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설팅 무용론
살면서 도무지 답이 보이지 않는 답답한 문제에 마주하게 되면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싶어 합니다. 단순한 조언을 넘어서서 문제의 해결책을 요구하기도 하고, 결정을 내리기 부담스러워 하면서 남이 대신 결정을 내려주기를 바라는 경우도 있습니다. 개인이라면 친한 형에게 전화를 걸 수도 있고, 멘토를 찾아가서 조언을 구하기도 합니다. 답답한 마음이 깊어지면 무속의 힘을 빌리기도 합니다.
회사 차원에서도 답답한 상황 속에서 답을 찾기 위해 컨설팅을 의뢰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저는 대부분의 컨설팅은 긍정적인 요소보다 부정적인 요소가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매우 강렬하게 남아 있는 LG의 맥킨지 컨설팅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컨설팅의 부정적인 면은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컨설팅은 어찌 되었든 외부의 도움입니다. 스스로 나라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외세의 도움을 받은 나라들은 대부분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 했습니다. 일이 실패하면 당연히 문제가 되겠지만, 단기적으로 도움을 잘 받더라도 외부 세력에 더욱 의존하게 되는 악순환 고리가 생기게 됩니다. 제가 예전에 다녔던 회사에서는 컨설팅을 진행했던 컨설턴트가 해당 조직으로 들어와서 장악했던 사례가 있었습니다. 해당 조직을 최악의 무능한 조직으로 묘사하여 그 조직을 맡게 된 컨설턴트는 실제 조직장이 된 후로 말과 문서로만 일을 하면 실제 조직 업무에 얼마나 해를 끼칠 수 있는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내부 구성원들이 외부의 도움을 전제하여 자율성과 동기부여가 떨어지는 것도 문제입니다.
컨설팅을 시작하는 컨설팅 업체는 얼마나 다양한 정보로 의사결정을 하게 될까요? 컨설팅 과정에는 논리는 있지만 컨텍스트가 빠져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컨설팅 과정에서 모을 수 있는 모든 정보들을 모읍니다. 그러나 스냅샷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해당 조직이 과거로부터 쌓아온 데이터와 의사 결정을 통해 쌓아온 역사입니다. 현재를 보여주는 사실 하나하나도 중요하지만, 그들이 상황에 대해 느끼는 정서는 더욱 중요합니다. 컨설팅 과정에는 이런 요소들이 배제될 확률이 높기 때문에 논리는 있지만 개연성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컨설팅은 기본적으로 현재의 정보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고 계획을 만들어 내는 일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복잡계라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수많은 요소들을 고려하여 예측하더라도 더 많은 변수들이 발생하고, 작은 변수가 무수한 변화를 만들어 냅니다. 미래를 예측하는 결정이라는 것은 점쟁이에게 미래를 묻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컨설팅을 의뢰하는 기업은 정답을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니라, 수 백장의 PPT 파일을 통해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안도감을 가지게 됩니다.
미래의 예측은 불가능 하므로 모든 일은 실행과 대응이 훨씬 중요합니다. 하지만 컨설턴트는 멋진 PPT를 남기고 유유히 떠납니다. 아무리 좋은 시스템과 프로세스가 있더라도 그것을 실행하는 것은 사람입니다. 프로젝트가 실패 했을 때 이것이 무모한 계획 때문인지, 실행을 한 구성원들의 실패인지 모호한 상황이 생깁니다. 특히 큰 규모의 프로젝트는 실행을 하고 결과를 보는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이 시간은 컨설턴트가 멀리 도망가기에 충분합니다. 더 나쁜 것은 모호한 책임소재 상황에서 이미 떠나버린 컨설턴트는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의사결정은 언제나 어렵지만 개인의 인생도 기업의 운영도 책임있는 자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문제에 대해서는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으며, 내가 가장 절박하고, 내가 가장 많이 고민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후회가 남지 않고 결과에 내가 온전히 책임을 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