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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님 Jul 09. 2021

꿈의 서점, 꿈지기의 역사

2021.07.08

마두동에서 정발산으로 이사를 앞두고 마지막 영업일이었을까.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여느 날처럼 혼자 책방에 앉아 '손님이 언제 오나' 기다리며, 엉겁결에 맡은 지역문화 사업 인터뷰 작업을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큰 키, 긴 곱슬머리와 헤드셋, 헐렁해 보이는 셔츠를 입은, 영화 속에서나 나올듯 시선을 빼앗는 손님이 책방으로 들어왔다. 아무렇지 않은 척 인사를 건넸고 손님이 자리를 잡자, 내 손가락은 바삐 움직였다. 토닥토닥 글쓰기 1기 멤버들이 있는 단톡방에 책방에서 일어난 이 사태를 알리기 위함이었다.

"우리 책방에 너무 멋있는 손님이 들어왔어요!"

멤버들은 덩달아 호들갑을 떨었다.

"탱님! 당장 책방으로 갈게요!"


헌데 앉아있자니 책방에 혜성처럼 등장한 멋진 손님이  빨리 집으로 돌아가지 않길 바라는 마음과는 별개로, 정발산동(지금의 책방)으로 배송이 온 민음사 책 생각이 났다. 택배 아저씨가 두고 갔기에 빨리 찾아야 했던 책이다. 처음 본 손님에게 쭈뼛쭈뼛 다가간다.

"저... 잠시 나갔다 올게요. 음... 아마 손님은 안 올 거예요."

손님은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20분쯤 지났을까 다시 책방으로 돌아와 보니 내 생각과는 달리 책방에는 두 명의 손님이 더 와 있었다. 그 때 책방에 있던 사람은 오전 책방을 운영하던 밤님이고 나중에 온 손님 둘은 꿀님과 강단님이다.

밤님은 후에 그 일을 떠올리며 '그때 참 특이한책방 주인이라고 생각했었다'라고 말한다. 처음본 사람에게 가게를 맡기고 나갔으니 그럴만도 하지 않을까. 이후 밤님, 꿀님, 강단님은 책방에 없어서는 안 될 식구가 된다. 이들은 책방 이사를 할 때도 확장을 할 때도, 책방의 중요한 순간마다 조용히 다가와 일을 도와주었다.


어느  밤님이 오전에도 책방을 열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꺼냈고 직접 책방을 열게 되었다. 그래서 거기에 '꿈을 지키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담아 '꿈지기'라는 이름도 붙였다. 꿈지기는 자신이 공간 사용할  오는 손님도 받아 주는 너의 작업실 만의 책방 지킴 제도이다. 너의 작업실 단골이 되면 누구나 꿈지기가   있고, 탱님에게 꿈지기를 해보고 싶다고 이야기를 하면 된다. 꿈지기가 책방을 지키는 동안 수익이 발생되면 꿈지기의 몫이 되고, 원하면 도서포인트로 적립을 해주기도 한다.


이렇게 밤님으로부터 시작된 꿈지기 제도가 꿀,콩,현정,푸징, 토끼,보리 까지 일곱 명에 이르게 되었다. 사실 혼자 책방을 오랜 시간 열어두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이처럼 공간을 필요로 하는 사람, 공간은 있지만 오랜 시간 열어놓을 여력이 없는 사람이 만나 '모두가 함께 지키는 책방', 이 되고 더 긴 시간 열려있는 공간이 된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것이 일종의 열정 페이를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고민이 있다. 그래서 꿈지기들에게는 '공간과 집중할 시간이 필요해서 하는 것' 인지를 재차 확인하곤 한다.

오늘 매일 글쓰기 방 정*님이 너의 작업실이 생각난다며 이런 글귀를 보내주셨다.


공간의 가장 멋진 쓰임새는

공유하는 것이다.

모두가 들어올 수 있게 열어두고

그 안에서 저마다 자유로이

시간을 가꾸게 두는 것.

- 오소희, <떠나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다면>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라, 모두가 필요할 때면 내 작업실처럼 찾아오는 공간이 된다면 좋겠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의 시간을 가꾸며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나는 꿈지기들이 있어 어느 크고 번듯한 책방도 부럽지 않다. 언제나 든든하고 든든하다. 책방의 시간이 흐를수록 내 마음의 보석상자에는 좋은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간다. 그들은 '꿈을 지키는 사람들'이다.



공들여 퇴고할 수 없어 가볍게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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