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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님 Feb 08. 2023

돈벌이와 책임 사이

첫 번째 손길구독을 보내고.

"다른 책방 주인들은 어떻게 가게를 유지하고 여행도 다니고 그러는 거야?"

보릿고개를 영차영차 지나고 있는 나는 그것이 진심으로 궁금했다. 나처럼 돈얘기를 떠벌떠벌 하는 책방주인은 별로 없으니 시시콜콜 묻기도 민망한 일이다. 책방 생존을 위해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 오랫동안 고민했던 정기구독 카드를 조심스레 꺼내 들었다. 정기적으로 책을 골라 택배로 보내주는 서비스를 시작한 것이다. 인스타그램에 홍보 이미지와 글을 정리해 올린 날은 신청이 한두 명만 들어와도 성공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물리적 거리를 넘어 서로의 손길을 느낄  있다는 의미의 이름이 좋아 혼자 뿌듯해하기도 했다. 그런데 예상보다 많은 신청이 들어왔다. 기존에 알던 손님 절반, 새로운 손님이 절반이었다. 매번 책방을 응원해 주는 손님들에게  다른 부담을 하나 안긴 것은 아닌지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텅텅 비었던 통장에 거금이 들어오니 기분이 묘해졌다. 처음에는 '바로 이거다!  책방으로 성공하는 거야!' 라며 신이 났다가 시간이 조금 지나자 새로운 빚이 생긴 기분이 들었다. 이걸 빨리 갚아야겠다는 생각이  것이다.


정기구독 서비스를 만들면서  번째로 보내야겠다고 찍어둔 책이 있었다. 도입부에는 마음을  끌어당기던 책이  쪽으로 갈수록 내용이 반복되고 강요받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 문제였다. 성격이 급해 이미 책을 수량만큼 주문해 두었는데 이를 어쩌지 마음속으로 갈등이 피어올랐다.

'그냥 이 책으로 보낼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책을 찾을 것인가.'

마음이 수십 번 오락가락했지만 결론은 군더더기가 없었다.

'새로운 책을 찾자!'

그런데 또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첫째, 받는 이들의 취향 범위 안에 안전하게 들어가는 책

둘째, 내용과 디자인에 모두 충실해 소장가치가 있는 책

셋째, 이미 갖고 있는 책일 수도 있으니 너무 알려지지 않은 책

넷째, 기존에 소개했던 책이 아닌 신선한 책

다섯째, 연령대가 고루 분포된 독자들을 모두 만족시키는 책

여섯째, 독서력의 편차까지 포용할 수 있는 좋은 책

마지막으로 내가 자신 있게 권할 수 있는 책이어야 한다. 그때부터 책상에 앉아서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했다. '돈벌이고 뭐고 과거의 나야, 왜 그랬어. 잘 해낼 수도 없는 일을 도대체 왜 또 벌인 거야!'

시간은 별로 없고 조바심이 나서 앉았다가 일어났다가, 머리를 긁었다가 쥐어뜯었다가를 반복하다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좋은 책을 찾아내는 수밖에 없었으니까.




아직 내가 읽어보지 않은 책들 중 새로운 책을 발굴하고 싶었다. 신뢰하는 몇몇 출판사와 매체들, 온라인서점들을 둘러보다가 빨리 받아서 볼 수 있는 몇 권의 책을 주문했다. 다음 날 출근해 새로 도착한 책들 중 마음에 꼭 드는, 이 책이 첫 번째 책이라면 참 좋겠다는 그 책을 운명적으로 만났다. 시작하는 모두에게 용기를 주는 시의적절한 책, 디자인이 예쁘고 흔치않은 판형이라 누구나 갖고 싶어 할 만한 책이었다.


책과 함께 보낼 편지를 짧게 쓰고(너무 길게 쓰면 오히려 피로할  같아) 귀여운 인덱스를 세네 군데쯤 붙었다. 책을 읽으며 좋았던 문장을   고른 다음 캘리그래피를 지원해 주겠다고 나선 수정작가님께 도움을 요청했다. 수정작가님은 급하게 요청을 드렸는데도 책을 넣을 봉투에 정성스레 문구를 써주셨다. 다음날이 되어  야금야금 미리 주문해 두었던 블랙윙 연필과 동그라미 라벨, , 편지글을 넣어 박스를 봉합했다. 꾸물거리며 일하는 내가 답답해 보였던지 행님과 콩님이 나서서 포장하는 일을 마저 도와주었다.


책방과 가까운 편의점에 가서 책을 보내고 나니 아쉬운  마음이 든다. '조금 더 정성껏, 예쁘게 보낼 수 있었을 텐데, 글을 조금 더 정성 들였어야 했는데, 포장재는 좀 더 버리기 쉽고 환경에도 덜 나쁜 것으로 했어야 하는데, 박스테이프를 한 번만 붙인 것도 혹시나 가는 도중 떨어지지는 않을까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이제는 손을 떠난 일. 받는 사람들이 기뻐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만 마음속으로 둥글리고 둥글릴 뿐이었다. 처음은 조금 서툴렀지만 두 번째는 조금 나아지겠지, 기대로 미련을 쓰윽 덮어 버렸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한다. 나는  돈을 소중히 여기는 만큼 손님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 너무 소중하다. 내가  서비스를 하면서 버는 돈이 얼마나 되는지, 들인 시간과 노력만큼 나에게 합당한 대가가 주어졌는지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돈이 가지는 가치는 때에 따라 너무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폐지를 줍는 어르신들이 하루에 버는 돈이 만원 남짓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에 비하면 내가 들인 노력에 비해 너무나 과분하게 모든 것을 받고 있다. 지금 주어지는 만큼 충분하고 너무나도 감사한 일일뿐. 바보 같은 동네 책방언니 헐랭이 탱님을 믿고 책을 주문해  '손길크루'들의 일상을, 보내준 책들이 곁에서 묵묵히 지켜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표지 사진과 본 사진은 손길크루 식사동 나포토님이 ♥

2월달 손길구독으로 채택된 도서가 무엇인지 3월이 되면 짜라란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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