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함께 지키는 서점 '너의 작업실'
1. 너의 작업실이 어떤 책방이냐 물으신다면
저희 책방은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밤가시마을에 위치해 있어요. 고양시에서 유일하게 아파트가 없는 호젓한 동네이기도 한데요. 누구나 긴 시간 머물며 책도 읽고 일도 할 수 있는, 자신이 가진 재능을 기반으로 모임도 열 수 만만한 동아리방 같은 책방이에요. 우리는 '카공족'이라는 말을 부정적 의미로 사용하곤 해요. 그런데 돈을 빼고 보면 그들은 가장 열심히 무언가를 위해 나아가고 있는 사람들 아닌가요. 그들을 환대하하고 외로운 개개인이 연대하는 공간이 우리 사회 어딘가에는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다시 말하면 너의 작업실은 이 세계에서 매번 밀려나는 사람들과 다양한 가치들에 대해 함께 생각하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모임과 행사가 열리는 도심 속 대피소같은 책방이에요.
올해로 5년째 책방을 지키는 저는 강원도 산골마을에서 나고 자랐어요. 어린 시절 국어 선생님이 되는 것이 간절한 꿈이었어요. 꿈을 이루기 위해 먼 곳까지 대학교를 갔는데 등록금이 없어 원치 않는 휴학을 하고 학생회관 앞 계단에 앉아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는데, 하필 그때 좋아하던 기타 동아리 선배가 지나가서 이제는 볼 수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더 눈물이 났던 것 같아요. 그때 우리 사회에서 돈이 무소불위의 힘을 가지는 것이 부당하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어요. 배움의 기회가 평등하지 않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으니까요. 그 일은 저를 돈보다 중요한 가치가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질문하는 어른으로 성장하게 했어요.
2. 가장 어려운 일이 무엇이냐 물으신다면
영업 중 변기가 막힌 날. 남은 하루를 어떻게 해서든 버텨 본다지만 내일은 책방 문을 닫아야 하는 걸까. 내일까지는 고칠 수 있을까 큰돈이 들어가는 건 아닐까 동시에 머리가 복잡해져요. 저에게 책방 하는 일 중 무엇이 가장 어렵냐고 물으신다면 주저 없이 '변기가 막히는 일 그리고 월세를 내는 일'이라고 말하겠어요. 천장에서 빗물이 떨어지고, 커피머신이 예고 없이 고장 나는 일은 난이도 상 수학문제 같아요. 며칠간 하수구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냄새가 올라와서 책방 문을 닫고 복잡한 공사를 해야 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어 잠이 오지 않았던 적도 있어요. 주기적으로 생기는 시설 관련 문제들은 혼자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으니 더 막막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는 듯해요. 책방뿐만 아니라 공간을 꾸려가는 분들이 공통적으로 부딪히는 문제일 거예요.
매월 10일이 되면 통장잔고를 끌어모아 월세 209만 원을 만들어 보내야 하는 일은 더 만만치가 않아요. 그동안 책방을 운영하면서 월세 걱정을 하지 않은 날은 하루도 없어요. 책방이 저에게 소중한 만큼 제 뜻과 상관없이 문을 닫아야 된다고 생각하면 너무 두렵거든요. 분명 책방 일은 밖에서 보았을 때 일면 근사하고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그 무게를 지탱하려면 현실의 다리가 매일 후달달 떨릴 수밖에 없는 것이 물 밑 사정이에요.
3. 그럼에도 책방을 왜 하느냐 물으신다면
100% 좋아서, 저 자신을 위해 해요. 처음에는 공동체니 선한 영향력이니 하는 거대한 단어들을 들먹이며 제가 이타적인 사람이라서 책방을 하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연차가 쌓여갈수록 알겠더라고요. 타인을 위해 나를 희생한다는 건 다소 오만한 생각이었다는 걸 말이에요. 책방을 하기 전 다니던 회사에서 약 3,600명이 소속된 임직원 사회봉사단을 운영하는 업무를 담당했어요. 그때는 봉사활동에 한참 빠져 지냈는데 그 시간 동안 봉사활동도 타인을 위해 한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거라 생각하면 언젠가는 회의감이 찾아오고 지치기 쉬워요. 자신이 그 행위를 왜 하는 것인지 정확히 파악해야 좀 더 즐길 수 있고 지속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요즘은 일을 진행할 때 기준을 저 자신에 중심을 두고 '의미와 재미를 주는 일인가?,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가' 두 가지를 질문하고 임해요. 책방을 하면서 최근 1년간 손목 인대가 두 번 늘어나고 유산을 세 번 반복했어요. 그럴 때도 마음이 쉬는 곳이 책방이라며 문을 열었어요. 회사를 다닐 땐 출근 길이 괴롭고 싫기만 했는데 책방 출근길은 가끔 귀찮고 자주 행복해요. 내가 인생의 참 좋은 한 때를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 중심에는 책방에 오는 좋은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친절과 선의를 가진 사람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고 믿는데 딱 그런 분들이 오는 곳인 만큼 책방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고 느껴요. 그래서 책방을 잘 지키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4. 인상 깊었던 손님이 있느냐 물으신다면
동네책방이라는 이유하나만으로도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고 아껴주시는 분들이 너무 많아 다 말씀드리기도 어려워요. 한 달에 두 번 열 권 정도 책을 주문한 뒤 에코백을 들고 찾으러 오시는 도*,태*님이 있어요. 책방을 응원하는 마음에 더해 온라인 배송을 시키면 불필요한 쓰레기가 생기는 것도 편치 않으시다고요. 주문절차는 물론 찾으러 오는 일도 번거로울 텐데 몇 년째 꾸준히 책방을 찾아와 줘요. 이제는 서로의 모습을 속속들이 아는 친구가 되었고 언젠가 제가 책방을 그만 둔다고 해도 친구로 지낼 것 같아요.
손님들이 오가며 보시면 좋겠다고 책방 앞에 수국을 심어 준 손님도, 추천해 준 책이 좋았다고 피드백해 주시는 손님들도 책방을 지속하는 게 하는 힘이 돼요. <죽은 자의 집청소>를 쓰신 김완 작가님은 단골 책방이 문을 닫은 걸 알게 된 날 그길로 너의 작업실을 찾아오셨는데 일주일에 한두 번은 안부라도 확인하듯 꼭 들러주셔서 제 마음 속에 커다란 기둥이 되어 주셨어요. 저는 자주 찾아와 주시는 손님들을 '작업인'이라는 애칭을 붙여 부르는데요. 외면을 받으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것이 공간의 숙명인데 작업인들이 있어 높은 임대료에 흔들리지 않고 우리 책방이 잘 지켜지고 있어요.(큭큭)
5.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느냐 물으신다면
어느 날 소소한 물건을 사러 다이소에 간 적이 있어요. 계산을 하려고 키오스크 앞으로 다가가는데 앞에 서계신 직원분의 안내가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라 저도 모르게 그분을 기계인 듯 무시했어요. 가게를 나와서야 아차 싶더라고요. 책방에 오고 가는 손님들에게 인사를 건네도 받지 않는 경우가 허다한데 그때마다 씁쓸함을 느꼈거든요. 우리가 의례 스치는 무수한 것들에이 사람인데, 사람의 손길이 들어있는데 그걸 자꾸 잊는 것은 아닌지. 택배나 배달 음식을 받을 때도,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공간에 들어갔을 때도, 심지어 밀키트 판매점을 들어갔을 때도 보이지 않는 사람의 온기와 노고가 닿아 있다는 걸 생각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가끔 출판사 직원분들과 우스갯소리로 말해요. 쓰는 사람은 많지만 읽는 사람은 별로 없는 사회라고요. 거기에 하나를 덧붙이자면 '말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공들여 들어주는 사람'은 없는 세상인 것 같아요. 저부터 모임에 참여하거나 대화를 나눌때 들어주는 척하면서 다른 생각을 하거나 혹은 다음에 어떤 말을 할까에 대해 생각해요. 누군가에게서 발화되어 어디에도 닿지 못한 말들이 자리를 찾지 못해 공기 중을 둥둥 떠다녀서 사람들은 더 외로워지는 듯해요. 평소 좋아하는 박연준 작가님이 독서 또한 타인의 말을 공들여 듣는 행위라고 <듣는 사람>이라는 책에서 말씀해 주셨는데요. 듣기와 읽기가 다르지 않으니 그 두 가지를 잘 해내는 사람들이 점점 많이 지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여러분, 앞으로 카페나 맛집을 찾아가는 것처럼 가까운 동네서점도 많이 찾아가 주세요. 그러면 분명 삶이 풍요로워지는 경험을 하실 수 있으실 거예요. 인생에서 좋아하는 서점 하나쯤 마음에 품는 근사한 경험을 꼭 가져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