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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님 Jan 26. 2023

은혜 갚은 책방 주인

설 명절이 지나고


서점을 운영하다 보면 책방에 찾아오는 손님만큼이나 다양한 얼굴을 가진 선물을 받게 된다. 쿠키, 초콜릿, 빵과 같은 간식에서 시작해 책, 문구류, 화장품, 인형, 옷까지. 이번 명절에는 심지어 세뱃돈과 모둠전까지 선물로 받았다. 서점을 지키는 연차가 높아질수록 손님과의 관계와 함께 주고받는 선물도 무르익는 듯하다. 그런데 이쯤 되면 고민이 생긴다. 선물을 주는 사람의 마음을 잘 알기에 나도 보답하고 싶고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마음과 달리 이번 달엔 통장이 바짝 말라서 쩌~억 소리를 내며 갈라질 지경에 이르렀다. 지난해 10월부터 7남매 대표로 엄마 공과금 통장을 관리해 왔는데 당장 책살 돈이 부족할 땐 그 통장에서 급한 대로 돈을 꺼내 쓰기도 했다. 이번달엔 단골고객들이 오가며 책을 많이 사주었는데 책방의 재정상태는 왜 이모양인 걸까.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꼭 갚고 싶은 마음이 있다.


이번 명절 전 갑작스럽게 내게 데이트를 신청한 집시언니. 언니는 그날 나와 미*님을 데리고 짧은 여행을 다녀 주었다. 양평 온고재에 가서 맛있는 피자를 먹고 산책하는 고래에 가서 마음껏 책 구경을 하고 집에 오는 길 또 포천 한식집 민들레울에서 2만 6천 원짜리 정식을 먹었다. 우리 세 사람은 촌스럽게 서로 돈을 내겠다며 싸웠는데 결국 집시언니는 기름값을 내고, 점심 밥값을 내고, 또 우리가 밥 먹는 사이 몰래 마지막 저녁 밥값을 계산했다. 그날 미*님이 사준 빵을 한가득 안고 집에 돌아왔다.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자랑했더니 홍님이 말했다.

"꼭 뭐라도 해드려야겠다."

"아마 내가 손님들한테 받은 만큼 보답하려면 책방 기둥뿌리를 뽑아야 할 거야."

우리는 마주 보고 웃었다.

민들레울 그리고 산책하는 고래


명절 전날 책방에 앉아 있는데 여느 때처럼 또 그녀가 씽끗 웃으며 들어온다. 손에는 보자기에 싸인 넓고 얕은 용기와 높고 깊은 용기가 들려져있다.. 첫 번째 그릇엔 다섯 가지 종류의 모둠전이 가지런하게, 두 번째 그릇엔 백김치가 보인다. 두 손 가득 들고 퇴근했더니 홍님은 같은 말을 다섯 번쯤 말했다.

"이걸 어떻게 다 갚냐... "

"고마운 마음을 어떻게 한꺼번에 다 갚겠어. 천천히 시간을 두고 갚아야지"

그렇게 답하긴 했지만 내 마음이 더 시급하다. 어떻게든 마음을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좋아하는 브랜드인 그린블리스 홈페이지에 들어가 이것저것 장바구니에 넣었다가 빼기를 반복했다. 이쯤 하면 내 마음의 1%쯤 표현할 수 있을까. 그녀가 입으면 잘 어울릴 맨투맨티와 양말 세 켤레가 오늘 책방에 도착했다.

  

탱님 안목 마음에 드나요? ㅋㅋ

책방을 하면서 손님들에게 받은 엽서  , 응원의 말까지 되도록이면  기억하려 하고 어떻게든 고마움을 표현하려 노력하지만 역부족이다.  마음들을 더듬다 보면 서점 일을 그만두고 싶을 때도, 책방에 손님이 없을 때도 슬그머니 힘이 난다. 나는 나의 방식으로, 책방을 아끼는 손님들처럼 눈에 보이는 것으로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도 은혜를 갚는 서점 주인이 될거다. 은혜 갚은 서점 주인의 이야기는 오래도록 이어질  같다. 틀림이 없는 것은 우리는 지금 함께 시린 겨울을 견디고 있다는 사실, 2월이 되면 책방 통장에 촉촉하게 단비가 내릴 것이다.


집시언니가 찍어준 미*님과 나

내어줄 것이 남아있는 이상 무엇이라도 더 내어줄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 다들 어떻게든 자기 것을 챙기려고 속으로만 셈하는 세상에서, 너는 어쩌려고 이렇게 사람을 믿는 걸까. 세상을 원망하는 대신 사랑할 수 있는 걸까. 그런 너를 얼마간 답답해했던 것도 사실이야. 어쩌면 미워했던 날도 있었을 거야. 네 옆에 있으면 남들처럼 셈을 하고 있는 내가 못나게 여겨지곤 했으니까. 그런데도 난 네 옆에 있었지. 네 옆에 있는 게 좋았으니까.

- 김신지,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쉬운 미움 대신 어려운 사랑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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