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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님 May 09. 2022

고맙다고 자꾸 말하는 사람


한창 날씨가 추워 겹겹이 옷을 껴입고 책방 친구들을 만나러 가던 어느 날, 풍산역에서 내려 개찰구를 막 통과하니 역 한쪽에 자리 잡은 지역특산품 판매점이 보인다. 김이며 멸치, 간장, 쥐포, 전병 등 지역색을 도통 헤아릴 수 없는 여러 가지 먹거리를 판매하는, 매일 키 큰 아저씨가 두꺼운 패딩을 입고 빨리 시간이 지났으면 하는 얼굴로 휴대폰을 바라보고 있는 풍산역 명품관이다. 머릿속으로 오늘 만날 친구들을 헤아려 본다. 하나, 둘, 셋, 넷. 마침 새해이기도 해서 적당한 먹거리를 선물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것. 식구가 둘인 사람은 간단히 먹을 강정이, 여럿인 사람은 김이 좋겠다. 가격을 물으니 김은 한 묶음에 만 오천 원이란다. 세 사람 것만 더해도 4만 5천 원이다. '이 돈이면 책을 스무 권 정도 팔아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언뜻 스치지만 내가 받은 것에 비하면 이것이 참 하찮다는, 새해인데 기분도 좀 내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기분 좋게 검은 봉지 여러 개를 손에 쥐고 덜렁덜렁 약속 장소로 향한다.


친구들과 만나 밥을 먹고 수다를 떨다 책방 오픈 시간이 다가온다. 헤어지며 검은 봉지를 급히 손에 쥐어주고 책방으로 향했다. 책방에서 부지런히 일을 보고 있는데 노트북 화면에 노란 메시지 신호가 뜬다.

"탱 사장님, 김 잘 먹을게요. 고맙고맙.. 김 비싼데..."

건네주고 잊어버린 선물인데 인사가 오니 반갑다.  후에도 그에게  다섯 번쯤 고맙다는 인사를 받았다. 친정 엄마랑 나눠먹었는데  맛있었다고. 마치 자신이  것은  잊고 나에게 받는 것만 기억하는 사람인것처럼 군다.  친구는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달빛에 빛나는 조약돌처럼 고맙다는 말을 자꾸  흘리고 다니는 사람으로 기억되어 있다. 오늘  문득 그와 나눈 카톡을 살펴보았는데 대화에 ''이라는 글자가 자주 나온다는 것을 발견했다.


"잘 먹었어요. 잘 먹어요. 잘했어요. 잘 드세요. 잘 다녀와요. 잘 자요."


나는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받으면 인사를 잘하는 사람이었나 생각해본다. 책방을 하다 보면 마음이 좋은 분들이 나에게 참 많은 것을 주는데 그것을 다 기억하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말할 자신이 없다. 물질적인 것 이외에도 받은 것이 너무 많은데 그때그때 고맙다는 표현을 잘하지 못하고 정신없이 지나가고 말았다. 만약 좋은 사람들과 헤어져 다시는 볼 수 없다면 그것이 가장 후회되지 않을까?

' 고맙다고 말하지 못한 것.'

책방에서 만난 그 친구처럼 고맙다고 자꾸만 자꾸만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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