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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선생님 Jul 12. 2018

추억하는 순간 관계는 다시 이어진다

영화 <변산> 리뷰 

나한테는 아름답지 않은 학창 시절, 너에게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고향 


학생 시절은 별로 추억하고 싶지 않다. 내성적인데 다른 사람 눈치 볼 줄도 몰랐던 나는 친구가 별로 없었다. 그래도 나름 같이 노는 무리가 있었는데, 어쩌다 보면 멤버가 꼭 홀수가 됐다. 홀수라는 수는 여러 상황에서 불편한데 짝을 지어 뭔가를 할 때가 특히 그랬다. 소풍이라도 가면 어떻게 앉아야 할지 며칠을 고민했다. 무리 중에 누구 한 명이 '나는 다른 친구랑 앉을게!'라고 말하면 아쉬운 척했지만 안도의 한 숨을 내뱉었다. 체험학습에서 돌아오는 버스에서 나 혼자 앉았을 때는 졸리지도 않은데 자는 척을 했다. 지금 지나 보면 아무것도 일들인데 그때는 나름의 힘든 시기를 보냈다. 


학창 시절이나 고향이나 따듯하고 정감 가는 단어지만, 모두에게 좋은 기억을 떠오르게 하지는 않는다. 영화 <써니>에서 더없이 아름답게 그려지는 학창 시절이 나에게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간이듯이,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혜원처럼 모두에게 고향이 포근한 곳도 아니다.  '학수(박정민)'은 고향을 싫어한다. 무책임한 아빠와 불쌍한 엄마를 떠오르게 하는 촌구석이 싫어서 서울의 고시원에 산다. 래퍼의 꿈을 갖고 있는 학수는 <쇼미 더 머니>에 출연하지만 번번이 떨어진다. 그리고 또다시 탈락의 순간을 맞는다. 최악의 순간, 아버지가 쓰러졌다는 전화를 받고 어쩔 수 없이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바라보기 


학수는 고향에서 학수를 짝사랑했던 '선미(김고은)', 학수가 좋아했던 '미경(신현빈)', 한 때는 학수에게 맞았지만 지금은 조폭 두목이 된 '용대(고준)'을 만난다. 그들과 떠들썩한 시간을 보내며, 언제나 떠나고 싶었지만 절대로 잊을 수 없었던 자신의 고향 변산을 다시 바라본다. 



내가 나온 학교를 우연히 지나가게 됐을 때 나를 싫어했던 친구, 내가 눈치 없이 뱉었던 말 때문에 당혹스러웠던 순간, 부끄러운 실수가 생각났다. 그러다 학교 앞 분식집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그래도 하굣길에 했던 군것질은 참 좋았다. 왼 손에는 떡볶이, 오른손에는 떡꼬치를 들고 집에 가곤 했다. 가끔 용돈을 받으면 친구와 함께 과자도 잔뜩 사 먹었다. 별로 즐겁지 않은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즐겁고 예쁜 일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니까. 고마웠던 선생님, 좋은 친구와 보낸 시간, 유쾌했던 축제가 기억 저 편에 분명 남아있다. 그 사람들 덕분에 그 시간을 잘 벼텼다. 그리고 그 좋은 기억을 자양분으로 대학에서 좋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다. (그렇다고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건 아니지만.) 



학수도 고향 변산의 아름다운 노을, 포기하지 않고 꿈을 이룬 선미, 과거를 반성하고 용서를 비는 아빠를 다시금 발견한다. 그리고 자신의 현재를 직시한다. 무서워서 피하고 미워서 피하던 자신을 발견한다. 진흙 탕에 한바탕 구르고, 때로는 머리에 피를 철철 흘리더라도 도망가지 않고 맞서야 미래로 나아갈 수 있으니까. 혁수는 그렇게도 피하고 싶었던 고향 사람들의 도움으로 한 발씩 앞으로 나간다. 그리고 결국 그 한 발자국들이 모여 혁수를 무대에 세운다. 


변산은 청춘 이야기다. 청춘을 위한 청춘 영화, 혹은 청춘을 추억하는 이들을 위한 청춘 영화다. 청춘 영화라는 그 단어가 조금 촌스럽고 약간 뻔하게 느껴지더라도, 뭐 어때! 보면서 즐거우면 됐지! 모두의 청춘이 아름답지는 못하더라도 좋은 기억이 딱 하나씩은 있을 테니 보는 이들은 충분히 즐겁다. 그거면 됐다. 


*브런치 무비패스로 시사회에 참여하고 쓴 글입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발행이 늦었습니다. 영화 <변산>이 궁금하신 분들은 서두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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