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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트리 Jan 25. 2023

Beliz는 I belieze you (1)

너를 여기는 마음


펭귄처럼 걷지 말고 천천히 걸어.

여기선 그렇게 해도 돼.


나를 잰걸음의 펭귄보듯 하는 너는 눈 앞의 표지판을 가리킨다. 거기에는 ‘GO SLOW’란 글씨가 굵게 써있다. 나는 걷는 속도를 제어한다. 아무리 신경을 써도 이 섬에서 마저 나의 속도는 꽤나 조급하다. 시간에 쫓겨 살던 버릇때문이다. 빨리 걷고, 빨리 먹고, 빨리 하는 모든 행위들이 여기서는 옳지 않은 것으로 대우 받는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고 하루 종일 강조하는 곳.


걸음이 느린 너를 따라 애써 천천히 걷다보니 해변이 나타난다. 오후의 바닷물이 익어 뜨거워질 때쯤, 어딘가에서 해적선이 나타난다. 선상에서 뿜어져 나온 라스타파리안 음악이 수면 위로 떨어진다. 배에는 술과 과일들이 소담하게 놓여 있다. 이 해적선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일종의 동네 유람선으로 정해진 배삯도, 기합을 바짝 주는 선장도 없다. 단지 누군가 승선해 있을 뿐이다. 신기루처럼 나타나서 사람을 훔쳐 사라져 버리는 것만이 유일하게 정해진 일이다. 배는 어느새 만선이 되었다. 이 배의 종착지는 카리브해 어딘가의 낭만. 낭만행 크루즈에 타지 못한 너와 나는 웃는다. 배는 내일 또 올테니까. 역시 서두를 필요 없이 천천히 걸어와도 되겠지.


시간을 훔치는 해적들이 외쳤다.

고 슬로우!




나와 너 사이를 잇는 서술어는

이곳만큼 느리다, 뜨겁다, 아름답다, 뒤죽박죽이다.


함께 걷는 너는 내게 하나의 나라가 된다.

이것이 내가 너를 여기는 마음.


                    

<She is a dot> Caye Caulker, Beliz ©huc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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