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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4주년, 돌아보고 다시 시작하며

앞으로도 멈추지 않기를

by Hansol Jang

2021년 9월 8일은 보살핌 법인을 설립한 날이었다. 그날로부터 정확히 4년이 지난 시점에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글을 한번 쓰고 싶었다. 사실 창업을 준비한 건 21년 4월부터였으니, 개인적으로 창업이라는 도전을 시작한 지는 4년 하고도 6개월이 지났다. 하지만 어느 날을 딱 꼬집어 시작이라 말하기는 어려워, 법인 등기부등본상의 설립일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동안에는 이런 글을 쓸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생존에 대한 고민이 더 컸고, 무언가 회고를 남기기엔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4년 차가 된 지금은 회사의 방향과 상황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어쩌다 보니 내가 창업한 이 회사가 가장 오래 일한 회사가 되어버렸다. 그전까지 가장 오래 일했던 뱅크샐러드에서의 3년 남짓한 시간을 훌쩍 넘어섰다. 내가 가장 오래 머문 이곳에서의 시간을 한번 정리하고, 그다음은 어떻게 나아가면 좋을지 글로 남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1. 4년 동안의 뼈아픈 실수

지난 4년을 돌아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쉬움 가득한 실수들이었다. 특히 두 가지 실수는 몇 번을 곱씹어봐도 유독 뼈아프게 다가왔다.


시장이 아닌, 우리 머릿속에서 사업을 시작했던 것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시니어 시장은 유망하고, 좋은 투자사에서 투자를 받았고, 일본에도 비슷한 성공사례가 있으니 우리는 언젠가 돈을 벌 수 있다'고 스스로와 주변을 설득했던 것 같다. 현실에서 비즈니스를 키우는 것보다, 사용자를 모으거나 서비스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아도 사업은 저절로 커질 것이라 짐작하고 상상했다. 그게 가장 큰 실수였다.


케어파트너를 만들고 2년 가까이 거의 돈을 벌지 못했을 때도, '일본에서는 요양보호사 매칭으로 상장한 회사도 있으니 우리도 언젠가 그렇게 될 거야' 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지금은 요양기관들이 돈을 내지 않지만, 우리가 시장의 주요 플레이어가 되면 결국 돈을 낼 거야' 라는 근거 없는 생각도 했다.


실제 고객이 무엇에 돈을 지불하는지, 이 시장에서 돈이 도는 비즈니스는 무엇인지를 더 적극적으로 찾기보다, '그런 건 이미 남들이 하고 있으니 우리는 새로운 걸 해야 해', '비급여 시장이 열릴 테니 우리는 비급여를 선점해야 해. 투자자들도 그걸 좋아할 거야' 라는 식으로 우리의 생각과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사업을 하려 했다.

지금 고객에게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시장에서 돈을 내면서까지 사용하는 서비스가 무엇인지,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파고들어 우리만의 기회를 만들 수 있는지를 봤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함께'가 아닌 '나 홀로' 일하려 했던 방식

사람들과 함께 결과물을 만들어가는 방식 또한 너무나 미숙했다. 과거의 나는 내 감정조차 잘 몰랐던 것 같다. 불안하고, 초조하고, 두려움에 휩싸이면 그 원인을 동료들에게서 찾고 탓하기 바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과 대화는 점점 줄었고, 그저 내 의견을 더 강압적으로 주장하고 관철시키려고만 했다. 그게 잘 안 되면 답답했고, 짜증 섞인 감정을 그대로 표출했다. 그 시간들을 견디지 못하고 떠나간 사람들도 생겼고, 나 역시 무척 힘든 시간을 보냈다.


결국 팀플레이가 아니라, 내 개인적인 역량과 퍼포먼스로 성과를 만들려 했던 게 아닐까. 팀원들이 내 생각대로 따라주지 않으면 힘들어했다. 팀의 성과는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고, 함께 방향을 고민하고, 같이 실행하며 만들어가는 것인데도 말이다.


나는 '내가 가장 많이 고민하고 있다'라고 착각했고,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건 나를 돕지 않는 것이다'라고 생각해버렸다. 같이 논의하고 실행하는 과정이 그저 속도를 늦추는 일이라고만 여겼다. 겉으로는 스쿼드를 만들고 의사결정 권한을 주는 척했지만, 결국 모든 것을 내가 판단하고 오더를 내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2. 우리가 바뀌기 시작했던 순간들

수많은 시행착오와 어려운 시기를 거치면서도, 다행히 우리는 스스로 길을 찾아 나가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두 번의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팀의 위기 속에서 '함께' 일하는 법 배우기

24년 1분기에 하나의 스쿼드를 구성하던 팀원 대부분이 퇴사하는 큰일을 겪었다. 내가 팀에 기대했던 것들이 잘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갈등이 반복된 결과였다. 그 일을 겪고 나서 '이 문제가 왜 발생했을까?', '앞으로 반복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깊이 고민하게 됐다. 여러 글도 읽어보고 창업자들도 찾아다녀봤지만,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AC2과정에 참여했던 경험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애자일하게 일하는 방법을 넘어,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감정으로 사람들을 대하는가'를 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성과를 만들어가는 더 좋은 방법에 대해 탐구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배움을 팀에 가져와 여러 방식으로 회고하고, 계획하고, 실행하며 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 여러 개로 나뉘어 있던 스쿼드를 하나의 팀으로 합쳐서 운영해보기도 했는데, 놀랍게도 더 좋은 성과가 났다. 끊임없이 서로 이야기하며 빠르게 성과를 만드는 경험이 쌓이면서, 우리는 비로소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하나의 조직이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고객'을 쫓아다니며 길 찾기

또 다른 전환점은 작년 말, 현실을 직시하면서 찾아왔다. 당장의 매출과 이익 없이는 더 이상 투자를 받기 어렵겠다는 냉정한 판단이 섰다. 이런 판단 후에도 처음에는 또 머릿속 생각으로 B2C가 아니라 B2B를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으로 보험사, 상조회사 등을 만나며 제안을 해봤지만 실패가 반복되었다. 그래서 우리가 생각하지 않고 고객에게 던져보고 물어보겠다는 생각을 더 적극적으로 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우리의 접근 방식은 완전히 바뀌었다.


'고객은 대체 뭘 원할까?' 우리는 커머스, 건강관리 서비스 등 떠오르는 아이디어들을 작게나마 계속 시장에 던져보고 고객들을 인터뷰했다. 그 과정에서 중장년층이 나이가 들어가며 겪는 일자리와 경제 활동의 어려움, 그리고 그 니즈가 굉장히 크다는 것을 발견했고 교육 시장의 가능성을 보게 됐다. 더 작게 시도하고, 더 빠르게 고객의 의견을 확인하며 비즈니스의 생존 가능성을 검증하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시장과 고객에게서 얻는 작은 반응들을 통해, 우리는 비즈니스가 커갈 수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다.


3. 그리고 지금, 4년 차에 느끼는 새로운 시작

그렇게 뼈아픈 시간들을 지나온 지금, 나는 4년 만에 처음으로 '다시 창업하는 것 같다'는 설렘과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무엇보다 팀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자체가 너무 재미있다. 이제는 무언가 잘 안되면 바로 "이거 잘 안되고 있는 것 같은데, 다시 이야기해봅시다", "목표를 수정하죠", "접근 방식을 아예 바꿔봅시다" 라고 말하고 바로 실행하고 돌아본다. 하루 이틀, 길어야 삼사일 만에 빠르게 가설검증하는 과정이 숨 가쁘지만, 거기서 얻는 즐거움과 성취감이 훨씬 더 크다.


또한 우리가 어쩌다 보니 '시니어 케어'에서 '시니어 커리어'로 방향을 틀게 되었는데, 이 문제를 푸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는 확신이 든다. 최근 50대 초반의 사회복지사 한 분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오랫동안 전문가로 일했지만 나이가 들며 일자리를 찾지 못해 건설 현장에서 일하며 '오늘 일을 나갈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에 우울해하던 분이었다. 나는 그분께 맞는 일자리 정보와 지원 방법을 정리해서 컨설팅해드렸고, 며칠 뒤 면접을 보게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내가 누군가에게 정말 도움이 되고 있다는 생각에 큰 보람을 느꼈다. 이 일이 단순히 돈을 버는 것을 넘어, 누군가의 삶의 의미를 찾게 해주는 사명감 있는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4. 혼자가 아니었기에 가능했던 여정

물론 이 모든 과정은 내 혼자 힘으로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회사가 가장 불안정했던 시기, 동료들은 묵묵히 곁을 지켜주었고 주주들은 흔들림 없는 지지를 보내주었다. 특히 공동창업자와는 그 시간들을 이겨내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대화했다. 가족들은 그런 나를 그저 지켜봐 주었다.


4주년을 맞아 이들에게 한 자 한 자 마음을 담아 메일을 보내면서, 내가 얼마나 큰 행운을 가졌는지 실감했다. 과거에는 미처 나누지 못했던 속마음을 이제는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함께 문제 해결의 즐거움을 느끼는 동료들이 곁에 있다는 사실이 새삼 벅차게 다가왔다. 정말 운 좋게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 이 여정을 함께하고 있다는 생각에, 그저 감사한 마음이 많이 들었다.


5. 다시 돌아간다면, 나는 창업을 할까?

이번 기회에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싶다. '나는, 창업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가?'

가족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창업 대신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았다면 가족들이 훨씬 더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늘 미안함과 감사함을 함께 느낀다.


우스갯소리로 창업은 '인격 수련의 과정' 같다는 이야기를 한다. 나를 돌보고 내 감정을 살피는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감정도 헤아려야 한다. 수많은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가야 하기에 절대 내 마음대로만 할 수 없다. 수없이 터지는 문제들을 해결하고 감내해야 하는 이 과정이 어쩌면 인생의 축소판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창업은 그 압축적인 과정을 굉장히 짧은 시간 안에 경험하게 한다.


하지만 그만큼 얻을 수 있는 성취와 감정의 크기 또한 크다. 내가 뒤처지면 회사가 뒤처지기에, 끊임없이 배우고 고민하고 실행해야만 한다. 창업이 아니었다면 내가 이렇게까지 했을까?

나는 예전부터 실존주의 철학을 좋아했는데, '내가 뜻을 가지고 내 인생을 만들어갈 때 삶의 의미가 결정된다'는 말이 요즘 들어 더 와닿는다. 창업을 통해 시니어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그 과정에서 보람을 느끼고, 우리로 인해 사회가 조금 더 나아지고, 이 여정을 함께하는 동료들과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어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래서 다시 돌아가 그때의 내가 창업을 할 것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잘 모르겠다. 그때의 다른 선택지들을 또 비교하고 탐색해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걸어온 이 과정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앞으로도 후회 없는 시간들을 만들기 위해, 이 여정을 최선을 다해 잘 만들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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