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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li record Oct 27. 2023

가성비의 고숙성, BULLEIT 10Y

여기에 얽힌 우리의 이야기는 꽤 길다.

나도 히스 씨도 버번위스키를 그다지 찾아마시는 편이 아님을 지금 쯤은 알아주길 바란다.

그렇다고  맛있는 걸 알고도 모른 척할 수는 없다.


억지스럽지만 '좋아하지 않는 음식이 맛있는 건 그게 정말 맛있기 때문'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중얼거렸던 거 같다. 요리가 정말 잘 되었거나 예를 들어 회라고 치자면 나는 연어나 참지는 너무나 불호지만 정말 신선한 상태의 것이라면 뒤집어지게 좋아한단 말이다.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버번위스키를  추천한다면 어느 정도 분명 다른 사람도 좋아할 거라는 약간의 확신이 있다랄까. 


종종 위스키 하나 구매하려고 하는데 추천할 만한 게 있냐는 질문을 받곤 하는데 그럴 때면 먼저 사람의 취향이나 어느 정도의 가격을 생각하는 지를 물어보고 나름 신중하게 권하는 편이다.


그런데 얼마 전 둘이 드라이브도 할 겸 풍경 좋은 곳에서 시가(cigar)나 태우러 다녀 올 요량으로 여유를 갖고 지나던 길에 잠실의 어느 주류점에 들렀다가 합리적인 가격의 맛 좋은 버번위스키를 발견했을 때였다.


맛 좋은 위스키야 많지만 아무래도 주세 등의 이유로 국내에서는 합리적인 가격이라 생각되는 위스키를 찾기가 힘든데 생각지도 않게 가성비 위스키를 만났다.


불릿 10이다. 이미 집에 한 병이 있기 때문에 구매의사는 없었지만 그 맛을 안 이상 그냥 지나치기가 아까워서 버번을 좋아한다는 지인 분생각 바로 연락을 드렸다.

사실 그분의 취향이나 구매의사 등을 자세히 알지 못했고, 그곳까지 올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하긴 했었지만 혼자 알기가 아쉬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정보공유를 가장한 권유를 했던 것이다.

그분은 다음날 바로 방문해서 구매하셨다고 한다.

그 소식이 왜 이리 반가웠던지.


누군가가 우리가 추천해 준 위스키를 구매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왠지 모르게 반갑고 기쁘단 말이야.


우리가 불릿 10을 처음 맛본 이야기를 늘어놔야겠다. 

몇 달 전 일본여행으로 좋아하는 지역 중 한 곳인 쿠마모토의 아소산을 다녀오는 길이었는데 아소산은 활화산으로 유학시절에 두 번 정도 방문을 했었다. 갈 때마다 화산이 터지는 바람에 정상을 올라가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워 겸사겸사 다시 한번 가보기로 한 것이다.

이 전에도 몇 번이나 쿠마모토를 갔지만 아소산을 다시 가볼 생각을 하지 않았었는데, 이번에야 말로 정상에 올라야겠다는 마음에 차를 몰았다.

그런데 이건 운명인가. 우리가 정상에 반 정도 올랐을 때 화산이 터졌으니 내려가라는 방송이 울렸다. 나는 뒤도 안 보고 뛰어내려 갔다.

에라.



사진 몇 장을 기념으로 하고 왠지 모를 억울함과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맛있는 음식이라도 먹어야지 싶어 시내로 향했다. 가는 길에  괜찮아 보이는 고깃집이 있으면 들어가려고 곁눈질을 하며 지나치는데 덩그러니 있는 커다란 창고형 건물의 주류판매점이 눈에 띄었다. 일본은 곳곳에 주류판매점이 꽤 있기 때문에 시끄럽게 울려대는 배꼽시계를 따라 다음기약하고 지나치는 게 보통의 우리지만 규모가 꽤 커서였을 까.

무언가에 이끌리듯이 넓은 주차장에 반듯하게 차를 세웠다.


가게 안은 늦은 시간이라 그런 지 우리 둘과 진열대 사이로 보이는 한두 명의 손님이 다였는데 다들 말없이 신중한 얼굴로 술을 고르고 있었고, 한 직원은 사다리를 세워놓고 술들을 조심스럽게 정리하고 있었다.


두리번거리는 것도 잠시 모처럼 왔으니 본격적으로 구경하기로 했다.


경험상 아무 정보도 없이 와서 좋은 수확을 한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기대는 갖지 않기로 했지만, 어지간히도 신중하게 살폈는지 배고픔도 있은 채 위스키 진열대들을 거의 다 훑다시피 했다.


조금은 허탈하게 나오려고 폼을 잡는 순간 진열대 끝 쪽에 한 병만 달랑 남아있는 불릿 10을 발견했다.

불릿은 국내마트에도 심심치 않게 보이긴 하지만 10년이라니. 실물로는 처음 보는 라벨이었다.

물론 국내에도 풀렸다는 소식은 듣긴 했지만 구하기도 어렵다고 하니 크게 관심이 가진 않았나 보다. 아니면 구매하기를 시원하게 포기했거나.


무엇보다 매력적이었던 건 일본의 시세라 해도 저렴한 편이라는 거였다. 그제야 검색을 해보니 평도 괜찮은 술이었기에 길지 않은 고민 끝에 건져가기로 했다.


계산대로 가는 길에 마음에 드는 술가방도 하나 샀는데 아직까지도 요긴하게 애용 중이다. 사실 술가방을 전부터 하나 장만하고 싶었는데 마음에 드는 걸 찾지 못했었다.


여행의 전리품이라고들 하던가.

불릿 10과 두어 병의 술들을 들고 비행기를 탔다.

다른 것들은 지인들 선물용이라 뭐였는 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데, 개인적으로는 술가방이 가장 마음에 들었지만 뚠뚠이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다녀와서 장 맨 앞쪽에 불릿 10을 올려두었다. 이 자리는 조만간 뚜껑을 따야겠다는 표현이랄까.  마실까 눈치를 한 두 달 보다가 오랜만에 설렁설렁 바다낚시를 갈까 싶어 채비를 하며, 슬그머니 시가 한 대와 함께 차에 태워갔다.


해안가를 달려 사람이 없는 한산한 방파제를 찾아 자릴 잡았다. 물고기를 낚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기에 자리욕심은 없었지만 낚싯대에 묵직한 추와 지렁이 한 마리씩을 달아놓고 최대한 멀리 던져놓았다.


한 동안 초릿대를 응시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 까.

사람도 없고 입질도 소식이 없으니 가져온 캐런 잔을 주섬주섬 꺼내었다.


바닷바람에 위스키 향을 느끼기가 좀 아쉬울까 싶었지만 뚜껑을 따는 날이기에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처음 뚜껑을 때는 알코올 향이 가장 강하기 때문에 약간의 에어링이 필요할 수 있다.)

역시나 자마다 훅 들어오는 버번 특유의 킥은 장시간의 드라이브로 오던 잠을 날려줬다. 그리고 기대보다 훨씬 진하고 그윽했던 바닐라향.

바닐라향이라 표현하기에도 진할 정도로 그윽하게 퍼지면서도 자연스러운 달달한 향에 기분이 좋아졌다.


제대로 방파제 끝에 자리를 잡고 앉아 가져 온 시가에도 불을 붙여 페어링을 했다. 너무 좋은 술과 너무 좋은 시가의 페어링은 그다지 잘 어울리지 않는다. 아마도 그것만으로도 아쉬운 것 없이 너무 좋아서일 것이다.


핸드폰이 한강에 한번 빠지는 바람에 사진이 날라가서 인스타에 업로드했던 걸 캡쳐했다.

그 사이에 망둥어가 한 마리 잡혔다.


둘이 위스키 한 잔을 비우고는 1시간 반 남짓 시가를 태웠다.


미끼를 몇 번이나 갈아 끼고 낚싯대를 나름 열심히 던져보았지만 결국 물고기는 더 이상 올라오지 않았다.  어떤가.


잔잔한 바다를 바라보며 맛 좋은 술에 향 좋은 시가는 꽤나 자랑스러운 시간이었다.


그날도 우리는 물고기가 아닌 세월을 낚았다.

언제쯤 우리는 낚시꾼이 될 수 있을 까.

이번 생엔 글렀다.


"버번이 준비될 때까지 기다린다."라는 숙성철학을 가진 불릿(bulleit) 증류소는 그들만의 전통적인 방식으로 증류 및 숙성을 하며, 2013년에 론칭된 불릿 10 켄터키 스트레이트 버번위스키는 Drink Internationals의 "World's 50 Best Bar Report"에서 No.1 Best Selling과 No.1 Most Trending American Whiskey로 선정되었다.


노트는 매끄러운 풍미와 불릿의 타고난 캐릭터와 높은 호밀함량을 유지하며, 바닐라, 시나몬, 말린 과일의 풍부하고 스파이시한 노트가 특정적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또한 스트레이트보다는 온더락을 추천하고 있다. 참고로 나와 히스 씨는 하이볼이나 버번 콕으로 즐겨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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