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색
집 근처 공원에는 산이 살고 있다.
그 산으로 산책을 가면 늘 쉬어가던 자리가 있다. 오늘은 햇살이 좋아서인지 다른 사람이 먼저 그 자리에서 쉬고 있었다. 조금 더 산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참나무처럼 생긴 큰 나무의 그늘이 제법 커서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나무 옆 흙바닥에 되는대로 자리를 깔고 앉아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초록색이 눈에 익숙해질 때쯤 눈 앞에 몸을 또르르 말고 대롱대롱 매달린 게 보였다. 매달리기 시작한 지점부터 대충 1미터쯤 내려온 녀석은 내 눈에는 절대 보이지 않는 줄에 매달려 있었다.
참나무 애벌레였다. (라고 우겨본다.)
언제부터 그러고 있었지만 알 수 없지만 열심히 허리를 굽혔다 폈다를 반복하며 위로 오르고 있었다.
언제 저 속도로 오르겠나 싶어 잠시 바닥에 흙도 보았다가 하늘도 보았다가 녀석을 다시 보았는데 원래 위치보다 한참을 올라 위에 있었다. 생각보다 빠른데? 바람에 잠시 흔들리는가 싶더니 잠시 오르는걸 주춤한다.
다시 열심히 몸을 움직여 금세 이파리 근처까지 오른다. 초록잎에 자석처럼 찰싹 붙더니 이내 사라졌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는데 녀석은 열심히 올라 결국엔 원하는 곳에 도착한 것이다. 외로운 싸움이었을 것이다.
순간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임을... 녀석이 나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없지만 가야 한다는 것을
그렇지 않으면 계속 같은 곳에 매달려 있어야 한다는 것을 녀석은 알고 있었다.
우리 인생도 그렇다. 분명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시간은 흘러간다. 물론 그대로 있다고 해서 큰일 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 그대로 매달려 있으면 가느다란 줄에 바람을 오롯이 다 맞으며 매달려 있어야 함을 보여주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삶이 애벌레가 매달려 있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열심히 허리를 굽혔다 폈다를 반복하며 어디까지 올라야 할지 모르는 저 순간을 애벌레처럼 버텨내야 하는 것이다. 초연하게 자신의 임무를 다하고 사라진 애벌레를 보면서 슬쩍 미소가 지어졌다. 그 애벌레가 존경스러웠다. 이름도 지어 주었다. 초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