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4B 연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귀새끼 Jan 03. 2017

몽당연필

빈약한 상상력과 사색이 빚은 글

  아이들이 쓰던 몽당연필 두 개가 식탁에 놓여 있다. 한쪽 끝에 큰 아이의 이름이 새겨진 스티커가 붙어 있네. 지난 1년 동안 아이의 손에서 또박또박 배움을 도와준 친구였다. 


  몽당연필을 가만히 쥐어 본다. 손이 큰 편이 아닌데 영 불편하다. 앞으로 은빛 기차 연필깎이를 몇 번 만나면 손에 쥐기도 힘들겠다. 연필을 살며시 돌려본다. 계속 바라보고 있으면 몽당연필에 대한 좋은 추억이 하나쯤 떠오르리라 기대했지만 소용없다. 난 몽당연필을 소중하게 써본 적이 없다. 굳이 “요즘 애들은…”이란 말을 쓰지 않아도 된다. 나 역시 어릴 적 연필이 짤막해질 때까지 써 본 기억이 별로 없으니까. 아버지 세대에 비해서 학용품이나 물자가 넉넉해서 이기도 하겠지만, 몇 번 쓰다가 자주 잃어버리는 습관 때문이었다. 아니, 결국 같은 이유인가. 


  문득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몽당연필로 메모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진부한 이미지를 떠올려서 솔직하지 않은 글을 쓸 뻔했다. 글감을 두고 허접한 상상력과 경험으로 낭만적인 글을 써보겠다는 유혹 앞에서 정신을 차린다. 그렇다 나는 몽당연필을 가지고 가식을 떨 뻔했다.


  생각난 김에 연필깎이를 가져온다. 생각보다 더 짧다. 몇 번이 아니라 벌써부터 손잡이를 돌려서 깎는 기계식 연필깎이로는 더 이상 뾰족하게 연필심을 다듬어 쓰기 어렵다. 칼을 쓰거나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칼로 연필을 깎아본 것이 언제였던지 까마득하다. 괜히 오기가 발동한다. 견출지를 찾는다. 연필에 붙은 아이의 이름 위에 내 이름을 써 붙여서 당분간 써볼까 싶다. 그래, 할머니는 몽당연필 뒤에 볼펜대를 끼워 쓰시곤 하였지. 곧바로 생각을 접는다. 못쓰는 볼펜대가 없다. 몽당연필의 낭만을 위해 멀쩡한 볼펜을 일부러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또 한 번 가식의 선을 넘을 뻔했다. 역시 검소한 삶은 습관이다. 다 쓴 볼펜 하나도 버리기 아까워하는 마음이 있어야 했다. 무엇이든 아끼고 모으면서 게다가 잘 보관해 둘 줄 아는 정리하는 습관까지 있어야 한다. 볼펜을 다 쓰기 전에, 연필을 다 쓰기 전에 곧 잘 잃어버리기 일쑤인 사람에게 몽당연필의 낭만은 가식의 유혹이다. 


  쓴웃음을 지으며 연필꽂이 안으로 집어넣는다. 언제 다시 찾을까. 갑자기 메모할 일이 생겨서 연필꽂이를 뒤적거리는 데 그날따라 볼펜들이 없거나 잉크가 말라버린 상태쯤 되어야 반가워하지 않을까? 아니면 언젠가 연필꽂이 전체를 비워버릴 때 발견하고 내 이름으로 덧붙인 견출지를 보면서 오늘을 기억하지 않을까? 차라리 그러면 다행인데, 또 없는 몽당연필의 추억을 만들어내려는 가식의 선 앞에서 서성이지 않을까?


  마침 연필꽂이에 꽂힌 모나미 153 볼펜 하나를 발견했다. 뚜껑을 열고 볼펜심을 뺀 뒤 몽당연필을 꽂아본다. 구멍이 맞지 않다. 또 웃었다. 내가 기억하던, 머리 속에 이미지로 담고 있던 볼펜대는 무엇이었는가? 연필을 들고 있는 손이 부끄럽다. 볼펜을 다시 조립한다. 연필을 다른 펜들이 가득 꽂힌 연필꽂이 틈을 찾아 끼워 넣는다.

 

  이 글은 막연한 글감으로 가식적인 글을 쓸 뻔한 나의 미련함에 대한 고백이다. 





몽당연필, 연필깎이, 연필꽂이 전부 희생된 글

매거진의 이전글 다림질 잡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