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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보기 Feb 16. 2016

16. 베르사유 궁전과 에펠탑을 가다

쿵짝맞는 여행메이트와 함께 삐뚤어질테다

파리 호스텔에서는 오랜만에 한국인 룸메이트를 만났다.

다래언니, 언니는 부산에서 왔고 심지어 대학 동문이었다.

그녀는 미술관에서 일하다가 사직서를 쓰고 유럽여행을 왔다고 했다.

언니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거쳐 파리에 왔는데, 3일 후엔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가야 했다.

단지 본인의 직업 때문에 굳이 저가항공을 왕복하는 수고를 감수하며 파리에 온 것이었다.

하지만 언니의 결정은 현명했다.

파리는 '예술의 도시'란 이름이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이니까.


처음 파리에 도착한 날 밤, 언니는 먼저 함께 다니는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로마 이후로 줄곧 계속된 홀로 여행에 지쳐있었던 데다가 대도시에서의 군중 속의 고독을 두려워하고 있었던 내게는 이보다 반가운 제안이 있을 수 없었다.

다래언니와 나는 취향도 비슷해서 어울려 다니기에 좋은 여행 메이트였다.


파리에서의 둘쨋날은 언니와 함께 베르사유 궁전으로 향했다.

언니는 몽마르뜨 언덕이랑 고민하는 것 같았지만, 내 의견에 흔쾌히 따라주었다.

이제 여행에도 익숙해진데다가 혼자 아닌 둘인 발걸음은 훨씬 가볍게 느껴졌다.

파리에서 RER을 타고 교외의 베르사유로 향했다.

RER은 파리의 승객들과 베르사유를 향하는 각국의 관광객들로 가득찼다.

그렇게 베르사유 궁전에 도착!

궁전은 예상했지만 실로 엄청난 규모였다.

다래언니와 나는 초입부터 궁전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못찾아서 입장 후에 다시 출구로 나왔다가 검문소로 돌아가 입구 어딘지 물어보고서야 겨우 입장에 성공했다.

거울의 방
궁전 내부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곳

궁전 내부는 화려함의 극치였다.

그 끝을 모르는 화려함은 감탄을 자아내기 보다는 사람을 질리게 했다. 다래언니와 나는 혀를 내두르며 왜 프랑스 왕정이 망했는지 알겠다며 번갈아가며 이야기했다.

내 마음에 가장 쏙 들었던 곳은 깔끔한 복도였다.

나중에는 그 방이 그 방 같고, 사진찍는데도 지쳐서 카메라도 놓아버렸다..

얼른 궁전을 벗어나 정원으로 이동했다.


정원은 맑은 하늘과 아름다운 인공호수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을 보는듯했다.

정원 역시 엄청난 크기를 자랑했다.

예전의 나라면 이 정원을 부러워했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대학시절 창덕궁 비원을 방문했었던 적이 있다.

나는 그 아름다움에 반해 다음 날 학교 선배한테 조선시대 왕이 부럽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그 선배는 '내가 왕이라면 백성들이 부러웠을 것 같은데, 백성들은 어디든 갈 수 있잖아.'라고 답했다.

그 때 '아차' 싶었다. 왕들은 함부로 밖을 돌아다닐 수 없기에 자연히 정원을 크게 만들 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자유인가, 소유인가.

나는 이제 자유가 더 소중하다는 걸 안다.


중간중간에 왕의 후궁과 왕비의 별장이 있었다.

인상깊었던 건 마리 앙뜨와네뜨가 좋아했다는 별장이었다.

화려한 궁정생활에 질린 앙뜨와네뜨는 어린 자녀들과 함께 이 허름한 별장에서 시간보내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아이러니하나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창덕궁에도 백성들의 생활을 이해하기 위해 99칸 양반집 한옥이 지어져 있었는데.. 여행하면서 느끼는 거지만 어디나 사람 사는 건 다 비슷한 것 같다. 심지어 화려한 궁정생활까지도 말이다.


다시 기차를 타고 파리로 돌아와 우리가 향한 곳은 파리하면 빠질 수 없는 '에펠탑'이었다.

하지만 에펠탑 역시 나의 반골기질을 피해가진 못했다.

에펠탑은 기대도 없었지만, 없는 기대마저도 실망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다래언니와 나는 파리를 최고의 마케팅 도시라며 입바르게 칭찬했다.

아무래도 나는 그 말이 옳은 것 같았다.

에펠탑이 무언가 엄청난게 있어서 유명한게 아니라 유명하기 때문에 그 유명함이 유명한 느낌이랄까.

많은 관광객들은 그 유명함을 직접 본 것에 만족하나 보다.

하지만 이미 유럽여행 중에 분에 넘치게 많은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느낀 나에겐 슬프게도 그런 속임수는 통하지 않았다.


다래언니와 나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근처 레스토랑으로 '에스까르고(달팽이요리)'를 먹으러 향했다.

보기엔 썩 맛있을 것 같진 않지만, 에스까르고는 내 입맛에 맞았다. 우리나라의 골뱅이 식감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하지만 다래언니는 1개만 먹고 나머지는 나에게 양보했다.

저녁식사 후에 야경을 구경하기 위해 다시 에펠탑으로 향했다.

에펠탑 야경은 오후의 그것 보다는 멋졌다.

그것 뿐이었다.

이게 전부였다면 나는 정말로 파리에 실망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다음날 밤에 우연히 혼자 거리를 걷다가 조명쇼로 반짝거리는 에펠탑을 보게 되었는데, 그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라 사진찍는 시간 조차 아깝다고 느낄 정도 그 아름다움에 넋을 놓았다. 그 순간의 아름다움만은 나의 뇌리 속 깊은 곳에 저장되어 있다.


어쩌면 아름다움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예상치 못한 때에만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

사진 따위로는 도저히 담아낼 수 없는 것.

하지만 우리가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있는 것.

아름다움이란, 그런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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