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장사가 어려운데요>라 말하는 사장님의 피, 땀, 눈물에 대해
지난 개천절, 두 달여 만에 처음으로 일 없이 쉬는 날이었다. 감격에 겨워 오늘 뭘 하며 쉬어야 할지 이불 속에서부터 늘어지게 고민하느라 아점 먹고 정신 좀 차리고 나니 벌써 정오가 다 된 시각. 하릴없이 인스타에 들어갔다가 엉짱윤치킨집의 공고를 보았다.
오늘은 물량이 많고 내일은 쉬어요. 예약이 안 될 수 있으니 그냥 오시면 됩니다. 약 4시경 매진 예상됩니다.
언젠가 꼭 먹어보고 싶었던 그 닭강정. 혹시나 해서 지도 앱을 켜보니 우리 집에서 31분이면 된단다. 4시 전에 사오려면 슬슬 움직여야겠는데... 아 귀찮아, 가지 말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세수하고 머리 감고 드라이하고 옷 갈아입고, 얼굴에 뭐라도 찍어바르고는 커다란 에코백에 냄새 차단용 비닐과 책 한 권 챙겨들고 나갔다. 아니, 닭강정이 뭐라고 이렇게 출근하듯 버스까지 타고 간단 말인가!
말이 나온 김에 닭강정이 뭔지 알고 가보자. 치킨생활의 바이블 <치슐랭 가이드>는 닭강정을 ‘양념치킨의 별종’이라고 표현한다.
1972년 7월 11일자 〈동아일보〉에 (닭강정) 조리법을 쓴 단국대학교 정순자 교수는 ‘뜨거울 때 먹어도 좋고, 완전히 식어도 좋다. 거무스름하면서 윤기가 나서 보기에 좋으며, 달콤하고 칼칼해 반찬으로 훌륭하다’고 덧붙였다. 여기까지는 재료에 설탕이 쓰였다. 그러다 1993년 〈경향신문〉에서는 ‘닭튀김(후라이드 치킨)이 남았을 경우에는 닭강정이 제격’이라며 ‘얇게 저민 마늘과 마른고추를 볶다가 간장, 물엿, 물을 조금 넣고 끓인 후 닭튀김을 넣고 버무린 뒤 녹말물을 넣어 윤기 나게 졸이면 된다’는 조리법을 소개했다. 이 기사에는 물엿이 등장한다. 그사이 물엿을 넣은 닭강정이 존재를 드러낸 것이다. 닭강정의 조리법이 신문에 소개될 정도면 이미 외식 메뉴로 크게 사랑받고 있다는 뜻이 된다.
조리법에서 양념치킨이나 깐풍기와 약간 다른 닭강정은 한반도의 동쪽과 서쪽, 닭강정의 성지로 꼽히는 두 도시의 시장 골목에서 유래되었다. 동쪽의 속초에서는 만석닭강정과 속초시장닭집, 중앙닭강정이 사람들을 끌어모았고, 이 여파가 강릉의 중앙시장까지 미쳐 또 다른 닭강정 골목을 형성했다. 서쪽에 자리한 인천의 신포국제시장에서는 신포닭강정, 찬누리닭강정 등이 유명한데, 닭을 큼지막하게 조각 내 거의 양념통닭처럼 나온다. 닭강정을 즐기는 이들 사이에서는 속초와 인천 외에 영월을 포함한 ‘3대 닭강정’이 거론되기도 한다. 영월에서는 영월서부시장의 일미닭강정과 이가닭강정이 전국구 명성을 얻고 있다.
내가 먹으려는 이 닭강정은 전국구 명성을 얻고 있지는 않지만, 얻고 있는 중인 건 분명하다. 블로그에 '엉짱윤 닭강정'을 검색해보니 전국 곳곳에서 리뷰가 올라온다. 여기는 택배가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처럼 다른 동네에서 오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이 닭강정을 알게 된 것은 사실 일 때문이었다. 배달의민족의 소상공인 지원 프로그램인 ‘배민아카데미’가 기획한 <저도 장사가 어려운데요>를 최근에 출간했는데, 책에 이야기를 풀어주는 사장님 중 한 명이 엉짱윤치킨의 백윤희 사장님이었다. 어렵게 들어간 대학보다 치킨집 아르바이트가 더 좋았다는 독특한 캐릭터. 겁도 없이 수천 만 원을 대출받아 장사를 시작한 스물한 살의 초보 사장님이 11년 동안 일구어온 가게를 꼭 보고 싶었다. 나도 작게나마 사업을 시작해보니 이게 참 보통 일이 아니구나 하루하루 실감하는데, 아니 치킨이 뭐라고 다니던 학교도 그만두고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 길을 홀로... 헐...
헐... 하는 놀람은 엉짱윤치킨뿐이 아니었다. 맨손으로 시작해 광주전남에서 가장 잘나가는 족발집을 만든 깐깐한족발도 그렇고, 앞날이 안 보이는 직장생활을 과감히 청산하고 시작했다는 준스피자도 그렇고, 맥도날드 같은 브랜드를 꿈꿨다가 호되게 실패해본 일도씨패밀리도 그렇고... 돈도 없고 브랜드도 없고 경험도 없이 시작한 장사의 길을 10년 가까이 걸어오며 쌓은 사장님들의 자수성가 노하우를 읽는 심정은 꽤 복잡했다. 영업 끝나면 밤새워 차를 달려 전국의 맛집 사장님을 찾아가 노하우를 청하고, 책을 읽고, 월세 절반을 털어 강의를 듣고, 손님들에게 맛없다는 이야기를 들어가며 맛과 서비스를 개선해간 이야기에서 어쩐지 80년대 스포츠 만화 같은 페이소스랄까, 애잔함이 느껴졌던 것이다. 왜 하필 스포츠냐 하면, 주요 국면에 꼼수나 임기응변이 아니라 정면승부를 택한 것이 인상적이어서였나 보다.
엉짱윤치킨도 그랬다. 택배 한번 시키기가 보통 까다로운 게 아니다. 일단 홈페이지 회원가입을 해야 하는데, 바로 가입되는 것도 아니고 승인을 받아야 한다. 여름엔 닭강정이 눅눅해질까 봐 택배를 아예 안 하고, 다른 계절에도 평소 택배 발송물량을 감안해 본인이 감당할 만큼만 승인하는 것 같다. (나도 그래서 8월에 회원가입 신청해서 9월말에 겨우 승인받았는데, 사이트 들어가니 택배 오픈 11분 만에 매진... 그래서 택배는 반포기 상태였다.) 철저하게 기존 고객 우대 시스템이다. 당연히 불만도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한 건, 닭강정 초창기에 돈 주고 사먹고는 맛없다고 피드백을 줬던 단골손님들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초창기에는 닭강정이 맛이 없었어요. 그때 고객들은 돈 내고 다 드시고 나서 맛없다고 피드백을 주셨어요. 그런 분들이 지금까지 단골로 계십니다. 아무리 돈 버는 게 좋다지만 이분들이 신규고객에 밀려서 저희 닭강정을 못 드시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와... 어떻게 이처럼 단단한 원칙을 세웠을까. 모든 결정을 혼자 해야 하는 데다 연륜도 많지 않은 사장님이다. 게다가 결정만 하면 끝인 게 아니라 본인이 공지도 올리고 클레임 대응도 직접 다 해야 하는 실무자로서 원칙을 지켜가기가 쉽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그래서 꼭 가보고 싶었다. 아, 물론 맛도 궁금했다. 책 만들면서 엄청 고생시킨 디자인 실장님에게도 한 통 보내드리고. 이런 수고로라도 은혜 갚을 기회가 된다면야ㅠㅠ
버스를 내려서 한가한 목동 거리를 걷는데 도대체 어디에 가게가 있다는 거야? (네, 제가 지도를 읽긴 읽는데 좀 어설픕ㄴ..) 분명히 이 건물이 맞는데 왜 안 나오지? 가게가 작다더니 정말 작나 보네? 하고 건물을 크게 돌아서 다시 대로변으로 나오는 순간, 보았다. 대기줄.
꽃집을 해도 되겠다 싶게 예쁜 외관에 한 번 놀라고, 주방과 접수 카운터 정도의 공간밖에 안 나오는 작은 가게라는 데 두 번 놀랐다. 그 앞에 줄이 서 있고, 자연스레 나도 줄 끝에 가서 섰다. 줄 서 있는 사람 말고 근처 벤치나 차단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도 꽤 됐는데, 알고 보니 이들은 주문을 마치고 수령을 기다리는 앞선 자들이었다. (하, 부럽...) 이들 중 한 명이 수령해가면 대기줄의 한 명이 주문을 넣는 체계적인 시스템에 누구 하나 토 달지 않고 조용히 응하고 있었다. 인근에 사람이라곤 백 명도 눈에 띄지 않았는데 그중 절반 이상은 이 가게 주변에 포진해 있었다. 하... 도대체 닭강정이 뭐길래.
약 30분을 기다려 드디어 내 주문 차례. 앞사람이 주문할 때부터 이미 나는 메뉴판을 보면서 뭘 시킬지 숱하게 시뮬레이션해보고, 3통을 시키고 싶은데 안 된다고 하면 당황하지 말고 ‘그럼 대자 2통’으로 유연하게 바꾸는 연습도 미리 해두었다. 그리고 드디어 내 순서! “저... 3통도 되나요?”라고 접선하듯 은밀히 물어보니 “네, 그럼요!”라고 눈 동그랗게 뜨고 응대하는 사장님. 와, 이렇게 작고 귀여운 인상이었다니. 단단한 여장부(?) 스타일을 상상했던 나는 약간 당황했다.
그러고 나서 다시 시작된 대기타임. 기다리고 있으면 전화번호 뒷자리를 부르며 대기 타는 손님을 부른다. 타고난 청이 크지는 않은 것 같은데 잘 들렸다. 저 목소리를 내려고 전화 목소리를 녹음해서 듣고 고치고 듣고 고쳤다는 원고가 생각났다. 뭐 하나 그냥 되는 게 없구나.
드디어 수령 타임. 뿔소스 3개와 치킨무 2개를 추가하고 계산할 때를 노려 “사장님이세요?” 물으니 그렇다고 한다. 출판사에서 왔다고 하니 깜짝 놀라며 “아, 정말요?” 하며 약간 당황하는 표정. 책 만들면서 꼭 먹어보고 싶었다고 하니 민망해하면서도 버스 타고 가려면 뚜껑을 덮어야 하니 눅눅해질 텐데 하고 맛 걱정을 하고. 마치 상견례에서 처음 인사하는 안사돈들처럼 허리를 꺾어가며 공손하고 활기차게 인사하고 헤어졌다. 한 시간 만에 닭강정 3통을 획득하여 보무도 당당하게 이고지고 돌아와서 보니 치킨무가 3개다. 수인사하는 와중에 치킨무 하나를 더 챙겨주셨나 보다.
그사이 4시가 넘어갔으니 닭강정은 매진됐겠군, 과연 부지런히 움직인 보람이 있어 음하하. 식구들 먹을 닭강정을 식탁에 부려놓고 하나씩 집어먹으며 아 맛있어 즐거운 감탄. 닭강정이 뭐냐니, 맛있는 거지. 전국으로 치킨맛집 리스트를 뽑아 기차 타고 가서 하루 네끼 치킨만 먹고, 포장해와서 일주일 동안 먹어가며 맛의 변화를 보고, 소스를 만들고, 지인들에게 보내고, 달다 짜다 맛없다는 말을 듣고, 또 고치고, 그렇게 3년 만에 지금의 닭강정을 만들었다고 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닭손질을 하고, 튀기고, 버무리고, 식히고, 손님 응대하며 짬짬이 인스타에 사진도 올리고, 오늘은 몇 시에 매진될 것 같다는 머신러닝급 예측공고도 하고, 택배를 보내고... 닭강정이 뭐냐니, 맛있어질 때까지 기울인 노력이지. 앞날이 아득한 상황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닭 튀기는 것이니 이걸로 일어서겠다’는 사장님의 결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