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탱님 Feb 03. 2024

나의 해리포터에게.

잘 지내시나요? 해리포터.

책방 문을 열고 청소를 하며 오늘따라 이상하게 당신이 자꾸만 떠올라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제가 정선을 떠나와 일산에 정착한 지 어느덧 5년이 다 되어 가요. 시간이 참 빠르지요. 우리의 물리적 거리는 이렇게 멀어졌지만 살면서 길을 잃은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마다 당신을 떠올립니다. 당신을 처음 알게 되었던 일이 기억이 나요. 복지재단에 파견되어 늘 맑은 생각으로 주변을 밝히던 동료이자 친구 혜자 님으로부터 당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회복지를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것은 당신을 알고부터라고 말이지요. 당시 사회공헌팀에 근무하던 저 또한 사회복지 분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사회복지사 보수교육 강연장 연단에 선 당신을 처음으로 보게 되었어요.


무대에 선 당신의 체구는 참으로 작아 보였습니다. 네모난 안경, 포도알처럼 커다란 눈, 또렷하게 강연장을 채우던 목소리를 들으며 당신이 왜 해리포터라는 애칭으로 불리는지 단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작고 힘 있는 눈빛을 가진 겉모습 보다 마음을 끈 것은 당신의 입으로부터 나온 커다란 말들이었습니다. 태백 장성마을에서 사라져 가는 공부방을 살리기 위해 천 원씩, 만원씩 모금 운동을 한 이야기, 주민들과 아이들의 뜻을 하나하나 귀 기울여 들어 도서관을 지었고 그 속에서 더 바랄 것 없이 주민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이 저에게 손짓하며 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는 것만 같았어요.

철암도서관은 어른들이 아닌 아이들의 뜻으로 운영된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방학기간 동안 아이들과 함께 지낼 봉사자 선생님 서류와 면접 심사를 아이들이 직접 보고, 도서관 안에서 무얼 먹을지, 무슨 활동을 할지도 아이들이 정한다고요. 해리포터는 그 안에서 아이들을 업어주고 개울로 뒷산으로 함께 어울려 다닐 뿐이었습니다. 이미 사회복지계에서도 유명한 그곳은, 동네 아이가 학교에 오지 않고 도서관에 머무르고 있다고 하면 선생님들이 안심하고 그냥 둘 만큼 신뢰를 받는 공간이라는 뒷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아이가 셋이나 되는 당신인데도 한 달 수입을 100만 원으로 정해 그 이상 벌지 않으며 사회에 조금이나마 해악이 되는 일을 하는 기업에서 강연초청을 하면 단숨에 거절하신다는 말도요.  

당신이 말했습니다. 아이들과 소풍을 갈 땐 새우깡 한 봉지로 충분하다고. 아이들이 그걸 돌려가며 조금씩 나누어 먹는다고 말입니다. '소박한 가운데에서 인정이 피어난다'며 욕심내지 않는 간소한 삶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은근히 알려주셨지요. 정선을 떠나오기 전 도서관에서 만났을 땐 태백에 거대한 노인요양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라며 걱정하시던 모습도 생각납니다. 노인과 아이들이 어울려 사는 곳이 마을인데, 어르신들에게 익숙한 집을 빼앗고 회색 시멘트로 만들어진 시설에서 살게 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라고요. 평소 동네 어르신들이 농사지어 도서관에 건네주신 배추며 호박을 보물처럼 소중히 여기는 당신의 걱정이 무엇인지 잘 알 것 같았습니다.  


저는 유년시절을 작은 시골마을에서 풍요롭게 지내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우리 집이 현실 세계 속에서 가난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혼자 힘으로 간신히 들어간 대학이었는데 등록금을 낼 수 없어 휴학계를 쓰고 난 뒤 학생회관 앞에 주저앉아 남의 눈치 볼 겨를도 없이 펑펑 울었지요. 그때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부모님도, 언니오빠도 참 부지런히 살아왔는데 열심히 산다고 해서 가난은 쉬이 멀어지는 것이 아니구나. 그 경험이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이들에게 알려주는 어른이 되고 싶게 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의 삶을 옥죄는 경제적 문제를 뛰어넘어 그보다 소중한 것들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당신의 모습이 크게 보였던 것  같습니다.


한 때는 사회 안에서 역할을 찾고 싶은 열망이 과하다 할 만큼 강했습니다. 내가 다니는 회사가 존재 자체로 사회와 지역사회에 주는 악영향을 잘 알았고 스스로를 증명해 내고 싶었기 때문이었어요. 한데 그곳에서 제가 그 어떤 역할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많이 슬펐습니다. 다른 사람의 탓이 아닌 바로 저 자신의 부족한 역량이 가장 큰 원인이라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이 괴로워 회사를, 고향을 떠나왔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압니다.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라는 명분은 좀 더 그럴듯해 보이려 지어낸 힘없는 말이었고 '자신을 위한 일'을 해야만 제대로 설 수 있다는 것을요.


해리포터. 저는 지금 이곳 책방에서 일하며 주인보다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는 손님들을 만나며 행복감을 느끼고 이곳을 오래 지켜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일주일 여섯 번 같은 시간 집에서 나와 10시간 가까이해야 하는 일도, 매일 넓은 공간 쓸고 닦는, 주기적으로 커피 집기를 구석구석 청소하는 일이 고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책방에서 진행되는 무료행사에 가볍게 신청하고 가볍게 불참하는 사람들을 보며 슬그머니 뿔이 올라오는 날도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해리포터를 떠올립니다. '이럴 때 해리포터다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했을까?' 물음을 던지며 당신을 가만히 불러봅니다.


제가 당신과 같은 튼튼하고 오래가는 울타리를 만들 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다만 이제는 책방이라는 공간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속에 있을 때 제가 가장 자신답고 안전하다고 느낍니다. 5년 가까이 책방을 운영하며 한 사람의 인간으로 부족한 저 자신을 자주 마주 하기도 하였고, 타인을 온전히 품지 못해 자주 멀어지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도 그대로 삶의 일부임을 받아들이고 그저 책방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를 반갑게 맞아 주면 되는 거라고 마음을 다잡습니다. 주목받지 못하더라도 소중한 역할이 많다는 걸 이제야 조금 알게 된 것 같습니다.


가끔씩 날씨가 좋은 어느 날 책방 친구들과 차 안에서 엉덩이를 붙이고 비좁게 앉아 싱거운 농담이나 주고받으며 철암도서관으로 향하는 상상을  합니다. 앞으로 5년이 걸릴지, 10년이 더 걸릴지는 알 수 없지만 멀지 않은 날 당신과 마주하며 그간 살아온 이야기 또 나누며 책방 친구들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헤어질 때면 떠나는 이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시던 모습이 그립고 또 그립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서로가 서로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