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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트리 Dec 30. 2021

독립출판이 뭐라고

"후추프레스"의 서막

사진집이라니, 내 사진집이라니!!!


간단히 말하겠다. 빡셌다. 매분 매초 숨 막힐 지경이었다.

포토샵, 라이트룸과 인디자인 독학에 인쇄소와 펀딩에 이르기까지. 찾아보고 분석하고 학습하고 탐구하고 선택하기까지 마치 끝나지 않는 두더지 게임을 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누가 나를 골탕 먹이려고 뒤에서 계속 동전을 넣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게다가 이 두더지들은 성마르기 짝이 없어 동시에 머리를 디밀기 일쑤였다.


한마디로 긴박감은 있었다. 바로 보면 흥분이요, 뒤집으면 약오름인 상태로 머리가 터져 갈 즈음?

'포기'와 '결정'이란 놈들은 동전의 양면처럼 운명공동체란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앞으로도 나는 포기하는 법을 더 배워야겠구나, 삶이란 무언가를 포기하지 못해 괴로운 거란 진리를 깨닫게 됐다. 포기하지 못할수록 시간은 낭비되고 결정은 누구도 내 대신 내려주지 않는다는 인생의 기본 원리를 깨우쳤다. (이다지도 늦게?)


이를테면,

- 쓸데없는 완벽주의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 틀리거나 성에 안 찰지라도 어떤 점은 포기하고 어떤 것을 선택하자.

- 그리하기로 결심까지 하자.

- 딴생각이 치고 나오기 전에 재빨리 GO 하고 보자. 실행은 3초 컷.


그야말로 혼자만의 전투 한 복판이었다.

랙 걸린 인디자인 화면을 노려보는 거북목의 내 모습은 흡사 적진을 노려보는 장군이었다. 갑옷 대신 잠옷을 입고, 말안장 대신 의자에 한쪽 무릎을 올린 것만 조금 달랐지.

앞서 출정한 선배들이 공유해놓은 유튜브나 블로그의 데이터들을 우걱우걱 씹어먹었다. 그마저도 2/3 가량은 다 흘리면서.

결정장애가 닥칠 때마다 동료의 부재는 틀니 없이 고기 씹기랄까, 뜨거운 불자갈 위를 맨발로도 모자라 십자가까지 지고 걷는 격이랄까...

혼자만의 전투는 나름 다이내믹했고 배불렀고 소화불량이었는데 이상하게 허기가 졌다.


"나를 따르라~"라거나, "승리가 눈앞에 있다!"라고 소리쳐봐야 왁자지껄한 뒷전의 함성 따위 들려올 리 없는 고독한 영웅 서사. 바로 나의 독립출판물 탄생기다.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올여름, 승전보를 울린 장군이 왕에게 훈장을 받듯 나는 마포구청으로부터 출판사업자등록증을 하사 받았다. 한산대첩이라거나 남북전쟁처럼 모든 전쟁에는 이름이 붙으니까 하는 말인데, 나의 전쟁명은 '게으름이란 범죄와의 전쟁'으로 말할 수 있겠다.  

좀 더 근사하게 포장해서 말하자면 '10년 동안 와신상담하며 품어온 인생 프로젝트'.


그러나 박명수는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진짜 너무 늦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몇 수 앞을 내다보는 사람인가. 늦었다 늦었다 했더니 코로나가 이미 세상을 통제하고 있었다. 왜 늦었는고 하니, 나의 첫 출판물은 여행사진집이었기 때문이다.

그랬다. 코로나가 활어처럼 파닥거리는 여행자들의 발목을 꼼짝 못 하게 잡아둔 때인 것이다.

나는 세계적 관심이 급락한 전쟁에 출정할 참이었다. 그 와중에 TV에서는 한국인이 노는 꼴을 못 보는 예능프로그램 하나가 나오고 있었다.

'그래, 놀면 뭐하니? 이미 늦은 거 이판사판이지.'


위기를 거꾸로 하면 기위. 맞다, 아무 뜻도 없다!!!

그러나 학기 초에 남의 반에 들어가 버젓이 앉아 있는 애가 있기 마련이다.

그 아이 이름이 바로 기회라면?

- 코로나고 나발이고 칸쿤에서 코로나 병나발 불고 싶다.

- 코로나만 아니었어도 이탈리아 1유로짜리 집을 사서 재건축하고도 남았을 걸?

- 코로나 놀음에 내 캐리어 바퀴 썩는 줄 모른다는 속담도 나올 지경이야.

- 걸어서 세계 속으로만 돌려보고 있어.


누구나 가슴속에 코로나 블루 하나쯤은 품게 된 지난여름, 나는 과감해지기로 했다.

'떠나지 못하는 나와, 나 같은 누군가를 위하여' (머리)칼을 뽑아 들고.

그렇게 나는 편집 기술과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하고, 디지털 인쇄와 옵셋 인쇄의 차이를 마치 인쇄소를 차릴 것처럼 알아봤으며, 지문만 슬쩍 닿아도 지류를 감별해낼 것처럼 공부했다. 타고난 뇌의 전투력이 딸렸기에 학습 알고리즘에는 자주 오류가 생겼다. (그래서 이거 어떻게 해야 한다고?)

대형 출판사에서 책 한 권을 만들기 위해 작가, 기획자, 편집자, 교정 전문가, 디자이너, 마케터라는 다양한 전문가가 힘을 모은다는 것은 백번 지당한 일이고 말고.

그러나 나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1인 다역의 운명이었으니... 척척 활시위를 당기는 곤잘레스였다가 엑스칼리버를 뽑은 아서왕이어야 했고, 창을 들고 이리저리 설치는 여포여야 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남들 다 하는 펀딩도 해보자."


그렇게 겁 없이 전진한 펀딩의 영역은 또 다른 전쟁이었다. 전쟁 속의 전쟁 자진출두.

높은 진입장벽을 넘어 홍보 중인 수많은 펀딩 전문가(내 눈에 그렇게 보였고 아직도 그렇게 생각되는)들의 작품을 곁눈질하며 나 자신은 하루에도 열 번씩 좌절했다. 거듭된 수정과 채팅상담의 늪.

다행히 지인들의 훈훈한 후원으로 펀딩이 성공하고 본인쇄를 남겨둔 상황에서 나는 다시 한번 앞서 말한 두더지 망치, 칼, 창, 활을 다 뽑아 들고 생쇼를 하는데...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그 내적 난리부르스가 계속된 이유는 모두 제작비 때문이었다. 생초보인 주제에 눈은 높고 까다로워서 적당히 타협할 줄 몰랐다.

퀄리티를 따지자니 내 사진에 대한 심각한 자기 객관화에 빠져들었고, 적당한 종이와 제본을 고르자니 평생토록 후회할 게 뻔했다. 한 번을 하더라도 성에 차게 하자는 신념. 실수가 있더라도 하는 순간엔 최선을 다 하자는 신념을 지키느라 이마에 밭고랑이 두어 개 파였다.

그래서 결국 중요한 건, 전쟁에서 승리했냐고?  


전리품을 직접 보시겠습니다. 두둥!




(전쟁 후기)

내가 사랑했던 순간, 내가 사랑했던 만남.

가장 빛나던 시기에 운명처럼 겹친 존재들의 지도를 만들고 싶었다.

그리하여 나는 HUCHU라는 독립출판사 대표도 되었고, 독립출판 사진집도 출간했다.

이렇게 굵은 점 하나를 찍었으니, 또 다른 점을 찍고 찍어서 계속 연결해야지.

먼 하늘 비행기를 본 날에는 의미심장하게 사진집을 펼친다. 그리고 다음 출판 기획 아이디어로 지저분해진 노션을 정리한다. (본업은 제쳐 둘 셈인가...)


(추가)

사진집 구매 가능한 독립서점 스토어

- 커넥티드북스토어(클릭)

- 스페인책방(클릭)

- 사진책방고래(클릭)

- 제주도 금능 책방 <아베끄>

- 도봉구 창동 <도도봉봉>

- 마포구 망원동 <스캐터북스>


이제 고독한 전쟁을 끝냈으니, 함성이 울려야 할 텐데... 그것은 어쩌다가 나를 발견하실 여러분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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