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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태선 Nov 07. 2020

고양이와 함께 사는 일상 1편

첫만남


 여름이 가을이 되어가는 어느 늦은 9월에 여자친구를 집에 데려다 줄 때 있었던 일이다.


 “그러고보니 우리 동네에 고양이가 있는데, 턱시도야! 완전 귀여워!”


 여자친구와 아파트 단지를 걸으며 고양이에 대해 들은 첫 마디이다. 고양이가 턱시도? 강아지 옷 입히는 것처럼 고양이도 옷을 입혀서 산책 시키나? 아니 애초에 고양이는 산책을 안 하지? 그럼 어떤 고양이가 턱시도지? 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어떤 고양이가 턱시도일지 생각해보았다. 제일 처음 떠올랐던 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화이트래빗이었다. 상의는 멋진 수트지만 이상하게 하의는 입지 않은, 거기에 당최 어디에 연결되어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회중시계와 단안경을 끼고 있는 바로 그 토끼. 앨리스 앞에서는 거만했지만 주인인 퀸 오브 하트 앞에서는 직수구린채 아무 말도 못하는 그런 토끼 같은 고양이라니, 저렇게 즐겁게 말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생각에 고양이의 모습이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아, 생각해보니 딱 맞는 고양이가 있었다. 혹시 <고양이의 보은>이라는 영화를 아시는지? 방황하는 청춘과 풋풋한 사랑을 그린 장편 애니메이션인데 썩 재미있으니 안 봤다면 꼭 한 번 보길 바란다. 안 본 사람을 위해 등장인물인 고양이의 설정에 대해 설명하자면, 주인공인 시즈쿠가 쓴 소설에 나오는 고양이로 이름은 훔베르트 폰 기킹엔, 직위는 남작이고 외모는 전반적으로 잿빛이 도는 양복을 상하의, 거기에 외투와 중절모까지 맞춰입고 멋진 흑갈색 지팡이와 알록달록한 나비넥타이를 맨 고양이이다. 그래, 이렇게 멋진 외모를 가진 고양이어야 저렇게 즐겁게 얘기할 수 있겠지. 시덥지 않은 생각을 하며 처음으로 본 턱시도 고양이는 말그대로 턱시도였다. 등은 까만털, 배는 하얀털. 아, 그래. 저게 턱시도지. 누군지 몰라도 이름 잘 지었네.

 턱시도 고양이를 처음 마주쳤을 때, 길에서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나와 여자친구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외형에 대해 설명하자면 등부터 다리와 몸통이 연결되는 부분까지는 까만색 털이고 나머지는 하얀 털인데, 얼굴은 예외적으로 이마와 눈 아랫부분부터 하얀색인, 그런 외형의 고양이었다. 몸집이 작아 아마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겁이 많은지, 아니면 어려서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건지, 둘 다인지 알 수 없는 얼굴로 우리를 보다가 얼른 덤불로 숨었다. 

 아마 우리는 자신을 못 보고 자신을 우리를 관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안타깝게도 덤불은 자신의 잎을 가지지 못한 상태였고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훤히 보이는 고양이는 애처롭고 안타까워 보였다. ‘야옹아~ 야옹아~’ 부르며 손을 내미니 덤불에서 얼굴만 빼꼼히 내민채 손냄새를 킁킁 맡다가 더 멀찌감치 들어가버렸다. 아쉬운 마음에 손을 조금 더 뻗어볼까 싶었지만 고양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몹쓸 짓이 라는 생각이 들어 그만하기로했다.

 이후 걸어가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길에서 사는데 밥은 잘 먹는지, 병에 걸렸는지, 다른 큰 고양이들과 영역싸움을 하다가 맞지는 않을지, 고양이가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을 주는 사람이 있는지 등 많은 생각에 머리가 아팠다. 하지만 고양이를 집에 데려갈 수 없는 상황이고, 괜히 개입했다가 귀찮은 일이 늘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기 때문에 속으로 그냥 무시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여자친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내가 생각한 것과 비슷한 말을 했고 결국 우리는 어린 고양이가 겨울을 잘 지내도록 밥과 간식을 주기로 했다. 돌이켜보면 이 때 못본척 빠르게 지나가거나 아니면 칼같이 도와주지 말자고 말했어야 했다. 아이고 내가 미쳤었지. 왜 사서 고생을 하려고 했었을까.

 도와주기로 마음을 먹은 후부터는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가는 카페에 가입하고 이런 상황에서 어떤 도움을 주어야 하는지를 사람들에게 문의한 결과 놀랍게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답변을 달아줬다. 고양이의 크기는 어느 정도인지, 주변에 다른 길고양이들이 많이 서식하는지, 근처에 밥을 주는 캣맘이 있는지, 가까운 동물병원이 있는지 등 내가 체크해야 할 것들과 기본적으로 알아야하는 지식을 알려주었고 나는 그걸 알려준대로 실행하기만 하면 되었다. 크게 보면 밥, 따뜻한 보금자리, 중성화 수술 총 3가지를 해줘야 했다. 제일 먼저 밥. 인간과 마찬가지로 고양이도 밥이 중요하다. 

 고양이는 밥을 하지만 잡식인 인간과 다르게 고양이는 육식을 해야하기 때문에 탄수화물이 많이 들어간 사료는 기호성은 좋지만 살이 급격하게 많이 찐다던가, 신장이 처리할 수 있는 노폐물 용량이 작기 때문에 너무 고단백만 먹이면 신장에 무리가 가기 때문에 사료 선택에 신중을 기해야하는 등 이것저것 고려해야하는 사항이 많았다. 하지만 일단은 어린아이가 많이 먹어야 크는 것처럼 고양이도 몸집이 커지려면 많은 단백질이 필요하기에 사람들이 추천해주는 키튼용 사료와 고양이용 닭가슴살 제품을 사서 먹이기로 했다. 두번째로 따뜻한 보금자리. 이제 1~2개월 후면 날씨가 많이 추워질테니 어린 길고양이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추위를 잘 막아줄 수 있는 견고한 겨울집을 사고 추가적으로 단열재를 붙여주기로 하였다. 세번째, 길고양이가 중성화수술을 받았는지 아닌지는 고양이의 귀를 보면 알 수 있는데 귀 끝이 잘려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중성화수술을 받지 않았다고 판단되었다. 하지만 당장 수술을 하는 건 날씨가 급격하게 추워질지도 모르고, 수술 후 길에 방사되면 일단 몸을 추스르기 어려우므로 봄에 중성화수술을 하기로 결정했다. 자, 이제 모든 정보를 모았고 정말로 실행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실행은 내 생각처럼 쉽게 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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