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척하는 게 그렇게 나쁩니까.
나는 고양이보다는 개에 더 가까운 인간이다. 누군가 책방 안에 들어서면 우선 언제 말을 걸까 침을 흘리고 꼬리를 흔들며 달려가 볼이라도 부비고 싶은 심정이 된다. 무슨 일을 하는지 어디에서 왔는지 폭우가 내린 뒤 방류되는 댐의 용수가 된 듯 호기심이 평정심을 잃은 채로 폭발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누군가가 좋아지기라도 하는 날이면 오매불망 그 사람을 기다리고 걱정하며 시도 때도 없이 안부를 생각한다. 그러다 하루에 약 40~50명의 인간을 만나는 나는, 어느 날 갑자기 좋아하는 작가가 내가 꾸린 책방에 찾아오는 직업을 가진 나는 고민에 빠졌다. 손님들에게 어디부터 어디까지 아는 척 친한 척을 해야 한단 말인가. 나는 사람만 보면 달려드는 못 말리는 ENFP 성향을 가졌지만 상대방은 자신의 영역을 철저하게 고수하는 고양이과 인간일지도 모르는 게 아닌가. 게다가 최근 읽은 황정은 작가님의 단편 소설에는 아는 척 말을 거는 편의점 주인이 싫어 다시는 그곳에 가지 않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자,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나의 행적을 돌이켜 보자. 김초엽 작가님이 책방에 오신 날 눈을 양껏 크게 뜨고 "어머 김초엽 작가님!!!" 마흔한 살 인생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의 감탄 표현을 했고 그날 저녁엔 "나는 성공한 책방 주인"이라며 지인 일곱 명에게 카톡으로 자랑질을 하고 다녔다. 작가님은 이후에 책방을 몇 번이나 더 찾아 주셨는데 그때마다 나는 침을 흘리며 온몸으로 좋아하는 표현을 해댔다. 그 때문이었을까. 오로지 내 입장에서 한동안 작가님의 행방이 묘연하다. 또 어디선가 읽은 적 있다. '좋아하면 오히려 더 무덤덤하게 대해야 한다'라고. 마음을 다 표현하면 상대가 부담스러워 오히려 멀어질 수 있으니 최대한 내색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 오히려 상대의 마음을 얻기가 쉽다고. 좋아하는 마음을 들이부었다가 공중에서 분해된 옛사랑들이 떠올랐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그래서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뭐? 포커페이스. 훈련. 훈련. 또 훈련. 나는 요즘 절대 손님들 앞에서 어느 날 선물처럼 찾아온 좋아하는 작가님 앞에서 침을 흘리지 않고 단단하게 입을 다물고 있다. 이건 철저히 그들이 부담스럽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고 또 이건 철저히 그들이 또다시 와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기 때문이다. 요즘에도 사실 말을 걸고 싶은 손님이 여럿 있다. 분명 유튜버인것 같은데 채널이 무어냐고 구독하겠다고 주책맞게 묻지 않고 참으며 혼자만의 호기심 정원을 고이 보존하기로 한다. 거의 매일 보는 단골손님에게도 먼저 말을 걸지 않는다. 참는다. 그렇게 택하기로 한다.(고수란 그런 거니까) 그러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우리 이러다 헤어지면 끝인 건가요." 만약 자주 오던 손님이 언젠가부터 책방에 오지 않는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수밖에 없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당신과 함께 했던 그때가 참 좋았습니다." (제가 생각나는 밤 12시에 뭐해? 자니?라고 메세지는 보내지 마세요. 뭐래. -.-)
사진 속 반려묘 밤톨이는 나와 햇수로 8년째 함께 살아가고 있다. 좋아한다면 밤톨이처럼 절 반쯤 눈을 감고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본연의 매력을 뽐내는 것이 좋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 중 하나는 '균형과 절제' 뭐든 적당한게 좋으니까. 잊지 말기요. 좋아한다면 고양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