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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Oct 14. 2024

메시 같은 재간둥이 배우의 분투

하지만 너무 좁았던 운동장

불볕더위에 시원한 영화관을 찾았다. 조조할인으로 이른 아침 저렴한 가격에 영화를 보던 맛이 있던 예전과 달리 요즘은 조조할인이라는데 값이 제법 비싸 영화 보기도 망설여진다. 그래도 영화를 본 이유는 기대가 되는 배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배우 조정석이다.


조정석이라는 배우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재간둥이’라고 말하고 싶다. 재주가 많아 어떤 배역이든 잘 소화해 낼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업계 최고라고 불리는 배우들에 비해 티켓 파워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영화 <엑시트>에서 9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면서 그 생각도 바뀌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원맨 영화라고 봐도 무방한 신작 <파일럿>을 볼 때도 왠지 모를 기대감이 있었다.



최고의 실력을 갖춘 스타 파일럿 한정우(조정석)는 실수 한 번에 가족과 직업, 명예 모든 것을 잃는다. 다시 항공사 취직을 노리지만 어느 곳 하나 받아주는 곳이 없던 그때 여동생의 신분을 이용해 여자 파일럿이 되어 재취업에 성공한다. 하지만 여자로서, 파일럿으로서 또 다른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 영화는 단순한 코미디 영화라기에는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은 영화다. 주인공 한정우는 한순간 엎어진 삶을 통해 주변 동료, 가족, 자신의 꿈을 모두 돌아본다. 자기 일에 매달려 가족을 등한시했던 것을 반성한다. 또 스타병에 걸려 본업인 파일럿보다 여러 광고, 매스컴 출연에 몰두했는데 새로 파일럿에 취업하며 자신의 꿈이었던 파일럿 일에 애정을 갖게 된다. 이것만 봐도 (조금은 식상한 진행일 수 있지만) 할 말은 다 한 것 같은데 끝이 아니다.



여기에 요즘 많이 부각되는 성 갈등까지 보여준다. 이 모든 것을 담기에 주어진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영화라는 그릇 자체가 부족했을 수도 있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면 어떤 내용에 더 무게 중심을 둘지 선택해야 했는데 이 영화는 네다섯 마리의 토끼를 다 잡고 싶어 했다. 여러 가지를 다 담으려고 하다 보니 웃기기는 성공했지만, 조정석의 원맨쇼만 눈에 띄는 아쉬운 영화가 되어 버렸다.



주인공은 영화에서 자신이 실수한 것에 대해 주변인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주인공이 반성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내용이 조금 아쉬웠다. 성 인식이 부족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면 직장 내 희롱뿐만 아니라 유리천장 같은 여성의 처우, 직장 생활 속 고난, 고통에 대한 공감과 깨달음을 보여주는 장면을 확실히 보여줘야 했다. 신체 변화에서 오는 고통은 남자가 여장을 했기 때문에 불편한 것이다. 이런 불편함을 보여주는 것은 웃음은 살지 몰라도 여자들의 불편함을 보여주고 공감하기에는 부족했다. 실질적인 문제를 깊이 있게 다뤄야 했는데 이 영화는 말은 그렇게 하고 싶어 하면서도 행동으로는 보여주지 못했다. 주인공이 다른 동료에게 사과하려고 달려가는 중에도 유쾌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나는 전혀 재미있지 않았다. 미안함에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웃기려고 한 몇 장면은 조정석이 연기했기 때문에 웃겼지, 다른 사람이 주인공을 연기했다면 썩은 미소가 나왔을 것 같다. 영화는 조정석의 재간을 활용해 눈길을 사로잡는 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실망스러웠다. 웃기고 싶은 건지, 확실히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건지 수박 겉핥는 느낌이었다. 



축구 선수 리오넬 메시의 축구 실력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그가 뛰는 축구 경기장에 가야 한다. 하지만 리오넬 메시를 1평도 안 되는 방에 가둬 탁구공으로 실력 좀 보이라고 한다면 온전한 실력을 볼 수 있을까? 조정석은 영화에서 많은 것을 보여주려 했지만 이를 감상하기엔 공연장이 부실했다. 그래도 이 영화를 통해 느낄 수 있었던 고무적인 점은 인물만 생각해도 조정석이 떠오르는 영화, 조정석만 할 수 있는 영화가 계속 만들어지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드라마, 영화를 넘나들며 보여준 조정석의 연기는 기억나지 않는 것이 몇 없을 정도로 모두 톡톡 튀었다. 앞으로도 조정석의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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