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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와 일의 건강한 거리두기

일은 일일 뿐

by Hansol Jang


오늘은 평소에 많이 고민하던 주제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바로 '일과 나를 분리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다.

최근에 동생이 여러모로 일에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내가 보기에 주어진 환경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그 일이 잘 안되는 원인을 본인한테서만 찾고 있었다. 문득 이런 의문이 생겼다. “나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이 과연 정말 일을 잘되게 할까?


실패를 나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함정

일이 잘 안되거나 투자유치가 실패했을 때, 우리는 너무 쉽게 "내가 잘못한 것"이라고 자신을 탓한다. 마치 모든 책임이 나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나도 이 함정에 자주 빠진다. 성과가 안 나올 때마다 "내가 더 열심히 했어야 했는데", "내가 더 잘했어야 했는데"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밤잠을 설치곤 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사실 우리를 더 좁은 시야로 몰아넣는다. 스스로를 유일한 변수로 보면, 다른 중요한 요소들을 간과하게 된다. 일의 성공과 실패에는 내 노력 외에도 무수히 많은 변수들이 작용한다. 시장 상황, 시기, 경쟁사의 움직임, 투자자들의 성향, 운... 솔직히 말하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요소들이 훨씬 더 많다.


제품을 만들 때도 마찬가지다. “이번 아이디어는, 이번 제품은 성공할 거야”라고 집착하게 되면 그게 실패했을 때 너무 큰 타격을 받았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대부분 그 원인은 ‘내가 그 아이디어를 제시했기 때문이야’, ‘내가 더 치밀하게 고민하고 계획을 세웠어야해’ 로 귀결되곤 했다. 근데 사실 아이디어와 제품의 실패는 너무 자주 발생한다. 그리고 그 실패의 원인은 오히려 고객의 목소리를 충분히 듣지 않은 것, 시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것, 더 작게 검증하지 않은 것이 원인인 경우가 많았다.


분리의 힘: 다른 변수를 찾아내기


이런 경험들을 통해 깨달은 점이 있다. 일과 자신을 분리해서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과 나를 분리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것은 '내가 하는 일'과 '나라는 존재'를 구분하는 것이다. 이 둘을 구분하게 되면 실패가 '나의 무능함'이 아니라 '그 일이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들 중 일부가 부족했다'는 식으로 볼 수 있게 된다.


사실 이 관점의 전환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직접 경험해봐야 알 수 있다. 작년에 투자 유치를 다니면서 반응이 심상치 않다는걸 느낄 때, 처음엔 "내가 IR을 더 잘 준비했어야 했는데"라는 생각만 들었다. 하지만 미팅을 계속해나가고 한달쯤 지나고 나서 이 상황을 다시 바라보니,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았고, 투자자들도 다른 포트폴리오 신경쓰느라 정신이 없고, 이런 상황에서 투자자들이 선호하는 비즈니스모델도 변화가 많이 생겼다는 점들을 깨달았다.


이렇게 일과 나를 분리해서 바라보면, 내가 잘못한 것 외에 다른 변수들을 찾게 된다. 그리고 그 변수들 중 어떤 요소가 중요했을지 찾고 해결하는 흔들리지 않는 편안한(?!) 마음을 갖게 된다.


자아와 일의 경계 그리기

우리의 일들이란게 대부분 생각했던 대로 잘 되지 않는다. 특히 창업한 사람은 느끼겠지만 창업이라는 여정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성공의 경험은 매우 희소하다. 그리고 이런 일이 반복되고 이 과정에서 모든 일의 잘못을 나에게서 찾으며 자존감이 꺾여버리면 실패중력장에 발목을 잡히게 된다.


나는 몇 년간 나의 가치와 회사의 성공을 동일시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회사가 잘될 때는 내가 대단한 사람인 것 같았고, 회사가 어려울 때는 내 존재 자체가 무가치하게 느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위험한 상태였다. 왜냐하면 외부 환경에 따라 내 자존감이 완전히 좌우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일에 자신의 정체성을 너무 깊게 묶어두면, 모든 실패가 내 인격에 대한 공격처럼 느껴진다. 이는 정말 견디기 힘든 상태다. 사실 아직도 일과 나의 정체성을 분리하는 건 어렵고, 그렇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분리하기 위해 노력해야 되는 순간들이 많다.


분리의 기술 배우기

그렇다면 어떻게 일과 나를 분리할 수 있을까? 이건 말처럼 쉽지 않다. 마치 오랫동안 함께 혼합되었던 물질을 분리하는 것처럼,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내가 실천하고 있는 세 가지 방법을 공유하고 싶다.


1. 결과를 넓은 관점에서 바라보기

일의 결과를 볼 때, "이건 나의 성공/실패"가 아니라 "이 프로젝트의 성공/실패"로 바라보자. 마치 내가 처음 요리를 했는데 맛이 없었다고 해서 내가 똥손이 아닌 것처럼, 프로젝트가 실패했다고 해서 내가 무능한 것은 아니다. 그저 그 요리에 필요한 요소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을 뿐이다.


실제로 나는 팀과 회고를 할 때, 그리고 혼자 스스로를 돌아볼 때 의식적으로 "내가 OOO을 잘못했다"가 아닌 "이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우리가 고려하지 못한 것은 뭘까? 팀단위로 어떻게 더 좋은 시도를 했을까?” 를 함께 고민하고 논의한다. 이것은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다. 대부분은 “제가 OOO를 놓쳐서, 잘못해서.. “ 이런 회고포인트가 많지만 점차적으로 이 프로젝트를 넓은 관점에서 바라보거나 해결할 수 있는 다양한 해결책을 내놓게 된다. 그러다보면 결과를 더 넓은 관점에서, 나와 분리해서 바라보게 되는 느낌을 받는다.


2. 자기 가치를 재정의하기

내 가치는 내가 얼마나 성공했는지가 아니라, 어떤 사람인지에 있다. 내가 얼마나 정직한지, 얼마나 노력하는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이런 것들이 진짜 나를 정의한다. 일의 결과와 상관없이 나는 여전히 가치 있는 사람이다.


내가 한 일에 책임감을 느끼고, 그 일의 결과가 나 때문이라고 자책하는 경향이 있다면, 그것은 사실 내가 그만큼 일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라는 증거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관점에서 내 가치를 재정의해보면, 실패 자체보다 그 과정에서 보여준 내 태도와 노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실 이걸 혼자서 하기는 쉽지 않은데,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 동료들과의 1:1, 코칭을 활용하면 좋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대화들을 묶어서 셀프코칭 bot을 만들어서 대화하곤 하는데, 언제든지 내가 원할 때 할 수 있으니 꽤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3. 변수 찾기 습관 들이기

어떤 일이 잘 안됐을 때, "내가 뭘 잘못했지?"라고 묻기보다는 "이 상황에 영향을 미친 요소들은 무엇일까?"라고 질문하는게 좋다. 이건 마치 과학 실험을 분석하는 것과 같다. 실험 결과가 예상과 다르다고 해서 과학자가 무능한 것은 아니다. 단지 통제하지 못한 변수가 있었을 뿐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실패가 배움의 기회로 바뀐다. "아, 다음번에는 이 변수를 어떻게 조절해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고, 도전의 기회를 늘리는 효과가 있다. 매 프로젝트의 가설 검증 결과를 리뷰하는 것처럼 내가 한 업무의 결과를 리뷰하면서 내가 앞으로 시도할 수 있는 다른 가설, 변수들을 쭉 작성하는게 도움이 되었다. 그 리스트만 봐도 내가 시도할 수 있는, 이 실패를 성공으로 바꿀 힌트들을 찾아가는 느낌을 받는다.


마치며: 일은 일일 뿐

결국, 일은 일일 뿐이다. 그것은 내가 하는 것이지 내가 아니다. 물론 우리는 일을 통해 많은 의미와 만족을 얻는다. 하지만 일이 내 존재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창업가로서 나는 특히 이 분리가 어렵다. 내가 만든 회사, 내가 낸 아이디어, 내가 이끄는 팀... 모든 것이 너무 개인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내가 '일은 일일 뿐'이라는 일종의 직장인(?) 마인드로 접근할 때 오히려 그 일을 더 잘 해내기 위한 다양한 방법과 변수를 더 객관적으로 찾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창업가로서 일과 나를 분리하는건, 운동선수가 힘을 빼고 본인의 영역에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테니스든, 축구든, 야구든 모든 운동에서는 힘을 빼는게 중요하다. 그래야 역설적으로 스트로크에 힘이 생기고, 부상을 방지하고, 좋은 성과들을 만들 수 있다.


더 잘하기 위해,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일은 일일 뿐”이라는 마인드가 필요하지 않을까


동생에게도 전하고 싶다.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일의 성과가 좋지 않다면, 너만의 잘못이 아니다. 나를 탓하지 말고 다른 원인을 찾아보자. 그러면 일에서 더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나 자신을 탓하는 건 가장 마지막에 해보자. 일은 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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