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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칸나 Nov 30. 2015

야생 고양이 #41 <볼리비아> 고지대 사람들

남아메리카 표류기 :: 배낭여행

달밤의 이동

실비와 발렌틴은 라파즈Lapaz로, 나와 다니엘라는 수크레Sucre로 향하게 되면서 인사한다.

대부분 7시간이 넘는 장거리 이동버스는 야간 버스가 많다. 아침에 일어나 낮시간에 이동하고 저녁에 숙소를 찾아 자는 것보다 여러모로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볼리비아는 정치적으로 안정된 나라가 아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는데 이 때문에 투쟁이나 파업이 잦다. 우리가 우유니 마을을 떠나려는데, 버스 표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그 날 파업이 있어서 모두가 다른 샛길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저녁 8시 30분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우유니 투어로 인해 많이 피곤했기 때문에 야간 버스를 타면 쭉 잘 요령이었는데 출발한지 2시간도 안되어서 버스가 멈추더니 저 반대편에 있는 버스로 갈아타라고 한다. 톨게이트 앞에는 돌과 각종 장애물들이 차량 이동을 막고 있고, 추운 밤 높은 고도임에도 불구하고 배낭을 매고 걸어야 한다.

아마 그 버스를 탄 여행자들 누구도 잊지 못할 밤이 되리라곤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볼리비아 현지 여인들(촐리따Cholita)은 판초를 입고 그들만의 색색의 패턴이 있는 보자기를 매고 걷는다. 별이 빛나는 추운 밤이지만 그런대로 낭만 있다. 그저 10분 정도 걸으면 되는 줄 알았다. 그리고 30분이 넘게 가로등 하나 없는 컴컴한 고속도로를 모두가 걷는데, 높은 고도에 익숙지 않은 젊은 여행자들이 현지인들보다 현저히 뒤처지기 시작한다. 하필이면 길은 계속 완만한 오르막이고, 지대는 3600m보다 높아 숨이 찬다.


캄캄한 밤 이제 누가 저 멀리 있지도 잘 보이지 않고, 막연한 거리에 놓여있다는 그 버스를 향해 무작정 걸어야 한다. 춥기 때문에 멈출 수도 없고, 돌아가기에도 해결책이 없다. 무거운 물을 마시거나 버리면서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해 걷는다. 가진 것들이 어깨를 짓누른다. 그러나 전진만이 살길이다. 저 멀리 빛이 보이면 버스인 줄 알았다가도 도착해보면 파업, 투쟁하고 있는 무리가 불을 피우고 있는 것이거나, 완전히 다른 길 위에 있는 차의 불빛이다. 버스가 있긴 한 걸까. 몸은 뜨겁고 그 길은 차갑다.



숨이 턱턱 막힌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위, 보이지 않는 막연한 희망을 꿈꾼다. 별빛의 아름다움도 희미해지고 낭만이란 뒤 켠에 내려둔 각자의 투쟁시간이다. 어디가 끝인지도 모르고 걷는다. 익숙지 않은 중력을 가진 곳에서 갑작스럽게 야밤에 자다 깨 4000m 고도까지 완만한 길을 따라 산행을 한다. 끝을 알 수 없다는 것이 주는 막막함이.


다니엘라와 함께다행다. 그 여정은 또 각자의 짐은 각자가 짊어지고 가는 이 여행길과 많이 닮아있다. 숨이 가쁘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고 다시 일어나 한계를 이겨나가며 걸어 나가는 것, 탐험이다. 그 끝없어 보이는 종착지를 향해 가는 시간은 고통스럽지만 철저하게 현실이었다. 어린이고 노인이고 예외 없이 각자가 각자의 몫을 걸어나간다. 중국을 떠나 자신의 나라를 버리고 히말라야를 넘었던 티벳 피난민들과 전쟁 통에 상황도 지도 정확히 가늠하지 못하고 고향을 떠나 타향으로 향했던 그 수많은 사람들을 떠올리며, 자동차의 안락함, 돈의 무력함, 철저히 자기 몫을 자신이 이겨나가야만 하는 인간적인 100분을 보낸다. (고작 그 짧은 시간을 어디에다 비교하겠냐 싶다만..)

그리고 버스에 다다랐을 때 더 달콤하게 잘 수 있었다!

하악하악…


It’s not like your country. 여기는 너의 나라 같지 않아.



수크레 Sucre

2800m로 비교적 고도가 낮은 수크레는 깨끗하고 재미있는 도시다. 파업, 파티, 퍼레이드, 춤, 껌을 파는 아이, 푸른 광장, 하얀 건축물들이 즐비한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중심은 작고 퍼져있는 거주지가 넓은 볼리비아의 수도이다. 다른 볼리비아의 지역보다 고도가 상대적으로 낮아서 추위가 덜하고 쾌적하다.

시장에는 저렴하고 맛있는 음식들이 즐비하고, 각종 과일이 넘쳐난다. 주말에는 퍼레이드가 이루어지는데, 전통의상부터 멋진 턱시도까지 모두가 파티를 위해 차려 입고 행진한다. 음악은 끊이지 않는다. 마치 그 도시가 엄청나게 크다는 듯이 많은 무리가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 준비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한다. 오랜만에 따뜻하고 깨끗한 곳에서 여유를 부린다.



일탈: 타라부코 Tarabuco

다니엘라와 나는 여행자들이 적은 곳을 찾아가 다른 볼리비아 사람들의 삶을 보고 싶었다. 일요시장으로 유명한 곳, 그러나 시장이 열리지 않는 날 수크레에서 2시간 정도 떨어진 작은 마을 타라부코Tarabuco에 가기로 한다. 


산으로 둘러싸인 이 작은 동네는 곳곳이 도로 공사 중이고 평일이어서 인적이 드물다. 동네를 산책하다가 현지 유치원을 방문한다. 놀이터 하나, 널찍한 공간이 두 군데로 나누어져 있다. 공간 안에는 의자와 몇 가지 장난감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휑하고 칙칙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어린이들은 약 50명쯤 선생님은 5명이 있는데, 학생들은 집중하지 못한다. 교육을 위한 체계적인 수업보다 부모님이 바깥일을 하는 동안 맡겨진 아이들이라는 느낌이 더 강하다. 낯선 방문자들로 더욱 산만해진 아이들을 데리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도 하고 초등학교 선생님인 다니엘라가 네덜란드 노래와 율동을 가르치기도 한다. 아이들의 순진무구한 눈망울이 반짝인다.



그 작은 마을 광장 구석에는 약간 조악한 커다란 동상이 하나 세워져 있는데, 그것이 볼리비아에 관한 많은 것을 상징하고 있다. 사악하게 생긴 한 남자는 스페인 군인을 짓밟고 웃고 있다. 그 쓰러진 남자의 심장 부위는 잔인하게 파여있고, 서 있는 사람은 그의 심장을 한 손에 움켜쥐고 비틀린 웃음을 짓고 있다.


볼리비아는 인디오가 독립성을 비교적 강하게 가진 나라이고, 타 문화에 폐쇄적인 편이다. 많은 중년층이 자신들의 전통의상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문화 정체성이 강한 독자적인 나라인데, 그 배경에 이러한 동상이서 있는 것이다. 박물관이나 역사 기념하는 장소에서나 볼 법한 그런 상징물이 사람들이 살아가고 여행자들 이주 말마다 붐비는 그 광장 안에 있다는 것이 많은 것을 시사한다.


그것과 별개로 길거리 아이들은 우리를 보며 수줍게 웃고, 동네 체육관에서는 아이들이 모여 열심히 축구 경기를 펼치고, 길거리에서는 하수도 공사가 한창이다. 작은 식당에는 동네 아저들이 쉼을 얻으며 배고픔을 달랜다. 우리도 작은 광장에 앉았다. 조용한 작은 마을 구석구석 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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