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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심판’, D.P. 이후 가장 작품성 빼어난 드라마

지하철에서 노인의 목을 졸라도, 중학생들이 다른 중학생을 무인텔에 감금하고 성폭행을 가해도 이들 가해자는 14세 미만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촉법소년으로 분류돼 형사처벌을 면하게 됐다는 사회면 기사는 오늘날 촉법소년 문제의 심각성을 대두시키기에 충분했다.      


날로 심각해지는 촉법소년 문제의 완화를 위해선 촉법소년제가 적용되는 연령을 현 14세보다 낮춰야 한다는 징벌적 관점이나, 혹은 소년범이 범법 후 다시 범죄에 발을 들여놓는 기회를 방지하는 교화가 중요하다고 보는 관점이 현재 우리 사회가 맞닿은 촉법소년 문제의 대안책으로 논의되는데, 이번에 공개된 ‘소년심판’은 촉법소년 문제에 대한 다양한 성찰을 시청자에게 제기한다.      


좀비물이라는 장르의 결은 다르지만 넷플릭스는 이미 지난달부터 ‘지금 우리 학교는’을 통해 학교폭력의 폐해를 다뤄왔다. ‘지금 우리 학교는’ 속 이병찬(김병철 분)의 아들이 학교폭력에 시달리지 않았다면 과연 이병찬이 요나스 바이러스를 개발했을까.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 좀비가 태동한 원인은 학교폭력이다.     

‘지금 우리 학교는’을 위시해 ‘소년심판’까지 학교폭력이라는 한 가지 주제를 넷플릭스가 연이어 문제 삼았다는 점은, 작년 ‘오징어 게임’과 ‘마이 네임’ 등의 드라마가 연이은 주제가 아닌 개별적인 주제를 다뤄온 궤적에 비하면 이례적 행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지금 우리 학교는’이 가학적, 말초적 접근을 통해 학교폭력 문제를 간접적으로 묘사한 것에 비해 ‘소년심판’은 촉법소년 문제를 통해 본질적, 근원적으로 학교폭력 문제를 짚는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소년심판’이 기존 법정 드라마의 문법에만 충실하다고 보여지진 않는다. 기존의 법정 드라마적 서사 묘사 방식을 따랐다면 촉법소년 재판 한 건을 처리한 다음 다른 건을 처리하는 방식의 연이은 재판 방식 묘사에 치중할 텐데, ‘소년심판’은 이런 드라마적 문법을 애용하는 대신에 각 판사들이 촉법소년 범죄를 대하는 방식의 차이가 초래하는 ‘재미’와 둘 사이의 이질감을 통한 ‘긴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묘사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촉법소년을 혐오한다”는 심은석(김혜수 분) 판사에게만 감정이입하면 시청자 입장에선 드라마의 사이다 전개, 소년범으로 하여금 법의 무서움을 깨닫게 만드는 시원한 판결에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으나,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는 인과응보적 플롯이 기계적이고 반복적으로 이뤄진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심은석 판사와는 대비되는 입장에 선 인물인 차태주(김무열 분) 판사와 강원중(이성민 분) 판사를 통해 소년범의 교화가 왜 중요한가를 시청자에게 납득시킴으로 징벌과 교화적 관점의 양립적인 입장이 어떻게 드라마에서 대립적 갈등을 초래하지 않고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는가를 묘사한다는 점이 ‘소년심판’의 매력이다.   

  

‘소년심판’에서 매회 소년범들이 저지르는 사건이 소름끼치는 점은 작가의 창작의 산물이 아니라 한국에서 실제로 벌어진 사건을 극화했다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촉법소년 문제가 심각하다는 점이다.      


극중 처음 에피소드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은 5년 전 인천 동춘동에서 16세 미성년자가 초등학교 2학년생을 살해한 실제 사건과 오버랩한다. 해당 사건은 SBS ‘그것이 알고싶다’도 다룰 만큼 사회적 파장이 컸던 미성년자 살인 사건이었다.      


대중의 뇌리에서 잊혀져가는 충격적 미성년자 살인 사건을 기사 속 활자가 아닌 영상으로 재현함으로 시청자로 하여금 소년범 문제의 심각성을 환기하게 만들고 있다. 마지막 에피소드에선 미성년자라는 극중 설정을 제외하면 극중 사이버불링에서 N번방의 성적 유린을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다.      

‘소년심판’의 외양은 법정드라마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마트료시카’ 같은 드라마다. 몇몇 에피소드에선 외견상으로 보이는 소년범이 진범이 아니라 또 다른 숨겨진 범인을 찾아야 진실이 풀리는 추리 형식을 갖는다. 표면적으로 밝혀진 결과가 다가 아니라, 제3의 인물을 찾아야 온전한 진실이 밝혀지기에 말이다.     


‘소년심판’의 마트료시카적 구조는 해결이 된 듯한 촉법소년 사건의 숨겨진 범인을 찾는 게 다가 아니다. 판사 캐릭터를 묘사함에 있어서도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 양태 뒤에 숨겨진 동기라는, 마트료시카 속의 또 다른 마트료시카를 제시한다.     


“이래서 내가 혐오하는 거야, 갱생이 안돼서”라며 소년범을 향한 적개심을 적나라하게 표출하는 심은석이 왜 소년범을 이토록 증오하고, 반대로 차태주는 왜 소년범과의 교류를 중요시하고 갱생을 최우선으로 여기는가 하는 속사정을 드라마는 면밀하면서도 촘촘하게 묘사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숨겨진 범인을 찾거나 겉으로 드러난 행동 뒤에 숨겨진 동기를 찾는 마트료시카적 재미와 함께 ‘소년심판’은 ‘대물림’이라는 관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는 드라마다. 넷플릭스의 전작 ‘D.P.’는 상사의 괴롭힘이 막사 안에서 돌고 도는, 병영 폭력이 구조적으로 갖는 대물림 구조를 함의하고 있었다.     

‘소년심판’ 속 첫 번째 대물림은 폭력의 대물림이다. 극중 두 번째 에피소드가 발화하는 원인은 가정폭력이다. ‘소년심판’은 소년범이 비행을 저지르는 범죄라는 외면에만 천착하지 않고, 이들 소년범들이 왜 가정에 안착하지 못하고 범죄를 저지르는가에 대한 동기를 짚는데 그 중 가장 큰 원인인 가정폭력이라는 굴레라는 점을 드라마는 정확하게 짚고 있다.     


문제는 가정폭력이 대를 이어 내려온다는 대물림이다. 할아버지에게 구타를 당하며 자란 아들은 선대로부터 당한 가정학대를 아버지가 되고 나서부터는 자식 대에선 물려주지 말아야 정상적으로 가정이 작동한다.      


한데 선대로부터 학대당한 폭력을 자식에게까지 휘두름으로 결과적으로 자식은 가정이 안식처로 인식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폭력의 대물림’이 끊어져야 소년범의 갱생이 가능한데 뫼비우스의 띠처럼 가계(家系)에 돌고 도는 폭력의 대물림이 소년범의 갱생을 차단한단 점을 짚어낸다.     


드라마 속 대물림이란 구조는 이뿐만이 아니다. 차태주가 어두운 과거를 극복하고 사법고시에 합격해 갱생에 성공하기까지에는, 차태주를 신뢰하고 엇나가게 만들지 않게끔 만들어준 조력자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해당 조력자 덕분에 갱생에 성공할 수 있었던 차태주의 입장에선 수혜 받은 ‘선한 영향력’을 차태주 본인만 갖고 있는 게 아니라, 소년범들에게 적극적으로 베풀기를 바라고 진심어린 교류를 나누기를 바란다.     

 

이러한 차태주의 온정주의는 ‘선한 영향력’의 대물림 양태를 보여준다. ‘가정폭력의 대물림’이라는 어두운 대물림뿐만이 아니라, ‘선한 영향력’이라는 양가적 대물림이 드라마에서 양립하고 있다.     


“드라마는 작가 놀음”이란 말이 있다. 배우의 명연기 이전에, 드라마의 뼈대를 이루는 이야기의 완성도가 드라마의 성패를 가늠한다는 표현인데, 넷플릭스가 공개한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 콘텐츠 가운데서 ‘소년심판’은 작년 하반기 ‘D.P.’ 이후 가장 작품성이 빼어난 드라마다. 놀라운 점은 ‘소년심판’이 김민석 작가의 데뷔작이란 점이다. 김민석 작가의 차기 행보가 무척이나 기대된다.     


다만 ‘옥의 티’도 있다. 작가가 야기한 옥의 티가 아니라 편집 과정에서 놓친 옥의 티로, 7회 러닝타임 59분에서 한 간호사가 환자를 향해 “곽도식”이라고 발음한다. 해당 환자의 이름은 곽도‘식’이 아닌 곽도‘석’이다. 단역배우가 잘못된 대사를 발음한 분량을 재촬영했어야 하는데 이를 간과한 결과다.


미디어스 (사진: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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