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고맥락 문화가 스웨덴의 저맥락 문화를 만났을 때
처음 스웨덴에 와서는 시댁살이를 6개월간 했었다. 사실 초반에는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는데 오히려 나를 너무 손님(?)처럼 대해주셔서 내가 집안일을 거들려고 하면 말리는 분위기였다. 이렇게 꿀 같은 시댁살이가 또 있을까 싶었지만, 역시 세상에 쉬운 일만 있을 수는 없었다.
음식이나 문화 차이는 조금씩 있었지만 그게 크게 문제가 되진 않았다. 스웨덴에 살면서 당연히 이 정도는 다르겠지 마음먹은 게 있었던 터라 오히려 여기 살려면 받아들여야지 마음먹었다. 그런데 갈수록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의사소통을 하는 방식이었다.
시댁 식구들 전부 영어가 가능했기 때문에 초반에 대화를 나누는 데 별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필요한 단어와 문법을 안다고 해서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건 아니었다. '내 말이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 걸까? 방금 저 말의 의도는 뭘까?" T와F 같은 성격의 문제도 아니었다. 뭔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점 시댁 식구들과의 의사소통이 미묘하게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매콤한 음식이 먹고 싶어서 오징어 볶음을 만들고 있었다. 시동생은 내 곁에 오더니 "와 맛있어 보이네요" 한 번 먹어보고 싶은 눈치였다.
"먹어 볼래요?"
"아 지금 당장 배고프진 않지만, 맛은 한 번 보고 싶네요"
그 말을 듣고 나는 냉장고에서 생물 오징어 한 마리를 더 꺼내 손질했다. 한번 먹을 때 워낙 양이 많은 친구라 혹시 몰라서 넉넉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오징어 볶음을 완성한 후, 시동생에게 음식을 맛보라 묻는데 예상치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저 지금 배 안 고픈데요."
나는 아까 맛있어 보인다고 먹어보고 싶다 하지 않았냐고 묻자 "네 맞아요. 그런데 지금 점심 먹는다고 하지는 않았는데요? 다음에 진짜 배고플 때 먹어보고 싶어요" 대답했다. 나는 어이가 없어 벙찐 채로 방 문을 닫아버렸다. "도대체 내가 뭘 들은거지?"
하루는 시어머니가 나를 부엌으로 부르셨다. 냉장실을 열어둔 채 기다리고 계셨는데 제일 위 칸을 손으로 가리키시며 내게 "여기 있는 건 전부 다 내 것이니 먹지 않으면 좋겠어"라고 말씀하셨다. Ekologisk(유기농)이라고 적힌 식재료로 가득 차 있는데 딱 봐도 값이 좀 다 나가 보였다.
내가 늘 물어보고 냉장고 안에 있는 음식을 먹을 때도 "아무거나 먹어도 상관이 없어" 친절히 말씀하실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나는 순간 내가 뭘 잘못했나 너무 냉장고에 있는 걸 함부로 꺼내 먹었나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기 시작했다. 내가 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시어머니는 내가 못 알아 들었을까 싶어 한 번 더 천천히 또박또박 말씀하셨다
"다시 설명할게. 맨 위 칸은 내 식재료니까 먹으면 안 돼"
사실 말을 못 알아들어서가 아니라 너무 명확한 의사전달에 적잖게 당황했다. 이리 확실하게 일러두시니 내가 절대 건드리지 않을 테지만 사실 그 말이 기분 좋게 들리지는 않았다. 남편에게 물어보니 "엄마가 채식을 하시려고 그러니까 그건 먹지 않는 게 좋겠네" 기분 나쁜 말이 아닌데 왜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냐고 그런다. 이때부터 내가 이상한가? 문제가 있나? 갑자기 왜 이리 날이 서게 된 건지 알 수 없었다.
내 입장에서는 좀 우회적으로 따뜻하게 표현할 수는 없었을까? 서운함이 밀려왔다. 시어머니의 말은 냉장실 공기처럼 차가웠고 그 냉기는 나를 한동안 얼어붙게 만들었다. 냉장고 안 모든 음식이 먹기 싫어졌으며 나도 내가 장을 봐 온 음식을 혼자 먹어야 되나 괜스레 개인적인 감정을 앞세우게 되었다. 플랫 메이트도 아니고 엄연히 가족인데 네 거 내 거 따지는 게 너무 정 없고 이기적으로 느껴졌다.
만약 같은 상황에서 한국 사람인 친정 엄마는 남편에게 어떻게 말했을까? 분명 아예 안 보이는데 놔두거나 기분 상하지 않게 말을 하지 않았을까?
"요아킴, 이건 장모님이 뭐 만들려고 사온 건데 그래서 여기 놔두는 거야."
사위에게 차마 뭐 먹지 말라는 소리는 하시지 않으셨을 터. 설사 남편이 그 음식을 먹는다 하더라도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다시 사 오셨을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와서 "요아킴은 다 좋은데 눈치가 좀 없네" 말씀하시지 않으셨을까?
사실 시어머니에게서 냉기가 느껴진 부분이 오히려 남편 입장에서는 이해가 더 잘되는 말일 수 있겠다. 그리고 "나는 장모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친정 엄마의 말은 이해하기 어려운 난해한 메시지가 될 수도 있다.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이해하기 위해 선택하는 언어적 기술이 전혀 다른 것이다.
메시지 안에 함축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한국의 고맥락문화
명시적이고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스웨덴의 저맥락문화
문화적 관점에서 스웨덴과 한국을 좀 더 면밀히 들여다본다면, 두 나라는 문화적 특성이 극명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 중국, 일본과 같은 아시아권 문화는 표정, 제스처, 말의 톤과 같은 비언어적 단서를 통해 의미를 해석하는 고맥락 문화에 속한다. 반면 스웨덴을 포함한 서양권 문화는 명료하고 직접적인 의사소통을 중시하는 저맥락 문화로 분류된다.
고맥락 문화에 익숙한 나와 같은 사람은 시어머니의 직접적인 말투가 화살촉처럼 꽂혀서 마상을 입을 수가 있다. 반면 저맥락 문화권에 속한 남편은 먹지 말라고 하진 않았으니까 꺼내 먹어버리는 세상 눈치 없는 사위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장을 본 후 남편과 만나서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도 짐을 들어주지 않아서 길에서 폭발한 적이 있었다. 남편은 처음에 내가 화내는 이유를 전혀 알지 못했다. 나는 양손에 짐을 들고 있는 걸 보고도 아무렇지 않게 내 어깨에 손을 얹고 가는 남편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오만상을 다 쓰고 언제 이 짐을 들어줄 건지 시험해 보기 시작했다. "아, 팔 아파" 남편은 왜 팔이 아프냐고 물었다. 이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인가 싶어서 째려보니 그제야 "내가 들어줄까?" 물었다. 인제 서야 그걸 말하냐고 묻자 남편은 내 반응을 더 황당해했다
"네가 짐을 들어달라 소리를 하지 않았잖아"
나는 그걸 어떻게 말을 해야지 아냐고 물었다. 그러니 돌아오는 대답은 더 기가 막혔다
"당신 힘으로 충분히 들 수 있는데 내가 들어주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어"
한국 문화는 관계적이고 집단주의적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화합과 어울림이 중요하다. 그러니 모두가 이 환경적 배경을 이해하고 있다는 가정하에 명시적으로 의미를 전달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와 같은 환경으로 인해 눈치껏 알아야 하는 의사소통이 발달한 것이다. 예를 들어 상사의 말 한마디에 그가 뭘 원하는지 맥락을 파악해야 할 때가 있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 "야 오늘 밖에 날씨 좋은데?" 말하는 건 오늘은 구내식당 말고 밖에 나가서 밥 먹자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반면에 스웨덴 문화 저변에는 집단주의 보다 개인주의 성향이 두드러져있다. 그러니 개인의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직접적인 단어를 사용하는 의사소통이 발달되어 있다.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사는 대표적인 다문화 국가이기 때문에 명시적인 언어기술에 의존하지 않으면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 스웨덴에서 "야 오늘 밖에 날씨 좋은데?" 상사가 말하면 부하 직원은 "네 오늘 날씨가 좋지요? 어제보다 몇 도 높아졌어요."라고 말할 것이다. 반면 한국에서 이렇게 말했다간 "내가 날씨가 몇 도 인지 알고 싶어 말한 줄 아나? 하여튼 저 친구는 센스를 밥 말아먹었어" 속으로 혀를 찰지도 모르는 일이다.
올해로 스웨덴에 산 지 8년 차. 함께 사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 나는 의식적으로 직접적인 의사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꽃이 사고 싶으면 "아, 이 꽃 참 예쁘다" 말하지 않는다. "여보 나 이 꽃 너무 예쁜데 사 줄 수 있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건 스웨덴에서만 해야 한다. 몇 년 전 결혼을 앞둔 친한 친구에게 "미안한데 나는 네 결혼식에 못 갈 것 같아. 한국에 갈 계획을 미리 알 수가 없는데..." 말하고 나서 장문의 문자를 받은 적이 있었다. 못 오더라도 왜 말을 그렇게 하냐는 식으로 내 말투를 지적하며 친구는 서운함을 토로했다. 스웨덴에 살면서 좀 익숙해져가나 싶었는데 의사소통도 나라 잘 생각해 가면서 해야겠구나, 내 인간관계의 평화를 위해서 말이다.
스웨덴 지인과 대화를 나누던 중 주말에 좋은 스파를 다녀왔다며 내부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사진을 보면서 "어? 원래 스파 내에서 사진 못 찍지 않아요?" 묻자 그가 천진난만하게 대답했다.
"사진을 찍지 말라는 경고가 없었어요. 그러면 찍어도 문제가 될 건 없죠"
아무튼 스웨덴 사람들이란. 일일이 다 말을 해야 알아듣는 신기한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