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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채 Sep 01. 2023

#3 책꼬리_0원으로 누리는 영원한 자유

나의 작은 혁명 이야기


¶ 박정미 『0원으로 사는 삶』(들녘, 2022) 


지난겨울 다소간 번아웃 증후군에 시달리던 저는 우연히 이 책과 만났습니다. 아주 적절한 타이밍이었어요. 이 책을 읽고 몸과 마음이 많이 괜찮아졌고 시야가 좀 더 넓어졌거든요. 


사실 처음에는 고물가 시대에 ‘짠테크’ ‘무지출 챌린지’ ‘소비 단식’ 같은 현상이 등장한 요즘 시대에, 이 책 역시 그런 맥락에서 출간되었겠다 싶어 살펴보려던 것뿐이었어요. 살림에 도움이 된다면 읽고 잘 따라 해볼 의지도 있었죠.


그런데 이 책에는 단지 ‘0원 살이’에 대한 에피소드나 방식만이 나열되어 있지는 않았어요. 바로 그 점이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나의 작은 혁명 이야기’라는 부제처럼, 한 사람이 마주한 혁명의 시간이 그려져 있었답니다.

영국 런던에서 워킹홀리데이로 생활하다가 부당한 일로 해고를 당하고, 높은 월세와 물가에 허덕이던 차에, ‘돈을 쓰지 않으면 된다’라는 단순한 진리(?!)를 발견한 저자는 1년 동안 돈 없이 살아보는 프로젝트에 도전합니다.


돈과 나, 물음을 던진다


단순히 무전여행(無錢旅行, 여비 없이 하는 여행)처럼 그려질 줄 알았던 이 이야기는, 저자 본인과 독자의 예상을 모두 빗겨가며 엄청난 흐름 속에 내던져집니다. 자전거를 타고 자급자족 농장, 친환경 공동체 등을 떠돌며 노동력 교환으로 생활하던 저자는 그곳에서 많은 진실을 깨칩니다.

자본주의 소비 생활에 길들여지는 일, 그리고 공장식 축산 등을 비롯한 농축산 시스템이 얼마나 견고하고 무섭게 설계되었는지를 몸소 알게 되지요. 무엇보다 지금껏 인간이 구축해온 존재 방식이 파괴적이고 빠르게 지구 환경을 해치고 있음에 대해 배웁니다.


‘0원 살이 프로젝트’로 책도 쓰고 다큐멘터리도 만들면 된다는 다소 귀여운 첫 발상과 달리, 도시로 돌아온 저자는 쓰레기통 속에서 먹거리를 찾고, 버려진 집과 보트에서 잠을 자며 생존하며, 마침내 자연으로 향하는 여정에서는 히피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점점 더 가진 것 없이, 자연에 가까이, 타자와의 연결 속에서 흐름을 따르며 저자는 끝없이 '나'의 존재 의미를 찾는 일을 포기하지 않지요. 답을 찾기 어려울 때는 유랑하는 또 다른 히피에게 물음을 던지는 일도 서슴지 않습니다.


자기만의 삶에 도달하는 사람들


그리하여 자기만의 삶, 그 의미에 도달하는 사람. 우리 곁엔 늘 그런 사람들이 있지요. 저자는 무전살이 1년을 끝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여전히 자신의 삶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 지리산 숲속 오두막에서 영원으로 사는 삶을 누리고 있어요.


실은 이 책을 읽는 동안 저는 조금 의심했고 걱정했어요. ‘이 사람 어떡해, 이런 건 너무 위험하지 않나? 어쩌려고 이래? 히피로 살았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건 좀 그렇잖아?’ 

그러나 시스템에 철저히 길들여진 어리석은 저와 달리, 저자가 길 위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계속해서 그에게 말합니다. 우리가 가진 것으로 이미 충분하다고, 당신은 당신 자신으로 괜찮다고요. 


“당신에겐 너무 작군요. 우리에겐 아주 충분한데 말이죠.” - 0원으로 사는 삶, 33쪽
“당신은 이미 매우 괜찮으니 더 나은 당신이 될 필요가 없습니다.” - 0원으로 사는 삶, 275쪽 


영원에 도달하는 법


영원에 도달하기 위해, 저 또한 생활을 되짚어보았습니다. 의식주 중 가장 손쉽게 변화시킬 수 있는 ‘먹기’부터 살펴 돌보았지요.

설탕과 버터가 잔뜩 들어간 디저트가 먹고 싶어질 때마다 ‘내가, 진짜로, 그것을 먹고 싶은 것인지’를 되물었어요. 삼시세끼 배불리 먹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고 일주일에 두 끼 정도 샐러드로 식사하기 시작했어요. 혼자 먹기에 넘칠 만큼 책방에 배달시켜 먹던 음식도 끊다시피 했고요.

남아도는 자원과 그것들을 담았던 쓰레기로부터 자유를 얻기 위하여. 내 몸에 필요하고 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느끼고, 가능하다면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음에 주목하고, 그 고통이 나에게 화살을 돌리는 날이 있을 줄을 기억하려고.


모든 것은 준비되어 있고, 일어나야 하는 일들은 제때 일어나는 흐름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힘들어했던 시간도 그런 이치였겠지요. 스스로 각성하고 생활에 작은 변화를 주기 시작하면서부터, 지쳐 나자빠질 것 같던 상황들이 조금씩 풀려 나아졌습니다. 생기가 돌기 시작했죠.

제 삶에도 많은 일들이 저절로 일어날 텝니다. 그 흐름에 몸을 맡기고, 지금의 충분함을 믿으며, 나와 연결된 당신께 편지를 띄웁니다. 감히 말해봅니다. 괜찮다고, 괜찮아질 거라고요.◆ 



(2023.03.31. 순천에서 민채 드림)



우리가 어떤 책과 만나는 데는 타이밍이 존재한다고들 하지요. 책을 읽다보면 독서는 반드시 확장됩니다. 책에서 소개한 책, 비슷한 사유를 담고 심화해가는 책, 같은 저자의 책… 책이 슬쩍 내려놓은 꼬리를 물다보면 우리의 세계는 얼마나 멀리까지 도달할 수 있을까요? '책꼬리'는 책에서 파생되는 또 다른 책의 꼬리를 물고 이야기를 연결해갑니다. 『0원으로 사는 삶』의 꼬리를 문 책은 『아무튼, 비건』과 『날씨와 얼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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