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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채 Mar 11. 2018

[책방창업 2] 창업 전에 읽는 폐업 이야기

책 <오늘, 책방을 닫았습니다>

학창시절엔 늘 졸다가 걸려 혼이 나고, 재수 땐 ‘잠만보’라는 별명을 가졌던 나는, 밤샘 네이트온이 유행했던 대학 새내기 때도 11시가 되면 어김없이 잠을 자러 갔고, 심지어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회식이 길어지면 12시쯤부터 꾸벅꾸벅 졸곤 했다.

언제나 일찌감치 잠드는 나였지만, 일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면서부터 늦게까지 잠들지 못하는 날이 부쩍 많아졌다. 머릿속에 생각이 너무 많아서 잠이 오질 않았다. 그런 밤이면 생각나는 이것저것을 일기장에 끼적거려보거나 TV를 켜두고 멍을 때리기도 했다. 진짜로 몰두해서 답을 찾았기보다는 답을 찾아가는 시간을 보내는 데 심취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날은 조금 달랐다. 나는 기필코 결심하거나 결정하거나 결단을 내리고 싶었다. 보류해두었던 것들을 해결하고 싶었다. 그래, 스스로 답하기 어렵다면 그 길을 먼저 가본 사람의 이야기에서 내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는 힌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늦은 시간 책을 펼쳐들고 사락사락, 신중하게 책장을 넘겼다. 송은정 작가의 『오늘, 책방을 닫았습니다』(효형출판, 2018.1)라는 책이었다.

     

그녀가 어떤 맥락에서 찬성표를 던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내 쪽에 한 명쯤 더 서 있다고 생각하니 왠지 위안이 됐다. 적어도 나 혼자 엉뚱한 길을 걷고 있는 건 아니었다. 커피도 맥주도 없이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 수 있을지 또렷한 대책은 없다. 하지만 춥다고 해서 내 것이 아닌 옷을 허겁지겁 걸치고 싶진 않다. 답을 찾는 와중이니 그저 천천히 기다려달라는 말을 할 수밖엔.
- <오늘, 책방을 닫았습니다> 75쪽 중에서


서울 염리동에 있었던 책방 ‘일단멈춤’의 운영자인 송은정 작가의 책이었다. 처음, 팔로워가 200여 명이던 작은 책방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발견하고 팔로우하고, 꼭 가봐야지 캡처를 해두고, 그해 겨울 저녁 조용히 발길을 들였던 그곳. ‘일단멈춤’은 내가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던 책방이었다.


순수하게 손님으로 찾아간 것은 두 번뿐이었지만, 그럼에도 그곳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이후로도 꾸준히 지켜본 그녀와 ‘일단멈춤’의 여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SNS 상으로 지켜보는 책방의 일상과 염리동의 풍경은 애정을 갖고 응원하기에 충분히 따뜻했다.

그러다 당시 내가 근무하던 출판사에서 독립책방을 소개하는 책이 기획됐고, 편집부에서 직접 취재를 시작하면서 나는 인터뷰이로 다시 그곳을 찾아갔다. 그렇게 작게나마 인연이 닿으면서 우리는 아주 작은 연결고리로 서로를 아는 사이가 됐다.


나는 늘 ‘일단멈춤’이 궁금했다. 이 자그마한 책방이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운영되고, 어떤 어려움과 기쁨을 겪는지, 그 시간이 그녀에게 무엇을 가져가고 무엇을 주는지. 물론 독립책방 도서 출간을 위해 대면과 서면으로 인터뷰를 진행했고, 다른 매체에서 발행된 몇 인터뷰와 글을 읽었지만 내가 궁금했던 내밀한 풍경들은 알 수 없었다.

조용한 골목을 향해 열리는 푸른 문. 따스하게 쏟아지는 햇살. 그 햇살을 받으며 손님을 먼저 맞이하는 커다란 잎사귀. 화려하진 않지만 생각과 손길이 여러 번 닿은 서가. 작은 책상을 차지하고 묵묵히 제 할 일을 하고 있는 책방 주인. 그 모든 풍경이 나는 궁금했다.


그리고 바로 그 이야기를 담은 책 <오늘, 책방을 닫았습니다>가 2018년 세상으로 나온 것이다. 2014년 11월 29일 문을 열었던 책방이 2016년 8월 31일 문을 닫기까지. 책방을 열고 운영하던 때는 물론 어떤 고민 끝에 문을 닫았는지까지도.

염리동의 작은 책방의 시작과 끝을 차근차근 읽어내려갔다. 그 밤, 나는 그녀의 이야기에 따라 희미하게 미소 짓다가도, 미간에 잔뜩 힘을 주기도 했고, 살짝 고인 눈물을 눈꺼풀을 깜박여 말려버리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 책장을 덮었을 때, 나는 물었다.


‘다들 시도해보고, 힘든 시간을 겪고, 결국 문을 닫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책방을 열어야 하는 이유는 뭐지? 어차피 몇 년 새 끝이 난다면.’


그런 의문을 품은 건, 책방을 열겠다고 마음먹으며 내가 걱정했던 부분들을 이 책을 통해 하나하나 확인하게 됐기 때문이었다.

일단 책방 운영은 경제적인 면으로 따져보면 남는 게 거의 없다(듣던 바 그러했는데 직접 사업계획서를 쓰며 예상 순수익을 계산해보니 정말 그러했다. 책방을 통해 큰돈을 벌겠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사업은 사업이니까).

또 작업실 겸으로 공간을 쓰기에는 책방 운영이 생각보다 손과 마음이 많이 드는 일이며 손님 맞이로 집중이 어려울 때가 많다(나는 외주 편집과 글쓰기를 그 공간에서 해내고 싶은데).

그 외에 조용한 성격의 내게 난생처음 보는 손님들이 찾아와 말을 거는 일은 부담이 될 수도 있다(낯선 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내는 까닭에 힘들어한 그녀의 일화들이 있다). 등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모두 읽고 내가 내린 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경험을 해보기로 했다. 내 이야기를 만들기로 했다.

그것은 결국 다른 사람의 경험, 다른 사람의 이야기니까.

나는 나의 책방을 열고 나의 경험, 나의 이야기를 그려갈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몹시도 좋아했던 작은 책방 ‘일단멈춤’의 끝이 정말 끝이 아니라, 그녀의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는 점이라는 것을 알았으니까.

     

다만 일단멈춤에서 머무는 동안 나는 더 많은 책이 읽고 싶어졌고, 더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의욕이 생겼다. 좋아하는 마음이 더 큰 좋아하는 마음을 낳았다. 훌륭한 책방 운영자는 아니었지만 예전보다 더욱 선명하게 책을 둘러싼 일을 사랑하게 됐다. 책방을 닫겠다는 결말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과 닿아 있었다.
- <오늘, 책방을 닫았습니다> 169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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