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즘 자연이의 취침 시간이 점점 늦어져 밤 10시, 11시를 넘기는 게 예삿일이 됐다. 주로 그림을 그리거나, 그린 걸 자르고 붙여 무언가를 만드느라 그렇다. 나도 완성시키고 싶은 아이의 마음을 모르는 게 아니라 아쉬운 마음이 든 채 자라고 하는 게 잘 안 된다. 그렇게 피곤이 쌓인 목요일 아침, 방안 가득 햇살이 들어오는데 자연이는 요지부동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부드럽고 쭉쭉 늘어나는’ 줄무늬 긴팔 내복을 입고 희한한 자세로 자고 있는 자연이가 너무 예뻐 오늘은 차마 깨우지 못했다. 한 시간 더 재우고 직접 등원시켜 유치원에 보냈다.
2.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빨간 버스를 타고 합정에 갔다. 알라딘 중고서점이 이전을 했구나. 400m 정도 떨어진 새 공간으로 갔다. 더 쾌적해진 것 같긴 한데 짐이라도 놓고 잠깐 앉아 책 훑어볼 자리가 전혀 없는 게 아쉬웠다. 중고책 사는 손님은 홀대하는 기분(집에 와서 다른 블로그를 찾아보니 전혀 없는 건 아니고 구석에 4인석 책상 하나 있었다).
다음 시 모임 지정 도서를 찾고 다른 책들을 몇 권 더 꺼내 보다가 어정쩡한 자리에 서서 보는 게 힘들어 그만두기로 했다. 12시가 다 되어 가는데 아직 식사를 못 한 걸 깨달으니 허기짐이 몰려왔다. 아침부터 자연이 유치원 등원 시키고 카페, 도서관 들러 합정까지 온 여정에 지치기도 했다. 빨간 버스 탄 거 말고는 들른 곳 사이사이를 모두 걸어 움직였으니 이 날씨에 지칠 만도 했다.
3.
합정역과 상수역 사이에 있는 미분당에 갔다. 왜 갑자기 쌀국수가 생각이 났지? 모르겠다. 성혜의 식단 SNS 계정을 보다가 예전에 올렸던 미분당 쌀국수가 생각 나서였나, 아님 지쳐서 고기와 탄수화물과 국물을 먹고 싶어서였나. 아무튼 나의 욕망-행동 회로 중 식욕 회로가 제일 빠른 속도로 도는 건 분명하다. 차돌, 양지, 힘줄이 모두 들어 있는 쌀국수에 고수를 올려 한 그릇 맛있게 먹었다. 국물 한 숟가락은 그다음 국물을 불렀고, 계속 그런 식으로 하다 보니 바닥이 비워져 있었다. 가게 문을 열고 나올 땐 자연스럽게 “어후…!” 소리가 나왔다. 보양과 해장을 동시에 한 느낌이었다. 열기를 식힐 겸 근처에 있는 다이소에 들어갔다가 자연이가 좋아할 만한 액세서리 몇 개를 샀다. 합정, 국수와 국물, 소소한 쇼핑…. 내가 좋아하는 동네(그곳에 가는 행위 자체가 중요하다)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먹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돈을 썼다. 이 정도면 꽤 괜찮은 하루라고 생각했다.
/24.06.13.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