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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님 Sep 29. 2022

당당한 책방지기가 되겠어

책방지기 1년 차로 뭐든 해보고 싶은 욕구로 충만했던 2년 전 가을, 어느 날 손님이 없는 책방에 가만히 앉아 인천 북극 서점으로부터 DM을 하나 받게 되었다. '싱얼롱 페이퍼'라는 북페어에 참여하겠냐는 의사를 묻는 메시지였다. 서점지기의 자격으로 참여하는 북페어라니! 개성 있는 서점지기들과 새로운 책들을 잔뜩 만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혼자 갈 용기는 나지 않아 페어 경험이 다양한 샤샤미우 작가님, 비바님에게 동행을 부탁했다. 행사 당일, 가을 하늘은 높고 북페어가 열리는 송도 트라이 보울은 너무나 근사했다. 배정받은 부스에 도착해 짐을 풀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내가 상상했던 것처럼 책방들은 자신들의 색깔을 잘 드러내는 책들을 챙겨 왔고, 책방지기라는 직업 하나로 마음의 벽을 허문 듯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부스마다 보통 2명씩은 온 듯했는데 우리 자리 바로 왼쪽 부스에는 혼자 온 책방지기님이 앉아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그분이 춘천 '책방 마실'의 지기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방 마실의 부스가 다른 부스와 뭔가 다르다는 걸 눈치 채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른 곳은 다양한 책과 굿즈가 책상 위를 가득 채우고 있는데, 책방 마실에는 여섯 종 정도의 책이 심플하고도 당당하게 쌓아 올려져 있었던 것이다. 지금 기억하기로는 <시와 산책>,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멀고도 가까운> 등의 책이었다. 북페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나서는 마실 부스 쪽에 온통 관심을 가져다 놓고 있었다. 그리고 책방 마실의 책방지기님과 나의 차이점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나는 손님이 올 때마다 굽신굽신, '제발 사주세요.'라는 눈빛을 쏘아대며 일어났다 앉았다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조금이라도 친절하게, 한 권이라도 팔아보겠다는 굳은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다. 그런데 마실의 지기님은 여유롭게 자리에 앉아 손님이 오면 시크한 말투로 툭 던지듯 말했다.

"한번 보세요. 이 책 좋아요."

"저희 책방 손님들이 밑줄을 긋고 감상을(포스트잇에) 붙여 놓은 책이에요."

"잘 읽히는 책이에요."

책방 손님들의 감상이 샘플 책에 담겨 있다는 것 말고는 별다른 차별점이 없어 보였다. 나처럼 과도한(?) 친절도 없었다. 그런데 그 쌓아 올려진 책들이 하나 둘 어느새 새로운 주인을 찾아 떠나가고 있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손님들은 좋은 책을 알아보고 권하는 책방지기를 신기하게 알아본다는 것! 그리고 마실 책방지기님의 당당함은 '내가 당신에게 좋은 책을 골라 권하고 있어요.'라는 태도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책방을 시작하고 지금까지도 나는  손님들에게 도움을 받는 쪽이라고 생각해왔다. 손님들은 책을 사주고, 책방을 유지하게 하는 고마운 분들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책방이 망해 문을 닫게 되더라도 손님들의 선의에 기대 일방적인 도움을 받는 책방지기는 되고 싶지 않다. 언제나  눈을 반짝이며 좋은 책을 골라 추천할  있는, 그래서 손님들의 팍팍한 삶에 조금이나마 환기가 되는 책을 추천하는 책방 주인이고 싶다. 책방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을  그날과 함께 마실지기님의 안부를 떠올린다. 하루하루를 차곡차곡 쌓으면 나도 그처럼 당당하고도 다정한 책방 주인이   있을까.



그 이후로 2년이 더 지난 지금, 탱님은 북페어나 책방지기 행사에 참여하기 보다는 책방을 지키는 것을 더 좋아하게되었다는 행복한 이야기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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