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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ice Lee Apr 07. 2018

허 승, 영화를 향한 꿈

꿈을 향해 오늘도 달린다

#Intro, 일본 오사카


2010년 12월, 일본 오사카에서 만난 허 승.

일본 오사카 남바 역에 위치한 검은 아저씨 치즈케이크 가게 옆 스타벅스 사이 골목길로 들어서면, 지금은 이전했지만 한 접시 단돈 130円에 회전초밥을 먹을 수 있는 겐로쿠스시 가게가 있었다. 보통 퇴근길의 현지인들은 1人 3~4 접시를 먹는 곳이지만, 허 승을 비롯 그 의 지인과 나는 담소를 나누며 총 36 접시를 먹어 치웠다. 아사히 수퍼 드라이 맥주와 함께. 그것이 허 승과 나의 다섯 번째 만남이었다. 1년 남짓 알고 지낸 사람과 타지에서 만나 술자리를 갖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허 승은 그것이 가능할 만큼 소탈하고 즐거운 사람이다.


오사카 겐로쿠스시 가게에서 스시를 먹고, 당시 신사이바시에서 줄이 가장 긴 튀김 꼬치 맛집 다루마로 향했다. 도톤보리에서 신사이바시까지 이어지는 길목에는 특이한 간판들이 늘어서 있었다. 이국적 풍경 속에서 세 사람은 다루마의 자랑 14 꼬치 세트를 먹으며 서로 오사카에 오게 된 연유를 안주 삼아 읊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황금연휴, 허 승과 그 의 일행이 일본 오사카에 오게 된 이유는 바로 '미식축구'를 소재로 한 영화를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경기 관람도 하고 관련 선수들도 만나기 위해 일본을 방문한 그는 그의 영화 이야기를 시작했다.



#만남, 트위터 '1ZOMO'당


한참 트위터 'OO당'에 가입하는 것이 유행과도 같았던 때가 있었다. 그때 눈에 띄었던 당이 1ZOMO(일조모), '일요일 조조영화보기 모임'이었다. 이 당에 가입한 것이 나와 허 승의 첫 인연이 되었다.


허 승이 '일조모'를 만든 이유는 단순히 '영화를 같이 볼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영화 일을 하며 평상시 영화를 자주 보는데 영화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과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영화를 보며 느낀 감정 등 개인의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기보다 의례 허례만 챙기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이에 대중들의 진심 어린 영화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영화 인생에 있어 하나의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만들게 된 것이다.


소셜미디어를 통한 오프라인 만남이 오래 지속되기란 쉽지 않지만 매 순간 당원들을 진중히 대하고, 툴툴거리면서도 알게 모르게 챙겨주는 정 덕분에 7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속되었으며 영화 보기 외에도 다양한 활동으로 종종 모이게 되었다.


2016년에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잊지 말자'는 취지에서 일조모 당원들과 십시일반 돈을 모아 분당 한솔고등학교 사회 참여 동아리 <소시오>와 함께 영화 '귀향' 단체 관람을 추진했다. 단체 관람에는 한솔고등학교 학우 100여 명이 참여했다. 이러한 '일조모'를 통해 허 승의 일상에서의 영화 사랑을 엿볼 수 있다.



#잠 못 드는 여름밤, 별을 보다


허 승은 한 때 잠을 자려고 누우면 쿵쾅쿵쾅 뛰는 심장소리에 잠을 이룰 수 없었고, 매일 밤마다 술을 마시고 술기운에 잠을 청했다. 나와는 집이 가깝다 보니 달콤한 밤공기가 불어오는 여름날, 자주 집 앞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과 크래미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느 여름날 밤, 허 승은 이야기했다.

2007년 어느 날, 느지막이 퇴근하고 집에 들어와 샤워를 하고 맥주를 마시며 무심결에 틀어 놓은 TV를 보는데 눈을 뗄 수가 없었다. TV 속에서는 '자이니치 태극전사'라는 미식축구 월드컵을 주제로 한 'MBC 스페셜' 다큐멘터리가 방송되고 있었다. 평소 미식축구에 관심이 있었기에 가만히 앉아 보던 허 승은,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감동해 눈물을 훔치고 말았다.


그 날 보았던 'MBC 스페셜'의 감동은 마음속에 오랜 기간 자리 잡았고, 평소 '사람'에 대해 영화를 제작하고 싶었던 그는 이를 소재로 삼기로 마음먹었다. TV를 본 바로 다음 날 직접 일본 NHK에 다니는 친구에게 선수들 인터뷰를 요청하고, 기획서를 만들어 하나둘 진행하기 시작했다.


'MBC 스페셜, 자이니치 태극전사' 이야기는 이렇다.

미식축구 월드컵 American Football World Cup, IFAF World Cup은 국제 미식축구 연맹의 주관 하에 4년마다 열리는 대회이다. 대회에는 일본, 미국, 독일, 프랑스, 한국, 스웨덴 등 6개 국이 출전하는데 한국이 사상 최초로 3회 대회 본선에 올랐다. 당시 첫 국제 대회에 나가 1승을 거둔 것이다. 하지만 이면에는 선수 개개인의 구구절절한 사연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영화 '국가대표', '우생순', '글러브'가 떠오를 수도 있는 스토리이지만 허 승이 꿈꾸는 영화는 한국판 '리멤버 타이탄 Remember the Titans, 2000'이다.



#가는 마음은 잡을 수가 없다


허 승은 국민학교 5학년 때부터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6학년 때에는 친구들과 소니 8mm 홈비디오카메라를 들고 무작정 보여주기 위한 쫓고 쫓기는 영화 '복수혈전'을 찍었다(당시 홍콩 누아르 영화가 유행할 때였다고 함).


하지만 그 나이대가 그러하듯 꿈은 변했다. 중학교 3학년 때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대신 살아볼 수 있는 배우를 꿈꿨고 예고를 준비하기도 했다. 하지만 부모님의 반대를 이길 수는 없었다. 할 수 없이 인문계로 진학했지만 가는 마음은 잡을 수가 없었다. 고등학교에서 영화 동아리에 가입하게 되었고, 취미로 영화 제작을 배우시던 동아리 선생님과 함께 작품을 보고 토론하며 다시 감독의 꿈을 갖게 되었다.


오랜 기간 '영화'에 대한 집념은 부모님에게 신뢰와 믿음을 주었지만, 연극영화과로의 대학 진학 실패 후 딱 한 번 부모님의 뜻에 따라야 하는 그때가 왔다. 생전 해보지도 않았던 게임 프로그래밍 아카데미를 다니며 1년 동안 공부하다가 정말 자신의 길이 아닌 것 같아 군에 입대 지원했다.


전역 후 운 좋게 기회가 닿아 MK픽쳐스(명필름과 강제규 필름의 합병 회사) 제작팀 막내로 일 하며 영화 '그때 그 사람들' 로케이션 일을 하게 되었고 기지를 발휘해 '그때 그 사람들' 마지막 장면을 장식하는 장소를 성공리에 물색해 영화에 올렸다. 그때 그 희열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일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영화 '광식이 동생 광태' '구미호 가족'의 로케이션뿐만 아니라 후반 작업, 개봉하는 과정까지 함께하게 되면서 감독으로서 영화 연출보다는 제작사로서의 영화 기획 분야가 본인 적성에 맞다고 판단하게 됐다.


영화 판에는 빛을 보지 못하고 사장되는 영화가 수두룩하다. 허 승이 4년 동안 다섯 작품을 참여하고 5년 차 영화인이 되던 해 처음으로 준비하던 영화가 제작 준비 기간 중에 엎어지는(영화 제작이 중단됨)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이 일이 허 승이 영화 판을 떠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영화 일에서 손을 뗀 후 대북 무역회사의 수행비서로 일하게 되었다. 운전만 해야 하는 수행비서였다면 택하지 않았을 것이지만 총무팀 업무도 함께 하겠다는 조건 하에 입사하게 되었다. 총무는 인사관리도 관여하고 있어 영화 일을 하면서 알지 못했던 일반적인 회사의 세세한 업무를 알게 되었다.


한 번은 사내 행사가 있어 사람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 급히 엑셀 작업을 대신하게 되었는데 '고졸' 출신에게 가지고 있는 편견 때문인지 그 작은 일처리에도 임원들은 감탄했다. 재차 일의 진행에 따라 신임을 얻어 수행비서, 총무팀 업무뿐만 아니라 직접 물건을 구매하고 수출하는 일까지 진행하게 되었다..


하지만 영화만을 생각하며 살아왔던 삶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스물아홉. 고정적인 수입을 가진 직장인으로서의 맛은 남달랐지만 1년 간의 회사생활에 만족하기로 했다. 그리고 군대에 있으며 마음먹었던 유학을 떠올렸지만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떠날 수 없기에, 서른 전에 미국 일주를 하겠다는 목표를 위해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미국으로 향했다.



미국에서의 3개월 동안 한 달 반은 18개 주의 도시를 여행했다. 그리고 한 달 반은 미국 일정의 두 번째 목표였던 '허 승, 제리 브룩하이머를 만나다'라는 프로젝트를 위해 LA 한인 타운에 원룸을 잡고 제리 브룩하이머 필름이 있는 산타모니카로 무작정 찾아갔다. '허 승, 제리 브룩하이머를 만나다' 프로젝트는 이전부터 기획했던 '미식축구' 소재의 영화 기획서를 제리 브룩하이머에게 전달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나기 전 주변 지인들에게 후원금 총 200만 원을 모금해 기획했다. 하지만 결과는?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허 승은 '제자리걸음도 구두 바닥이 닳긴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되새겼다. 이왕 생각한 것은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지 말고, 나중에 후회하지 않게 일단 해보자!라는 생각에 더 큰 자신감을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와 한국의 영화 투자사, 영화 관계자들과 만나 자신의 꿈을 향해 더 힘차게 나아갈 수 있었다.


#Outro, CUDB


2011년 3월, 영화 일을 하며 마음이 잘 맞았던 형, 동생과 함께 영화·광고·뮤직비디오 제작과 로케이션 서비스를 주력으로 하는 회사를 만들었다. 그리고 세제곱의 시너지 효과를 내자는 의미로 CUBE BROTHERS, 큐브 브라더스의 합성어 CUBROS 큐브로스라는 이름을 지었다.


당시 서울시 청년창업지원센터의 지원을 받아 사업을 시작했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창립 작품으로 UV의 '이태원 프리덤' 프로덕션 서비스를 시작으로 KBS 2TV 드라마 '사랑비, tvN 드라마 '결혼의 꼼수' 로케이션 서비스를 담당했다.



당시 UV와의 인연으로 현재는 유세윤과 큐브로스 창업 멤버 동생 등 광고/콘텐츠 프로덕션 'CUDB(쿠드비)'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물론 '미식축구'를 소재로 한 영화는 꾸준히 진행 중이다.



영화 한 편의 제작은 적게는 3년, 길게는 5~6년이 걸리기도 하는 작업이다. 인내가 필요한 작업. 인내가 필요한 영화만큼 영화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사람, 허 승. 목표는 죽기 전 제작자가 아닌 감독으로서 영화를 연출하고 싶다고 한다. 충실히 채워지는 매 순간순간, 그 찰나가 모여 그의 영화 인생에 있어 커다란 밑거름이 되지 않나 싶다. 머지않아 제작자, 더 나아가서는 영화감독이라는 수식어가 달릴 허 승을 기억하며, 그의 꿈을 향한 걸음에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글: Alice

감수: 허 승

그림: 강 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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