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책방이라서 생긴 에피소드 첫 번째 이야기.
너의 작업실이라는 이름에는 누구나 주인이 되어 필요할 때마다 찾는 책방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편히 머무를 수 있는 책상과 의자가 공간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책 읽는 사람, 글 쓰는 사람,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주로 찾아오며 자연스럽게 조용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이렇게 조용한 공간으로 자리를 잡은 후에도 당장 문을 연 오늘까지 계속되는 고민이 한 가지 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조용한 분위기를 유지해야 할까?, 가끔 공간의 성격을 알지 못하고 카페처럼 크게 대화를 나누는 손님이 나타났을 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오늘도 나타났다!)
주변 분위기에는 아랑곳없이 대화를 나누는 분들이 있으면 구석에서 책을 읽거나 일하는 분들에게 방해가 될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해진다. 열 사람의 수다 손님보다 한 사람의 작업인이 나에게는 매번 더 소중하다.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카페는 어딜 가나 있지만 침묵을 귀하게 여기는 공간은 흔치 않으니까. 외롭게 분투하며 무언가를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이 오롯이 자신의 일에 몰입할 수 있는 장소가 너의 작업실이 되기를 바라고 바라기 때문이다. 그래서 손님이 결제를 하기 전에 대화를 나누기 어려운 공간임을 거듭 안내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편안한 조용함이 있는 공간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의 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 몇 가지를 여기에 적어 본다.
(구) 너작 시절 무더운 여름날, 일산에 소재한 한 고등학교 선생님으로부터 독서 동아리 학생들과 함께 방문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약속한 날 오후가 되어 선생님과 함께 약 10명 정도의 학생이 책방에 들어섰다. 갑자기 북적북적 비좁아진 책방. 학생들이 서가를 구경하는 가운데 작업인들 몇몇이 창가에서 동떨어진 섬처럼 앉아 책을 읽거나 노트북 작업을 하고 있었다. 여기서 예상치 않았던 상황이 갑자기 눈앞에 펼쳐졌다. 선생님 지도 하에 학생들이 두 그룹으로 나누어 독서토론을 시작한 것이다. 예상하지 않았던 상황에 나는 '아니, 책방 방문을 한다고 했지 여기서 독서토론을 한다는 말은 안 하셨잖아요!' 라며 소심하게 속으로만 외칠 뿐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떠오르지 않았다.
졸린 거북이가 걸음을 옮기듯 시간은 무중력 상태가 되어 천천히 흘렀다. 30분 정도 지났을까. 나는 그야말로 고속버스 안에서 오줌을 오래 참은 것 같은 상태가 되었다. 참고 또 참다가 얼굴색마저 노랗게 변할 무렵 그래도 내가 이 공간 주인이니 책임을 피하지 말자는 생각이 번뜩 들어 조속히 토론을 마무리해주셨으면 하는 마음을 쪽지에 적어 선생님께 전달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토론은 얼마간 지속되었고 오랜 기다림 끝에 공간을 가득 메우던 목소리가 잠잠해졌다.
이내 처음 들어왔을 때와 같이 선생님을 선두로 하여 학생들이 우르르 책방을 빠져나갔다. 그 뒷모습을 퀭한 얼굴로 바라보는데 일행의 가장 끝에 있던 키 큰 남학생이 나에게 다가와 눈을 마주 보며 부끄러운 듯 '너무' 를 두번 넣어 말했다.
"저희가 너무 시끄럽게 했죠. 너무 죄송합니다."
나는 매번 손님에게 기대한다. 내가 가려고 하는 공간이 어떤 성격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약간의 정보를 찾아본 후 방문해 주기를, 공간에 들어가고 나갈 때 주인이 건네는 인사를 받아 주기를, 화장실 문을 꽝 닫지 않기를, 판매용 새 책을 자리에 가져가서 읽지 않고 그럴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알아 주기를, 모임을 신중히 신청하고 약속을 잘 지켜주기를. 무엇보다 나의 행동으로 주변 사람들이 불편하지는 않은지 살펴보는 감각을 가지기를. 그렇게 작은 배려들이 쉽사리 뭉개지지 않고 공간 구석구석에서 둥글게 둥글게 굴러다니기를.
그런 기대가 속절없이 무너져 속이 부글부글 끓을 때 효과 빠른 소화제를 꺼내 먹듯 주변을 살피는 눈을 가진 그 학생을 떠올린다. 드라마 우영우의 대사에 나온 것처럼 '봄날의 햇살' 같았던 그 학생을 생각하면 속이 차분히 가라앉고 지금 이 일을 조금 더 오래 해 나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