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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no Oct 30. 2023

11. 용서와 화해

무엇보다 나를 용서하고 스스로와 화해해야

나는 내가 이혼날 날을 독립기념일이라고 부른다. 실제로 별거를 시작하며 혼삶을 산지는 5-6년이 되었지만 서류정리를 마친 지는 2년 반즈음되었다. 이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혼자 살기 시작하며 다시 독립한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내면과 외면의 문이 모두 다 닫히는 서류 정리일이 진정한 독립기념일이 맞다. 다시 독립하여 혼삶을 살아가며 나의 이혼에 대한 생각도 바뀌어간다. 결론에 대한 생각은 변함이 없다 그러나 과정에 있어서 꼭 그랬어야 했었나, 모든 잘못이 저쪽에 있다 생각했었다면 '누가' 잘못을 했든 간에 도박, 폭행, 바람이 아닌 이상에는 양쪽의 몫이 다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죽도록 같이 살고 싶지 않아서 아이와 떨어지면서까지 안 살고 싶었던, 한때는 나의 남편이었고 지금은 아이아빠로만 남은 그 사람을 용서했다. 용서한다고 지금 현실상황이 달라지는 건 없다. 그러나 내 마음이 나아졌다. 그리고 또 살아간다. 지금의 최선의 바람으로는 그저 아이에게만은 좋은 부모로 남고 있는 싶고 그 시절 서로를 찔러댔던 당신을 그리고 나 스스로를 용서하고 그 시절의 과거와 화해하고 싶은 마음일 뿐이다. 그래서 나의 독립기념일 2주년 즈음에 아이아빠에게 이런 메일을 보냈다. 사실은 그와 용서하고 화해하고 싶은 마음보다 그 시절의 나를 용서하고 그 시절의 나와 화해하고 싶었다. 그래야지만 내가 나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런던에서 가족이 흩어진 지 5년, 서류를 정리한 지 어느덧 2년이 다 되어가네요. 시간이 꽤 지나간 것 같은데도 런던공항에서 OO이가 들어가며 "엄마~"하고 울던 모습은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당신과 OO이가 입국장으로 들어간 뒤 그 자리에 서서 한참을 울었습니다. 아마 그렇게 우리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더 이상 살 수 없게 된 순간을 처음으로 느낀 것이겠지요.

이후 OO 이를 내가 데리고 오고 싶다는 마음과 또 한편으로는 자주 오는 공황과 우울증으로 차라리 당신이 OO이의 주양육자가 되는 것이 안정적일 수 있다는 두 마음 사이를 오가며 서울에서 다시 자리를 잡는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사이에 OO이기 어느덧 4학년이 되어가네요. 더 이상 함께 살 수가 없겠다 싶었지만, 2년여의 연애, 아이를 함께 낳고 기른 11년의 결혼생활, 2년의 별거 총 15년이라는 시간만큼의 당신의 흔적이 제게 있습니다. 많은 시간 당신이 원망스러웠고, 이해할 수 없었고, 사과받고 싶었지만 무엇보다도 외면하고 싶었습니다. 너무나 아프고, 정리되지 않는 마음과 감정이 오랜 시간 동안 얽혀있고 주말 마다만 보는 아이를 보면 더욱 그랬죠.

아이의 주양육자로의 당신의 삶이 쉽지 않을 거라는 것은 예상이 됩니다. 가끔 만나는 OO엄마를 통해서도 아빠로서 최선을 다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몇 년째 쭉 오시는 돌봄 선생님을 모신 것도 OO 이에 대한 애정이 느껴집니다. 어쩌면 제가 데려왔으면 도움받을 곳도 없고, 조부모의 사랑도 없었을 텐데 나는 참으로 부족한 사람이고, 부족한 배경이라는 것을 이제야 느낍니다.

이후 이제는 돌아가신 아빠의 교통사고로 인한 병간호와 장례, 집안의 대소사를 치르면서 배우자 또는 가족의 부재와 또한 나는 이제 혼자 사는 여자구나, 그래서 때때로 부동산에서 동네슈퍼에서도 쉽게 보는구나 싶은 상황이 생길 때 종종 가족으로 OO 이와 당신과 함께 살았던 시절이 생각나기도 했었습니다. 우리는 서로 죽도록 미워했고, 함께 할 수 없었지만 내가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 만큼 사실은 당신도 애썼을 거라는 것을 오랜 시간이 지낸 지금에서야 압니다.

함께 살 때 나는 오만했습니다. 혼자서도 얼마든지, 아니 더욱더 잘 살 거라 생각했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부족한 사람이고, 이제는 이혼한 부모를 둔 아이에게 씻을 수 없는 죄책감까지 갖게 되었으니 더욱더 부족할 수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내가 메일을 쓰게 된 서론이 길었습니다. 2018년 여름에 제가 한국에 들어왔을 때 같이 차를 타고 가다 OO이기 잠든 사이에 당신이 내게 미안하다고 말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그 말조차 듣기 싫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거의 5년이 지나서야 그 마음이 진심이었다면, 아직도 같다면 내게 사과해 줘서 고맙다, 나도 미안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제 압니다. 우리는 방법이 서툴러 서로를 찔러댔지만 당신도 나도 서로 최선을 다 했다는 것을... 나만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당신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을 거라는 것을 시간이 오래 지난 지금에서야 압니다. 그 마음을 너무 늦게 알았고, 나 역시 당신을 서운하게 한 것에 미안합니다. 그리고, 아이에 대한 생각이 없던 나를 오랫동안 설득해서 OO 이를 낳게 해 준 고마운 마음은 여전히 있습니다. 헤어지면서 하지 못 했던 말, 나도 미안했고 그리고 고마웠다는 말을 이제야 합니다. 그리고 건강하고 당신이 다시 행복해졌으면 합니다. 아이에게는 좋은 부모로 남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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