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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칸나 Nov 25. 2015

야생 고양이#39
<아르헨티나> 질긴 생명력

남아메리카 표류기 :: 배낭여행

예술가 환Juan

라팔다 La Falda

라팔다La Falda를 가게 된 것은 우연치 않은 일이다. 볼리비아 비자를 발급받기 위한 시간과 아르헨티나 국경일과의 묘한 교집합이 아르헨티나 체류기간을 늘려주었다. 코르도바Cordoba 근교에 사는 환 Juan과 에페 Efe의 그 자연주의적인 카우치서핑Couch Surfing 자기소개가 내 호기심을 자극해 그들을 만나기로 한다. 


실제 라 팔다에 도착하면 그냥 너무 작은 마을일 뿐 색다른 무언가를 찾을 수 없어 실망스럽다. 낮고 작은 산들, 코르도바 도시에서 교외로 나와 캠핑을 나온 사람들, 일상, 별달리 색다를 것 없는 골목 사이에 그들이 살고 있다. 깡 마른 체구에 수염이 덥수룩한 환을 만난다. 


그들의 집에는 7마리의 고양이 1마리의 개가 있다. 집 외관은 낡고, 집의 위치도 마을 외곽에 있다. 그 둘은 자신들의 집 남은 한 개의 방을 가끔 여행자들에게 내어준다. 거실은 좀 어수선하지만, 커다란 유리창이 햇살을 받고, 인도에서 사 온 그림이 텅 빈 푸른 벽에 걸려있고, 좌식 소파와 나무로 된 책상이 있다. 그들의 공간에 현대적인 것이라곤 컴퓨터뿐이다. 모든 게 하나씩 빠져있는 듯 유연한 자유로움이 있는 그 집에는 텅스텐 조명에 막무가내로 흩어진 매트릭스들, 작은 가구와 낡은 오디오, 쓰레기장에서 주어온 소파, 대충 만든 의자, 정돈되지 않은 정원과 여러 사람들이 남기고 간 희귀한 수집품들이 있다. 그들은 어쩌면 조금 지루할 수 있는 자신들의 일상을 카우치 서핑을 통해 새로운 사람과 문화를 만나면서 여행을 대신한 만족을 얻는다. 길거리에 안타까운 동물들을 도와 기르고, 일상의 소박한 낭만을 즐긴다. 


환은 식물에 관한 기사를 쓰는 기자이다. 그는 도시의 삶을 모두 정리하고 이 시골에서 살기  시작한 지 3년째다. 집 뒤뜰에는 여러 가지 꽃과 야채를 키우는 자기만의 정원이 있다. 고작 15평 도 안 되는 정원에 자신의 낭만을 가득 채우고 연구한다. 식용이나 판매용으로 쓰기에는 너무 양이 적은데, 그는 다양한 식물들을 관리하며 특성을 이해하는 데에 관심과 시간을 쏟는다. 그 정원은 과학자보다 예술가에 가까운 환의 특성을 담아내고 있다. 그는 마을 뒷동산에 사는 각종 다양한 식물군을 조사하고, 돌의 역사와 물의 흐름의 기원을 찾아가고 나뒹군 뼛조각 등을 기록하며 일주일에 한 번씩 기사를 기재한다.

 


질긴 생명력

하루는 환을 따라 산행에 나선다. 물줄기를 따라 피어난 숲과 메말라서 더 짙은 녹색 향기가 가득한 산이다. 그는 산의 물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고 한 그루의 나무가 가진 역사를 구체적으로 관찰한다. 그 산은 어떤 지질을 가지고 있는지, 투명하고 반짝이는 돌은 또 어디에 쓰일 수 있는 지, 한 걸음 한 걸음 그 작은 것들을 보는 눈이 아주 예리하다. 그 산에는 평화스러운 말들과 반짝이는 암석, 산귀퉁이 염소 머리뼈가 드러낸 죽음의 신비가 공존한다. 예전에 산불로 다 타 버린 이 산위에, 질긴 생명력으로 다시 피어나는 나무의 저항이 숨쉬고 있다. 그 끝없는 삶에 대한 의지와 긍정이 숭고하다. 


그는 예전에 이 인적이 드문 이 산 꼭대기에서 알몸으로 자유를 느껴본 적이 있다고 말한다. 그때 느낀 완전한 자유의 상태가 주는 희열이 너무 강렬했다고 회고한다.


환의 할머니는 이탈리아인, 할아버지는 스페인 사람. 척박한 땅에서 살아 남아야 했던 사람들은 응용과 연구를 통해 그 안에서 적응하고 삶을 개척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개척자의 자손은 일상적이지만 매우 단단한 자신만의 개척정신을 가지고 살아간다. 글을 쓰고 세상에 자신의 말을 전하는 환이 말한다. 용기를 내어 세상에 말해야 한다고. 정답이란 건 없는 것이니까. 살아가는 비슷하고도 다른 태도와 방법들을 배우고 그곳을 떠난다. 다른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이곳에 살아가고 있다. 모두 ‘가치’를 찾아 각자의 여행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와 이별: 살타 

내 여행 아르헨티나의 마지막 종착지 살타 Salta. 빨래를 하고 공부를 하고 다시 계획을 짜는 쉼의 시간인 거다. 그간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카우치 서핑으로 지내면서, 조용한 시간이 없었다. 볼리비아로 가기 위해 비자를 받아야 하고, 공휴일이 겹쳐서 날을 맞추느라 조금 더 머무른다. 그리고 다니엘라Daniella를 만난다. 


다니엘라 Daniella

한쪽 귀에만 파란색 깃털이 있는 귀걸이를 한 여자가 있다. 윤기 나는 갈색 긴 머리를 질끈 묶고 노란색 커다란 노스페이스 가방을 메고 깡다구 있게 돌아다니는 네덜란드 친구 다니엘라는 자신을 ‘다니’라고 소개한다. 오똑한 콧날에 작은 키를 가진 그녀는 야무지고 당당하다. 우리는 저녁 식사를 만드는 살타의 밤에 만났다. 볼에 있는 주근깨의 발랄한 얼굴을 한 그녀는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많고 사교적이다. 그녀가 내게 먼저 말을 건다. 저녁 식사 메뉴에 관한 자연스러운 대화로 시작해, 혼자 여행하는 서로에 관한 연대감을 갖게 되어  그동안 있던 서로의 긴 여행 과정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다니엘라는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다가 더 모험적인 삶을 위해 일을 내려두고 4개월간 남미로 여행을 왔다. 남미를 여행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혼자 여행하는 여자 여행자를 찾기는 비교적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빨리 지난 많은 여행 이야기를 하고, 자연스럽게 아주 가까워졌다. 기회가 되면 볼리비아에서 나중에 보자고 말한다.


부재하는 것에 대한 환상이 이끌고 있어.” 


부재하는 것을 상상하고, 다시 체험하기 위해 뛰어든다. 생각은, 비교나 상상은 쉬운 일이지만 행동하지 않고 말만 할 수 없다. 아직 만나지 못한 것이 어디선가 손짓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매일 하나씩 작은 장벽을 깨나 가려 노력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지고 있는 대지의 영양분과 가능성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차갑게 썩혀야 할 것이다. 계속해서 움직인다.


눈에 사는 꿈틀거리는 미생물이 보인다. 어디선가 귀뚜라미 소리가 들린다. 살아있구나. 부르고 있구나. 새로운 다이어리를 사는데 남은 페소를 모두 소진한다. 꿈틀거리는 가슴으로 볼리비아를 향하며 아르헨티나와의 한 달간의 인연을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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