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17살로 돌아가고 싶다
1. 연극편
요새 회귀물이 그렇게 유행이다. 유행을 그다지 꿰차고 있는 편도 아니건만은 카카오페이지에 들어가보면 그 정도가 좀 심해서 금방 알 수 있다. 현대의 누군가가 죽었다 다시 깨어보니 공작가/왕가/황가의 딸이 되어있고 전생의 기억은 그대로 있고, 보통 자신이 악녀거나 아빠가 뱀파이어거나 희대의 폭군이거나 아무튼 그렇다. 누구누구의 딸이 되었습니다...라는 식의 제목은 이제 좀 그만 나왔으면 좋겠고, 현대의 인물이 그대로 현대에서 회귀하여 십수년 전의 자신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많다. 이런 식의 회귀물은 사실 꾸준히 인기가 있었던 것 같다. 말하자면, 우린 다 지금의 기억을 가진채로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 인생 2막을 살고 싶어한다는 것이렷다. 물론 진지하게 생각해서 진짜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 수능을 다시 치고 대학 새내기부터 졸업, 취업 그걸 다 다시 하고 싶다고? ....라고 한다면 아주아주 많이 고민이 되겠지만 지금의 기억을 가진채로 회귀하면 누리는 초능력과 같은 특권을 생각하면 다시 할 만도 하지 않은가. 그래봤자 생각나는 건 애플 주식을 사야겠다 정도뿐이지만. 공부? 언어와 영어는 그때보다 훨씬 잘하겠지만 암기과목과 수학은 ..어우 생각하기도 싫다. 지금 난 일차방정식조차 어떻게 풀었는지 기억이 안 난단 말이다. 아 아니지. 지금 회귀한다면 그때부터 기술을 하나 파서 대학은 안 갈 수도 있겠네. 근데 그러면 지금의 신랑을 못 만나잖아. 근데 나 이 사람이랑 다시 결혼할껀가...? 아니 잠깐 스톱.
아무튼, 안그래도 회귀물이 유행이라 보고 있는 회귀물 만화도 많은데 얼마전 종영한 ‘슬기로운 의사생활’ ost에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이 있었던 것이다. 드라마를 안 봐서 그때는 몰랐고, 유튜브 뮤직이 선곡해줘서 어 이 노래 리메이크됐네 하고 알게 되었다.
이 노래는 나를, 내가 고등학생이었던 때로 회귀시켜주는 노래다. 노래가 나왔던 시기가 일치했고, 그때 참 많이 듣기도 했었지만 가사 하나하나마다 어떠한 순간의 장면을 ‘마치 그림처럼’ 떠오르게 해줘서 더 그렇다. ‘해질녘 노을’의 시간엔 참 많이도 설렜고, 설렜던 것 만큼 우울했었다. ‘한편의 아름다운 그림’같은 순간들도 많았지. 그게 나한테만 아름다웠던것 같아 좀 우울하지만. ‘소중했던 우리 푸르던 날들’ 이었다. 정말로, 정말로 푸르렀고 십대 후반의 어리고 어렸던 나이만큼 포카리 스웨트마냥 청량했다가도 지옥불처럼 타올랐던, 이성은 아무래도 없었던 것 같고 감정만이 들끓었던 17살, 18살, 그리고 19살의 날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경남 거창에 있는 기숙학교였다. 기독교 미션 스쿨인데 명문대 진학률이 높아서 경남권과 기독교계에서는 나름 유명한 학교다. 내신을 따기가 비교적 수월했던 산골에서 중학교를 다닌 덕에 입학은 했지만 입학하고 친 첫 모의고사에서 뒤에서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기염을 토했다. 낙천적이고 미련이 없으며, 안되겠다 싶은 것에 굳이 애쓰지 않는 성격 덕에 첫 모의고사 이후 나는 빠르게 공부를 포기하고 뭔가 다른 할 만한걸 찾아 헤맸다. 공부로는 안되더라도 뭐라도 하나, 잘하거나 잘하고 싶은 게 있어야 그 쟁쟁한 아이들 사이에서 숨은 쉬고 살겠더라. 그래서 결사적으로 파고들었던 게 연극이었다.
연극부 카타르시스는, 사실 처음엔 친오빠가 거기 있어서 그냥 들어간 거였다. 나는 연기력이 꽝이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1학년들의 첫 데뷔작 오디션을 봤는데 정말로 참담했다. 선배 언니오빠들이 팩폭을 오지게 했는데 정확한 워딩이 하나도 기억이 안나는 걸로 봐서 나의 무의식이 트라우마 생길까봐 효과적으로 방어해낸 듯 하다. (핵심은 ‘넌 연기하지 마라’ 였다) 그래도 연극부는 좋았고, 배우 말고도 할건 많았다. 그래서 연출을 하기 시작했다. 이게 재밌는게, 연기는 발연기지만 연출은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것 같았다. 나는 그 감정 못 살리지만 어떤 감정과 톤으로 이 대사를 읽으라고 지시는 할 수 있었다. 분량에 맞게 긴 대본을 고치고 또 고치고, 음향과 조명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하고, 무대 위의 배우들이 대사를 치는 동안 전체적인 분위기를 지시하고 동선을 짜며 함께 작품을 만들어나가는 그 모든 것이 너무 좋았다. 아마 그렇게까지 연극에 빠졌던건, 좋아하는 마음도 있었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이 학교에서 내가 너무나 초라하고 아무것도 아닌 1인이 될 것 같은 두려움에서 그랬던 것 같다. 그곳은 그랬다. 뭐라도 잘하는게 있어야 했다. 잘하지 못한다면 정말로 좋아하거나 열심을 내는 뭐라도 있어야 했다. 나만 그랬나?
총 5번의 연출을 했다.
그 첫번째는 2000년 가을예술제 1-3반의 그....제목이 뭐더라. 그건 중요하지 않다. 여기서 육대양 교주, 6지원이 탄생했으니까. 그때 난 왜그랬던지, 뭔가 있어보이는 작품을 하려고 했었다. 개뿔. 지금 생각해보면 겨우 10~15분의 짧은 시간 안에 연극 한 편을 해야 하는데 만다꼬 1시간도 넘어가는 진지빠는 대본을 가지고 와서 고치고 또 고치고, 애초에 내용부터가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데 그나마도 산으로 가고. 아 진짜 왜그랬지 ㅠㅠ
적당히 재미지고 가벼운 가족물, 학원물 아니면 블랙 코미디 정도를 시도했으면 연습도 재밌고 반응도 훨씬 좋았을것 같은데 말이다.
그리고 두번째 연출, 카타르시스 1학년들의 데뷔무대 ‘도덕적 도둑’ - 장진표 코미디라는 신세계를 알게 해준 작품이다.
세번째 2학년 가을예술제 ‘해부학은 여성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나’ - 이것도 아무말대잔치 같은 대본이었는데 우리의 주연이 열연을 해주어 여우주연상을 받아내었다. 내가 정말 미안했어 그땐....ㅠㅠ
네번째, 카타르시스 2학년 정규 무대, ‘기적을 파는 백화점.’ 이거 연출하다 멘탈이 한번 나갔었다. 뭣때문이었는지, 연습기간이 지지부진하게 늘어졌었다. 그 사이에 우리는 중간고사, 기말고사도 쳐야 했고 아무튼 연습한번 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뭐 그리 카리스마 있는 연출이냐, 그렇지 않다는 거 알잖아. 날짜는 다가오는데 뭐 제대로 되어가는 건 없고, 작품 스케일은 큰데 동력은 떨어져가니 모든 책임의 화살이 연출인 내게로 돌아왔는데 나는 그걸 감당할 깜냥이 없었다.
그래서 도망쳤다.
거창에서 남원으로, 남원에서 진주로.
2박 3일을 그냥 학교에서 도망쳐나와 부모님의 지인 집을 유랑하고 아무런 해결없이 돌아왔다. ‘나 이렇게 힘들어’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렇게밖에 표현을 못 했다. 당연히 아무도 알아주지 못했고, 다들 자기 살기 바빠 나의 이런 철없는 징징거림을 받아줄 여유는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학교를 삼일이나 무단결석을 했는데 내가 결석을 했는지도 모르는 친구들도 있었다. 혹은 모르는 척 했거나. 그 친구들은 ‘너만 힘드냐?’하고 말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리는 해냈다. 지성, 시희, 몽녀는 열연했고 마지막 장면에서 저승사자의 주먹을 실수로 코로 받아버린 지성이 실화로 코피를 줄줄 흘리는 동안 무대는 암전됐다.
연극을 무대에 올린 다음 날 아침, 나는 위경련이 일어나 적십자 병원에 입원했고 카타르시스 친구들이 모두 병문안을 와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연출, 졸업작품 ‘라이어.’
고3 여름, 대학로에서 라이어를 너무너무 재밌게 본 나머지 이걸 졸업작품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연습 돌입 직전 한번 더 보고 싶어서 졸업여행을 째고 혼자 대학로에 가서 연극을 관람했다.
주연배우 7인, 폰트 8로 프린트한 a4용지 40매에 달하는 대본.
연출을 하면 그걸 힘들이지 않고 달달 외울수 있게 된다. 물론 배우들도 대사를 다 외웠고, 최선을 다해 연습했지만 우리의 첫 무대는 그야말로 일순 난장판이 될 뻔했다. 서로 대사를 치고 받으며 꼬이고 꼬이는 작품인만큼 대사와 등장, 퇴장의 타이밍이 절묘해야 하는데 누구는 대사를 까먹고, 누구는 만나면 안 되는 사람을 만나버리고 하는 통에 우리는 다같이 ‘망한건가...’라고 생각했지만 다행히 어떻게 잘 수습하여 아무말대잔치는 막을 수 있었다.
다행히 2회차 때는 다들 물이 올라 실수 한번 없이 완벽하게 무대를 마무리했다.
마지막 대사가 말해지는 순간 엔딩 사운드가 팡 하고 터지며 무대가 암전되고, 관객들이 기립 박수를 치는 동안 다시 무대가 밝아지자 배우들과 스태프, 나는 다함께 박수와 환호성이 울리는 작은 소극장의 환한 무대에 서서, 이건 우는 건지 웃는 건지 하는 표정으로 서로를 돌아보는 그 순간, 우리는 모두 ‘카타르시스’
그렇게 공부와 삶과 관계에 골고루 나눠 써야 했을 고등학교 3학년의 모든 에너지를 연극에 불태우고 대학에 들어갔더니 연극부를 포함한 아무런 동아리 활동도 하기가 싫었다. 내 삶에서, 내가 직접 들어가는 연극은 여기서 퇴장했지만 배우들의 에너지와, 숨소리와 육성과, 치밀하게 계산된 동선과 조명, 음향과 무대위의 모든 것을 여전히 사랑한다.
자전거탄풍경 노래 얘기하다 여기까지 왔네. 아무튼 시리즈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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