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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칸나 Nov 22. 2015

야생 고양이 #37
<칠레> 동행

남아메리카 표류기 :: 배낭여행  

칠레 Chile

“역사는 짧지만 그 역사를 수 십 번 읽는다.”
이것이 내가 세계에서 제일 긴 나라 칠레에 도착해서 처음 본 말이다. 권투를 하고 자전거를 타고 운동을 하며 일상 속 행복을 좇는 새로운 나라에 도착한다. 파타고니아의 맹렬한 추위가 계속해서 엄습해온다. 4월의 남부 칠레는 호되게 춥다. 우리는 산책 후 맥주 한 잔을 마시며 만남을 축하한다. 그리고 추운 밤을 지나 아침부터 헐레벌떡 뛰어 배에 승선하고 목적지를 향해간다.  


다시 히치 하이킹 

까르테라 오스트랄 Carretera Austral 에 도착하면서 스테파노와 나, 그리고 까를라 Carla와 곤잘레스Gonzales 네 명의 히치 하이킹 여정이 시작된다. 칠레 국경을 넘으며 만난 그들은 텐트, 그리고 즉석 요리할 수 있는 장비들과 보온 기능이 좋은 침낭 등 혹 그들이 히치 하이킹에 실패해서 아무도 없는 황야에서 밤을 청하게 될 때를 위한 준비가 되어있다. 여행을 함께 하는 그 커플은 성수기에 호스텔에서 같이 일을 했고, 까르테라오스트랄 여행을 마치고 본격적 겨울이 되면, 산티아고 근처 북쪽 스키장에 가 일을 하면서 다음 여행을 꿈꿀 것이다. 스페인어는 그들을  칠레뿐 아니라 중남미 대륙 전체를 엮어 주어 하나의 연대감을 만든다. 



히치 하이킹의 매력이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 또 상대는 그 지역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경험과 이야기를, 공감을 나누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경우 히치 하이킹을 해도 그저 어떤 인상을 가지는 것이 전부다. 새로운 마을에 가도, 신나는 현지인들을 만나도 언어 장벽으로 인해 늘 아쉬움을 남긴 채 헤어졌다.


또 모험과 낭만은 말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쓰여진 글과 이미지 너머에 있는 현실이란 것은 혹독한 것이어서 땀과 인내로 한 땀 한 땀 만드는 십자수 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치 하이커들은 자신들의 여행의 그 오지 않을 지도 모르는 행운을 서두르지 않고 기다린다. 희망에 전부를 걸지도 않고 좌절에 모든 걸 내어주지도 않는다. 상황은 늘 예상외이지만 어떻게든 우리는 길을 갈 수 있다. 아보카도, 토마토, 양파와 삶은 계란, 빵, 이런 것들은 장거리 버스를 위해 마련된 필수 식량이다. 여행의 기술을 어깨 너머로 배운다.


오랜 기다림이 있는 쉽지 않은 여정이다. 무엇보다 4명이라는 인원은 이상적인 숫자가 아니어서, 히치  하이킹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다. 오지 않는 차를 기다린다. 알 수 없는 말을 듣는다. 텅 빈 거리에서 넋을 놓고 기다린다. 개들이 짖는다. 그저 행운을 빌며 어떤 차를 기다릴 뿐이다. 긴 시간 동안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기다림을 추억의 시간으로 바꾸는 법을 만들어간다. 책을 읽고 여행을 얘기하고 글을 읽고 차들이 지나가면 몇 가지 쇼를 보이며 유쾌함으로 손짓한다.



기다림의 시간

여행에 피로를 느낀다. 여기까지 왔으니 이것도 해야 되고 저것도 해야 되는 강박관념이 어디선가 피어나기 시작하는데 지친다. 거기에 하루의 의욕까지 잃어가면 여행은 갑자기 스트레스가 된다. 차도 한대 오지 않는 길거리에 침묵이 흐르고 히치 하이킹은 실패가 되려 한다. 오랜 기다림. 낭만으로 시작해도 견뎌야 하는 현실이란 철저히 냉정하다. 희망을 놓지 않는 것, 그래도 다시 즐기려는 마음을 다지는 것만이 최선이다. 그 찰나, 커다란 트럭을 몬 아저씨가 멈춰 선다. 4시간의 기다림 끝에 오후 5시를 향한 시간이었다. 희망은 죽지 않았다고 긍정해주어서 고마워요. 핑크색 반팔을 입은 유쾌한 칠레아저씨가 탄 발랄한 아코디언 음악이 흐르는 트럭 여정은 꽤나 낭만적이다. 설산과 푸른 물줄기 카르테르 오스트랄 길의 색은 찬란하다. 덜컹거리는 길을 지나며 석양을 바라 보았고 그 날 저녁 우리가 목적한 곳에 다다른다. 



다시 히치 하이킹을 해 코이아께Coyhaique에 도착한다. 그곳 곤잘레스의 친구 집에서 그가 직접 사냥한 사슴 고기 파스타를 먹으면서 그의 집을 구경한다. 나무 오두막으로 만든 2층짜리 단독 주택에 아주 커다란 무서운 이빨을 가진 상처투성이 눈이 새빨간 두 마리의 하얀 사냥개가 있다. 마지막 만찬을 마지막으로 일주일간의 동행에 마침표를 찍는다. 칠레친구들은 이곳에서 비행기를 탈 것이고 스테파노는 히치 하이킹을 하며 천천히 이동할 것이다. 나는 버스표를 끊고 다시 홀로 떠난다. 까르테르 오스트랄에 대한 정보는 정보센터에서 얻은 것이 전부지만 얽매이지 않을 것이다. 얄궂은 일주일이 지나갔다. 



Adios Chile 안녕 칠레

아름다운 칠레의 파타고니아를 지나치고 따뜻한 파블라와 주옹과의 만남을 정리한다. 우리는 칠레-아르헨티나 국경 근접 마을 푸타레우푸에 도착하고 점심을 먹는다. 그곳에서 아르헨티나로 향하는 하루 한 대 아침 버스를 놓쳐 다음날 버스를 기다리는 것이 맞지만 나는 무작정 국경을 향하기로 한다. 칠레 여행을 진행 중인 파블라와 주옹은 고맙게도 그곳까지 나를 태워준다. 우리는 포옹을 하고 서로의 행운을 빌어주며 헤어진다. 따뜻하고 정 많은 포르투갈 사람들과의 아름다운 인연이 어디에선가 다시 만나기를 기원하며.


칠레 여행은 짧았다. 다시 올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두고 추위를 피해 북쪽으로 도망간다. 겨울, 추위가 주는 냉기는 마음을 슬프게 만든다. 몸과 마음이 움츠러들고 여유가 없어진다. 북쪽으로, 적도에 가까워지면 그 따스한 햇살을 통해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 같다는 환상으로 페루와 볼리비아를 향해 빠르게 이동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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