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들어, 신시컴퍼니와 오디컴퍼니 등 당시 대형 뮤지컬을 기획·제작하는 대형 뮤지컬 제작사에 EMK뮤지컬컴퍼니가 추가로 명함을 내밀 수 있게 만든 뮤지컬을 손꼽으라고 한다면 ‘엘리자벳’과 ‘레베카’를 예시할 수 있다.
기존의 뮤지컬 기획사들이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의 최신 추세를 따르는 동안 EMK는 국내엔 잘 알려지지 않은 동유럽 뮤지컬을 국내로 소개하는 틈새시장 공략이 관객 동원으로 이어지는 성공을 이어갔다.
EMK를 통해 2010년대 당시 국내 소개된 동유럽 뮤지컬 세 작품 가운데 ‘엘리자벳’과 ‘레베카’는 꾸준히 재연에 성공한 반면 ‘더 라스트 키스(舊 황태자 루돌프)’는 현재 재연이 뜸한 상태다.
‘레베카’가 초연할 당시엔 히치콕 영화만큼의 아우라가 잘 드러나지 않는 결말로 마무리됐다. 소설과 영화는 반전이 파격적으로 전개되나, 뮤지컬의 한국 초연 당시엔 반전이 밝혀지는 심각한 상황에서 저택이 활활 불타는 와중에 배우들이 합창을 하는 방식의 생뚱맞은 마무리로 전개되는 바람에 소설과 영화가 전해주는 아우라가 뮤지컬로는 바통 터치되지 못하는 연출 ‘미스’로 이어졌었다.
이후 ‘레베카’는 ‘모차르트!’처럼 연출의 변화가 매 시즌마다 이어졌고, ‘레베카’ 속 반전과 마무리 전개도 초연과는 달라진 변화가 주어졌다. 2막에서 뮤지컬의 메인 넘버 ‘Rebecca’로 객석의 관객을 사로잡는다는 점은 소설과 영화와는 다른 뮤지컬만의 매력이다.
객석을 압도하는 메인 넘버 ‘Rebecca’의 장관을 만끽하기 위해 일부러 ‘레베카’를 찾는 관객도 있을 정도다. ‘Rebecca’가 압도적인 파워를 갖게 되기까지에는 타 뮤지컬과는 방점이 다른 연출의 강조점이 있었기에 가능했는데, 지금부터 그 이유를 차근차근 살펴보도록 하겠다.
‘레베카’가 요즘 공연 중이거나 예정작인 ‘지킬앤하이드’와 ‘노트르담 드 파리’, ‘빌리 엘리어트’와 ‘잭더리퍼’ 등의 뮤지컬에 비해 결이 다른 점은 죽은 자가 산 자를 지배하고, 살아있는 사람은 죽은 사람에게 예속된다는 점이다. 여기서 죽은 자는 레베카, 산 자는 댄버스 부인이다.
댄버스 부인이 나(ich)를 맨덜리 저택의 안주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연유는, 댄버스 부인이 정신적이자 실질적으로 인정하는 안주인의 권위가 나(ich)라는 풋내기 마님이 아니라 이미 고인이 된 레베카이기 때문.
고인의 권위가 살아있는 사람인 나(ich)로 대물림하는 걸 바라지 않는 집사 댄버스 부인의 반감 때문에 나(ich)는 맨덜리 저택에서 안주인의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사태가 야기됐다. 이후 전개되는 나(ich)와 댄버스 부인의 신경전은, 죽은 자인 레베카가 산 자인 댄버스 부인, 간접적으로는 나(ich)라는 두 명에게 영향을 끼침으로 말미암아 ‘레베카’는 죽은 자가 산 자를 지배하는 독특한 면모를 갖는 뮤지컬로 평가할 수 있다.
죽은 자가 산 자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레베카’만의 독특한 이야기 전개는, 메인 넘버 ‘Rebecca’가 관객에게 큰 호응을 얻게 만드는 원동력을 제공한다. 뮤지컬 ‘레베카’에 있어 관객이 가장 사랑하는 넘버가 ‘Rebecca’로 자리할 수 있던 이유는 소설과 영화와는 달리 댄버스 부인이라는 캐릭터가 강조됐기에 가능했던 것.
댄버스 부인이라는 캐릭터가 두각을 나타낸 덕에 넘버 ‘Rebecca’가 갖는 위상은 타 넘버에 비해 압도적 위상을 갖는다. 만일 레베카라는 고인이 살아있는 사람인 댄버스 부인에게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다면 뮤지컬 속 ‘Rebecca’는 지금처럼 관객의 심금을 파고들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메인 넘버 ‘Rebecca’로 표현되는 댄버스 부인의 안주인인 나(ich)를 향한 직설은, 소설과 영화로는 체험하기 어려운 뮤지컬만의 장점이자 정수로 손꼽힌다. 관객에게 있어 넘버 ‘Rebecca’가 강렬하게 뇌리에 남을 수 있던 건 댄버스 부인을 강조해서 표현한 뮤지컬의 방점 덕이고, 댄버스 부인이 강조될 수 있던 건 죽은 자가 댄버스 부인에게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야기 구조 덕이다. 이런 상호 연관성을 유념해 살펴볼 때 메인 넘버 ‘Rebecca’의 객석을 향한 파급력은 이전과는 다른 의미로 와 닿을 수 있다.
미디어스 (사진: EMK뮤지컬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