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가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 드라마 장르 중 대중에게 맨 처음 반향을 일으킨 장르로 돌아왔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중 드라마로는 대중에게 첫 센세이션을 일으킨 장르가 좀비물 ‘킹덤’이었는데, 올해 소개하는 한국 첫 콘텐츠 ‘지금 우리 학교는’이 좀비물이기 때문.
좀비물로 화제성을 높인 넷플릭스가 다시 좀비를 소재로 다룬 드라마로 회귀한 셈. 덕분에 예고편은 공개 이틀 만에 200만 회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이 관심을 갖고 해당 예고편을 클릭한 결과다. 해당 드라마는 뮤지컬배우 배해선과 이규형, 안시하 및 ‘오징어 게임’ 이유미가 출연한다. 배해선은 원작 웹툰엔 없는 독창적인 인물이다. 안시하는 등장 시간이 짧은 반면, 이규형은 원작 웹툰보다 분량이 많아졌다.
넷플릭스가 이번 드라마를 28일에 공개한 타이밍은 흥행을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한국 넷플릭스 시청자들이 29일부터 이어지는 설 연휴라는 기간과 맞물려 시청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공략 마케팅이 연휴 직전일이라는 공개일과 시의적절하기 때문.
‘킹덤’ 속 생사역 감염자들은 매우 빠르면서 동시에 집단으로 움직여 시청자의 모골을 송연하게 만들었다. ‘지금 우리 학교는’의 좀비 또한 집단적이면서 빠르게 생존자들에게 달려드는 행동 양태를 보이면서 21세기 학교 버전 ‘킹덤’을 창출했다.
속도감 있는 연출 덕에, 웹툰 원작보다 공포의 위압감은 압도적으로 다가온다. 하나 더, 원작과는 일부 다른 각색으로 구성된 덕에 웹툰 원작을 접했다 해도 기시감 대신 예측을 불허하는 전개를 기대해도 좋다.
기존 좀비물의 패턴을 벤치마킹하지 않은 덕에 ‘지금 우리 학교는’만의 다채로운 각색 시도가 가능해졌다, ‘킹덤’, ‘부산행’ 등으로 상향평준화한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관습적인 클리셰를 익숙하게 차용하는 대신에 기존 좀비물과의 차별점을 강화하고자 노력한 흔적이 드라마 연출에서 보이는, 보다 차별화하면서 진일보한 좀비물이다.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 이채로운 점은 ‘좀비보다 무서운 건 사람’이라는 명제가 두드러지게 묘사되는 점이다. ‘좀비보다 무서운 건 사람’이란 명제는 새삼 새로운 명제는 아니다. 이미 미국드라마 ‘워킹 데드’ 등이 선보인바 있는 명제로, 좀비 외에도 재난으로부터 살아남은 생존자가 공포의 대상으로 돌변할 수 있다.
타자와의 연대가 두드러지면서, 그 반면에 일부 타자가 ‘워킹 데드’, 영화 ‘#살아있다’처럼 생존자에게 심각한 위해를 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좀비 못지않게 두려운 존재로 다가온다. 이청산(윤찬영 분)이 도서관에서 악마화한 타자와 결투를 벌이는 장면은 그 어느 좀비물보다 흥미진진하게 진행된다.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 도움을 제공하고자 노력하는 착한 영양사가 좀비들에게 던져지는 등, 스토리가 진행될수록 생존자가 줄어드는 것도 일부 타자의 악마화 때문이다. ‘지금 우리 학교는’의 인물들 가운데서 행동 동기에 의문을 품게 만드는 대표적인 캐릭터는 이유미가 연기하는 이나연이다.
효산고등학교가 좀비 바이러스에 속수무책으로 함락될 때, 이나연은 드라마 3회에서 한경수(함성민 분)에게 같은 반 급우라면, 아니 인간이라면 결코 하지 않았을 행동을 저지른다. 영화평론가 미하일 트로피멘코프가 언급한 ‘선한 이들은 자신의 죽음으로 동료를 구한다’는 원칙을, 극중 이나연은 ‘내가 저지르는 악행으로 동료를 사지로 내몬다’는 방식으로 비튼다.
이나연의 행동에서 의문시되는 점은, 한경수가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니었다면 이같은 악행을 저질렀을까 하는 점이다. 학교가 좀비 감염자로 뒤덮이는 공포에 휩싸이기 전부터 경제적으로 부유한 계층의 집안에 속하는 이나연은 기초생활수급자 한경수를 경멸해왔다.
만일 이나연과 동일한 경제적 계급에 포함됐거나, 기초수급생활자가 아니었다면 과연 한경수를 구렁텅이로 내몰았을까. 이나연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은 한경수라는 한 사람의 경제적 위상이 과연 인간성의 소외로 내몰릴 만큼의 리스크로 작용했을까를 숙고하게 만드는 질문으로 남는다.
통상적인 좀비물이었다면 경제적 계급의 취약함이 인간소외라는 상황이 맞물리지 않았을 것이다. 기존 좀비물에서는 유산계급과 무산계급의 차이와는 관계없이, 인간성의 선함과 악함으로 생존자들의 연대 또는 악마화가 판가름 났기 때문이다.
배우 이유미가 연기를 못하면 몰입도가 떨어졌겠지만, 연기력에 있어 타 출연배우보다 뒤떨어지지 않기에 이나연이란 인물은 ‘오징어 게임’의 이타적이었인 지연이란 인물 연기와 달리 소름끼칠 만큼의 빌런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지금 우리 학교는’은 경제적인 취약함이 인간을 어떤 윤리적 아노미로 내모는가를 이나연이란 인물을 통해 시청자에게 질문한다. 이나연이 저지른 행동은 경제력의 퇴보가 인간성의 존엄조차 지킬 수 없게 만드는가 하는 섬뜩함을 제기하기에 말이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이나연을 통해 좀비 아포칼립스에 ‘경제 다위니즘(Darwinism)’을 덧입히고 있다.
‘지금 우리 학교는’이 타 좀비물에 비해 개성이 두드러지는 지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극중 좀비가 태동하는 원인을 보다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세계인에게 ‘킹덤’보다 먼저 K-좀비를 각인시키는데 성공한 ‘부산행’에서 좀비가 발생한 원인은 한 제약회사에서 유출된 바이러스가 원인이다.
‘지금 우리 학교는’ 역시 바이러스가 원인이긴 하지만 그 동기에 있어선 여타 좀비물에선 찾을 수 없는 설정이 존재한다. 그건 바로 ‘학교 폭력’과 ‘부성애’다. 좀비가 창궐하는 원인으로 부성애와 학폭을 동시에 설정한 좀비물은 그 사례를 찾기 어렵다.
효산시에 거주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다는 설정은 한 아버지의 엇나간 부성애 때문으로 볼 수 있겠지만, 문제의 인물이 비윤리적인 실험을 하게 된 궁극적인 원인은 아들이 학교 폭력의 희생자이기 때문이다.
만일 효산고등학교 측이 학교 폭력이 발생할 당시 가해 학생에게 제대로 된 처벌을 내렸다면 좀비의 근원지라는 비극이 태동하진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학폭에 희생당하는 피해자가 재발하지 않게끔 효산고의 학폭위원회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그릇된 부성애로 인한 교내 대규모 좀비 바이러스 감염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기에 말이다.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원인이 학폭과 연관됐다는 설정은 ‘킹덤’을 연상할 수 있다. ‘킹덤’에서 국가가 굶주린 백성의 복지를 해결하지 못할 때 생사역이 발생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 학교는’ 또한 학교 폭력을 차단하거나 예방하지 못했을 때 어떤 방식의 부메랑으로 돌아와 학교는 물론이고 효산시 전체가 좀비의 공포에 떨어야 하는가를 평행라인처럼 보여준다.
백성과, 학생을 위한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때의 부작용이 좀비의 만연이라는 포스트 아포칼립스로 발화한단 점을 ‘킹덤’과 ‘지금 우리 학교는’ 두 드라마가 평행하는 궤적으로 제시한다.
학폭이 효산시에서 일어나는 대규모 좀비 아포칼립스의 동인으로 작용한다는 드라마 연출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학폭으로 피해를 입는 피해자와 이들 가족의 억울한 심경이 넷플릭스라는 국제적 OTT 좀비 드라마를 통해 세계에 민낯으로 알려지는 계기로도 작용한다.
바로 이 점은 ‘킹덤’ 및 ‘부산행’과도 결정적으로 차별화하는 지점이기도 한데, ‘킹덤’이나 ‘부산행’은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는 학폭과 같은 부작용을 세계에 알리진 않았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 학교는’은 학폭이라는 청소년 부조리 현상을 좀비물을 통해 전 세계 시청자에게 고발되는, 사회 고발적 창작이 전 세계를 통해 인지하도록 만드는 기능을 갖는다.
‘지금 우리 학교는’ 이후 내달에 김혜수가 주연하는 ‘소년심판’이 공개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지금 우리 학교는’이 제기하는 학폭 문제의 심각성을 ‘소년심판’이 연속으로 문제 삼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학폭 가해자에게 알몸 영상이 온라인으로 유출될 것을 우려한 여학생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교무실에서 학생들의 휴대폰을 박살내는 장면은, 좀비의 공포보다 학폭으로 인한 위해가 얼마나 거대하고 심각한가를 보여주는 방증이다. 흡사 N번방 사건을 연상토록 만드는 디지털 성폭력이, 좀비에게 물어뜯기는 공포보다 지독한 위해로 피해자에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드라마 중 군대 부조리에 대한 문제제기를 통해 사회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드라마는 ‘오징어 게임’과 ‘마이 네임’, ‘지옥’이 아닌 ‘D.P.’가 유일하다시피하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사회적으로 학폭의 심각성을 공론화시키기에 적절한 문제의식을 제공함으로, 개인적으로는 ‘지금 우리 학교는’이 ‘D.P.’처럼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반향을 일으켰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D.P.’를 통해 국방부가 환기 의식을 가진 것처럼 ‘지금 우리 학교는’을 통해 학폭의 심각한 위해성이 현 사회와 대중에게 보다 현실적으로 전달되고, ‘촉법소년’ 같은 의제를 심각하게 되돌아봄과 동시에, 보다 개선된 학폭위원회와 청소년법 개정을 통해 학폭 가해자에겐 현재보다 엄한 처벌을 가할 수 있는 법조계와 교육계의 총체적 각성과 환기, 반성의 계기가 마련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