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도착
대지의 치맛자락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끝을 알 수 없는 신성이 눈앞에 그득하다.
그 치마폭에 감싸인 채, 하늘 한 번, 땅 한 번, 그리고 나 한 번을 본다.
거대하고 광활하여 걸어도 걸어도 다 걸을 수 없는 산을 만났다. 아니 신을 만났다.
나를 오래전부터 기다려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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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의 북부에 도착하자, 마른 모래바람이 얼굴을 훑고 지나갔습니다. 그 바람을 몇 차례 더 등지거나 맞서자 우마우아까라는 마을이 나타났습니다. 거기에서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부터 살았다는 아주 오래된 집에 손님을 받는 여인을 만났어요. 나무 창틀은 아름답게 갈라져 있고, 거실에 놓인 가구들은 단정하지만 시간의 때가 묻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새 물건은 여인의 딸이 타는 장난감 목마뿐인 듯했어요. 집에는 나와 한 명의 여자 손님 밖에 없어 아주 고요했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틈새로 들어온 모래먼지 같이 쌓인 시간들이.
욕실조차 주인의 조상들이 썼던 형태 그대로였어요. 높은 천장, 장식 타일, 장인이 만들었을 손잡이들. 이야기가 많이 숨어 있는 공간이었어요. 누군가는 아침에 부은 얼굴을 확인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기분 좋은 반신욕을 했을 것이며, 또 누군가는 배가 아파 한동안 머문 곳이었겠죠. 공간을 채우던 비누향도, 욕조를 채우던 거품도 수 천 번 바뀌었겠죠.
물을 틀자 뜨거운 수증기가 거울에 끼고 시야가 모두 뿌옇게 변했습니다. 그러자 좁은 욕실이 꽉 찬 듯 느껴졌어요. 그 누군가들이 욕실 안에서 자기가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서둘러 머리를 감았습니다. 아쉽지만 사진은 찍지 않았습니다. 나 아닌 다른 존재들의 알몸까지 찍힐까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