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색
아직 여름이 오기 전인데 햇살이 제법 뜨겁다. 어제 갔던 그 나무 그늘 밑에 자리를 깔고 앉자마자 바닥을 무심코 보았다. 설마 어제 보았던 그 애벌레일까. 애벌레 한 마리가 사투를 벌이고 있다. 상대는 작은 개미 대여섯 마리. 살아있는 애벌레를 사방에서 물고 이리저리 끌고 가려한다. 몸집이 작은 개미팀이라 그런지 몸싸움이 영 신통치 않다. 어쩌지? 구해줘야 하나. 잠시 상황을 지켜본다.
애벌레는 이리저리 몸을 뒤틀며 도망가기 바쁘다. 어린 개미들은 열심히 꼬리를 물었다가 머리를 물었다가 초록이가 힘이 빠지기를 기다리는 듯했다. 순간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얇은 나뭇가지를 들어 개미들을 건드려본다. 놀란 개미들이 순식간에 흩어진다. 잽싸게 초록이를 들어 개미굴이 있을법한 나무 밑동에서 조금 멀리 옮겨준다.
초록이는 기운이 빠졌는지 잠시 쉬는 듯하다. 가파른 오르막을 지나 산을 하나 넘나 했더니 더 높은 산이다.
1대 1의 승부가 될 정도로 제법 큰 개미가 나타나 초록이의 꼬리를 물었다. 초록이는 머리를 들어 개미를 힘껏 내리친다. 개미한테는 솜방망이다. 아무리 두들겨도 개미는 끌고 간다. 에잇! 낙엽으로 개미를 툭툭 쳐본다. 놀래서 초록이를 놓아준다. 기운이 다 빠진 초록이는 바닥에 넙죽 엎드려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죽은 걸까. 혹시 저대로 광합성을 하는 중일까. 저대로 나무가 되어버리는 건가. 내 생각을 읽은 건지 꿈틀 하며 다시 움직인다.
바람이 한껏 분다. 시원하다. 새소리도 시원하고 이파리들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시원하다.
내가 부스럭 소리를 내자 고개를 든다. 나를 보는 건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생색을 낸다.
"너 내가 두 번이나 살려줬다. 열심히 살아야 해" 아마도 개미네 집에서 들으면 통곡할지도 모른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초록이의 주변을 살펴보니 개미들이 여기저기 정탐을 하고 있다. 이런~ 저래 가지고 이 전쟁터에서 살아 남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우리가 바라보는 자연은 아름답다. 지나가는 이가 바라보는 자연은 그 안에서 살고 있는 것들의 고단함이나 두려움은 보이지 않는다. 푸릇한 이파리에 햇볕이 반사되는 이 순간에도 또 다른 초록이와 개미들은 사투를 벌이고 있다. 인간인 내가 감히 개입해서는 안 되는 그들의 삶은 어두움과 빛이 공존하고 있다. 인간의 삶처럼 말이다. 불안한 직장이, 불안한 노후가 그들에게도 있을까?
숲 속의 풍경은 평화롭기만 하다. 나쁜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을 것 같은 숲 속에서 바람을 타고 온 봄의 향기를 맡아본다. 이젠 여름이 오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