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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칸나 Dec 04. 2015

야생 고양이 #45 <페루> 자유로운 영혼

남아메리카 표류기 :: 배낭여행

꼴까Colca Canyon 협곡 트레킹

험난한 길을 지나 페루의 남쪽 아레키파Arequipa에 가는 이유는 협곡과 거대한 새 콘돌을 보기 위해서다. 꼴까 캐년을 지나는 트래킹은 특이하다. 높고 험준한 곳을 위에서 내려가 구경한 뒤 올라가야 하는 거꾸로 등반코스이다. 깊은 협곡 사이를 비집고 뙤약볕이 내리 쬐는 날 건조한 땅을 밟고 내려간다. 그곳에는 남미의 상징 검은색 콘돌이 자신의 우아한 자태와 자유로움를 뽐내며 잦은 날개짓 없이 창공을 가른다. 거대한 몸뚱이가 어떤 제약도 없다는 듯 협곡 사이를 난다.


오아시스를 만나고 점심식사를 한 뒤 꾸역꾸역 그 더운 오후에 캐년을 오른다. 꼬박 3시간에 걸려 올라온 길, 내려갈 때 어느 정도 길이인지 짐작하고 간다고 한 것이 올라갈 때 그 끝없음에 기운이 다 빠진다. 신기하게도 그 길 위에서 나는 열흘간 여행을 같이했던 다니엘라와 재회한다. 그녀는 내려가 캐년 아래에서 하룻밤을 머물려 하고 이후 와카치나Huacachina에 간다고 말한다. 만남을 기약하고 각자의 길을 향한다.


1년 동안 다양한 산들을 다녔던 것 같은데 산이란 놈은 매번 어렵게만 느껴진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초등학교 때 배운 시 구절을 되새기며 오르고 또 오르고, 다시 호흡하고 다시 오르며, 산을 오른다. 그러다 보면 나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되고 그것을 이기고 다시 한 걸음을 내밀 때에만 그곳에 정체하지 않을 수 있다.


 사막같이 건조하고 그늘이 거의 없는 길은 험하고 뜨겁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주위를 살피면 선인장, 이름 모를 꽃들이 내게 힘내라 말하며 거기 서있다. 산을 오르다 보면 잡념이 어디로 가거나 하나의 생각이 또렷해진다. 자기 체력의 한계에 도전하며 그 끝없어 보이는 발걸음도 언제가 끝날 것임을 믿고 간다. 평소에 인식하지 못 자연스러웠던 숨쉬기와 심장 박동을 맹렬히 느낄 수 있다. 나는 육체적인 동물이구나.

끝이 없을 것만 같던 여정은 끝끝내 끝이 난다. 그리고 그런 힘겨운 등반 이후에 샤워, 그리고 맛있는 식사는 정말이지 끝내준다.



히피Hippies

사막이 펼쳐진 와카치나Hucachina 마을 가운데 작고 아름다운 오아시스가 있다. 15분이면 마을한 바퀴를 거뜬히 돌고 남는 그 곳은 현지인 생활터라기보다 관광객을 위한 휴식 공간이다. 그곳 현지인은 모두 작은 레스토랑이나 바, 게스트 하우스,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다. 작은 오아시스와 샌드 보딩(모래 보드 타기)을 즐길 수 있는 뾰족한 모래 산(사막 지형)이 둘러 싸여 있다. 그 근처에는 안개가 자주 끼는데, 비가 오지는 않지만 정체된 구름덩이들이 내려앉아 사막에 안개가 낀 기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주 오랜만에 캠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너무 추워서 캠핑은 엄두도 못 내던 차에 반갑다. 20명의 캠핑 족이 있고 거의 대부분 남미 출신의 여행자이다.


그동안 남미를 여행하면서 그런 히피족들을 보아왔다. 브라질 섬에서 만난 마이클로 시작했고, 히치 하이커들이나 캠핑 족 등이다. 그러나 이렇게 집으로 여러 다른 그룹 혹은 개인이 모인 텐트 촌 분위기를 본 적은 없다. 여전히 언어장벽이 크지만 어떻게든 우린 친구가 될 수 있다.



페르난도 Fernando

파란색 텐트에 사는 사무라이 같은 콜롬비아 사람 페르난도는 와카치나 호수에서 얇은 낚시 줄에 작은 쇠고랑을 건 뒤 그 위에 빵 쪼가리를 끼워 낚시를 한다. 그 얕고 조그만 호수에서 누구도 낚시를 상상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맨발의 그는 물고기를 몇 마리 잡는다. 그리고 능수능란하게 벽돌을 쌓아 바람을 막고 지푸라기로 불을 피워 점심식사를 한다.


그의 유년기는 갈색머리에 서양인의 생김에 더 가깝다면 이제는 일본 사람에 가까운 얼굴 형태와 흑발을 가지고 있다. 그는 검은 긴 머리에 몇 개의 기다란 강렬한 색의 새 깃털을 목에 걸고 다닌다. 자신을 따르는 동네 개에게 로라라는 이름을 주고 음식을 나눠먹고 같이 텐트를 공유한다. 맨발로 와카치나를 배회하는 그의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이상하기까지 했다. 그는 어떤 충격으로 대학을 한 달 다니고 그만두고 (정확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남미 여행을 한 지 10년째인 진정한 유목민이다.


내가 본 그들의 생계를 잇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작은 공연을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액세서리를 만들어 파는 것이다. 대부분 두 가지를 동시에 한다. 공연/퍼포먼스를 하는 친구들은 외발 자전거를 타거나 저글링(기본)을 하는 등 쇼를 보여주면서 팁을 얻어서 생계를 유지한다. 그리고 그 퍼포먼스는 남미 각 지역의 교차로에 정지된 자동차 운전자를 대상으로 하거나 관광객을 위한 오픈 카페나 바(bar) 앞에서 이루어진다. 또 다른 시간에는 팔찌, 목걸이, 귀걸이 등을 돌과 금속, 실로 아름답게 만들어 주로 관광객 대상의 시장이나 길목 위에서 판다.


이른 아침 텐트 촌에는 여러 장인들이 금속이나 견고한 실타래 따위로 작업에 열심히다. 신기한 돌들이나 동전 등 수집을 하고 그것으로 액세서리를 만든다. 그들은 또 캠핑을 하거나 아는 지인의 집에 가 숙박을 하는 방법으로 여행을 한다. 파타고니아와 같은 춥고 물가가 비싼 지역이 아니라 따뜻하고 활동성이 좋은 지역을 주로 여행하는 듯하다. 이것은 하나의 삶의 형태이다. 유목민들의 텐트 촌에 낭만이 흐른다.


“왜 여행을 시작한 거야? 왜 이런 삶이 시작된 거야?”


그런 예술가들이 여행을 시작하는 건 스무 살 전후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16년을 떠돌았고, 어떤 사람은 15살밖에 되지 않았다. 그것은 각 개인이 처한 특수한 상황의 이유이기도, 자유에 대한 열망이기도 하다. 또한 이 세계가  요구하는 것의 거부와 부적응이기도 하다. 남미엔 이런 유형의 여행자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가 그들이 방랑자로 살아가는 선택을 더 자연스럽게 만든다.



놀랍게도 그 작은 마을 와카치나에서 우유니 투어(볼리비아)를 함께했던 실비와 발렌틴 그리고 다니엘라와 모두 재회한다. 정말 인연이란 건 있는 걸까. 아니면 단지 여행 경로가 비슷하고 이 마을이 작아서였을까. 그 우연하고 기막힌 만남에 춤을 추고 맛있는 걸 먹으면서 그간에 있었던 사건들에 관한 담소를 나눈다. 그들은 정글에 갔다 왔고 마추픽추를 향하고 있다.


하루는 와카치나 텐트 촌의 히피 친구들이 하는 공연을 유럽 친구들과 저녁식사를 하면서 바라본다. 마치 이 동네 사람들을 다 아는 느낌이다. 다양한 여행자들이 각자의 추억을 여행을 만들고 있다. 작은 와카치나에 나의 친구들이 넘쳐나는 흥겨운 시기이다.


인연이면 어떻게든 다시 만날거야.



뱅글뱅글 돌아가는 선풍기를 바라보다가 리마 Lima(페루의 수도)에 있다는 걸 인식한다. 오랜만에 거대한 도시에 오니 정신이 없다. 다만 태평양 바다가 펼쳐진 곳에 앉아서 응시하다 콘돌을 바라보며 살사를 춘 기억만 남아 있다. 아레키파에Arequipa서 열심히  찾아다니던 콘돌은 부연 남극의 냉기가 돌고 있는 이곳 하늘과 리마의 절벽 사이에 비행하고 있다. 아, 페루의 유명한 생선요리, 세비체Ceviche를 먹은 것도 기억난다!


Life is crazy.


안데스와의 마지막

눈 덮인 안데스를 제대로, 마지막으로 보기 위해 와라즈Huaraz에 라구나Laguna 69 호수를 보러 등반을 한다. 이 여행의 마지막 큰 산행이다. 설산은 빛나고 초록산과 흐르는 강물 3500m부터 4669m까지 오르며 차오르는 숨을 견뎌낸다. 너무나 아름다운 장관들이 쏟아져 내려온다. 비슷한 사진을 계속해서 찍는 까닭은 그때마다 경탄하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직에 가까운 산맥이 놀랍다. 산 골짝을 넘어가며 넘쳐나는 자연의 숭고함이 있다. 동화 속 같은 안데스를 걷는다.



차빈 Charvin

와라즈 근처 작은 마을 차빈에 간다. 그곳에서 마을 퍼레이드와 유적을 보고  어린아이들과 이야기도 한다. 나는 골목길에 앉아 사람 사는 걸 바라보는 것에 취미가 있다. 그러면 동네 사람들도 나를 쳐다본다. 그래도 별 대단할 일 없으면 모두 제 갈 길을 향한다. 그곳에서 야레리(8)와 야수미(3)라는 발랄하고 귀여운 어린 자매를 만난다. 숙제를 하다가 다가와서는 카메라 작동법과 한글을 궁금해하는 아이들에게 몇 가지 한국말을 해준다. 별것도 아닌 게 뭐가 그리 재미있는 지 '까르르' 웃는 순수한 어린이들이 뒷골목에서 노는 걸 구경한다. 그림을 그리고 오후를 보내고, 뭐 바쁠 것도 대단할 것도 없는 느린 삶이 우러나온다.


다 익은 옥수수가 바람에 부스럭거릴 때 마음에 평화가 가득 차는 것만 같다. 이제는 따뜻한 곳으로 향할 테니, 아끼던 스웨터 하나를 어린이에게 건네주고 포옹하며 인사한다.

페루와의 한 달과 인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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