구역에서는 그나마 무대 쪽이었지만 구역 자체가 무대의 측면이어서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다. 접이식 철제 의자도 좁았다. 옆에 패딩을 입은 학생과 어깨를 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공연 시간이 다가오자 객석이 채워졌다. 얼마 만에 느끼는 설렘이었을까. 영화관에서 영화 시작 전 느끼는 설렘의 50배는 됐었을 것이다(티켓 가격으로만 따지면 10배쯤 되어야 하지만 그보다는 확실히 더 많이 설렜다).
그리고 첫 곡 ‘21세기의 어떤 날’을 따라 부르며 난 분명히 느꼈다. ‘뭐야, 오늘 진짜 재밌겠는데?’ 9년 전 10주년 콘서트는 맨 앞줄이었는데 그때보다 더 재미있고 신날 거라는 게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왜 그럴까, 자리도 훨씬 안 좋고 무대도 그때가 더 컸던 것 같은데. 첫 곡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난 그 이유를 분석할 수 있었다. 그 사이 결혼을 하고 애를 낳았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였다. 9년 만에 콘서트에 온 것도 충분히 설레고 신나는 일인데, 난 그 사이 육아를 했다. 아이는 외동이다. 그리고 곧 일곱 살이 되기 때문에 지금은 아이 때문에 잠 못 자고 정신이 나갈 시기는 아니다. 그렇지만 어쨌든 육아를 한다는 것, 자아가 폭발적으로 발달하고 있는 나와 다른 인간을 돌본다는 건 매 순간, 나라는 인간이 충분히 진이 빠지는 일이었던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혼자 왔기 때문이다. 맨 앞줄이어도 가수의 노래를 모르는 사람과 함께한다면 드럽게 재미가 없다. 남편이 페퍼톤스 노래를 다 외우기 전까진 내 생에 남편과 함께 그들의 콘서트에 갈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노래를 아는 사람과 같이 가는 건 언제나 환영^^). 난 3시간 가까이 목청 높이 따라 불렀다. 정말 정말 신났다. 욕이 나올 정도로 신났다(물론 속으로만 했다). 손목, 목, 허리, 손가락과 발가락 뼈마디 하나하나에 멜로디와 템포를 타며 마음껏 흔들어 재껴줬다(열심히 흔들어 재끼느라 옆 자리 패딩소녀의 어깨와 닿을 일은 생각보다 없었다).
공연장을 나오며 불현 듯 생각이 났다. ‘그러고 보니 초등학교 6학년부터 좋아하는 가수가 늘 있었네.’ 정확하게 말하면 맨 처음 좋아했던 아이돌 빼고는 가수보다도 그들의 음악을 사랑했다. 통학길과 출근길에 나의 영혼을 채워준 가수들이 떠올랐다. MP3가 나오긴 전까지는 CD와 CD플레이어를 가방에 넣고 다니며 듣고 또 들었다(그대들 덕에 제가 이렇게 컸답니다. 감사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이런 결심도 했다. 나중에 아이가 커서 아이돌을 좋아하게 된다면 그 얘기를 열심히 들어주겠다고. 아이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도 함께 듣고, 그들의 근황도 챙겨 주고, 그들의 어디가 왜 좋은지 물어봐 줘야지. 아이가 좋아하는 가수나 음악이 바뀌면 관심을 갖고 흐뭇하게 바라봐 주어야지.
난 취향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동안 내가 좋아했던 가수의 음악들을 떠올리니 그 부분에 있어서는 나름 취향이 확고하다는 걸 느꼈다. 아이가 언젠가 TV에 나오는 연예인을 좋아하고 어떤 음악에 심취해 있을 때 ‘너도 취향이 생기고 있구나’ 하고 바라보는 엄마가 되면 좋겠다. 음악뿐만 아니라 그게 무엇이든.
/23.12.18. 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