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한 번째.
"야 강기태 네가 사랑하던 나는 이제 없다"
"오빠, 오빠는 처음부터 저에게 점이었어요. 첨부터 저에게 배려를 많이 하신 거 아니었어요?"
토요일마다 작은 마켓이 열리던, 홍대 어린이 놀이터 오후 3시 52분. 북적이는 인파 옆 벤치에서 그녀는 페트병에 든 맥주와 소주를 섞어 500cc 잔에 부어 마셨다. 화를 내다가, 웃다가, 알 수 없는 말을 횡설수설 거리며 목이 터져라 외치곤 했다. 긴 머리를 뒤쪽으로 묶고 얼굴 전체를 다 가릴 만큼 큰 분홍색 뿔테 안경, 왼쪽 어깨엔 네모난 에메랄드색 가방. 목줄을 길게 늘어뜨린 강아지를 데리고 있는 것 것을 보면 부근에 사는 주민인가 보다. 얇은 호피 재질의 상의, 무릎 아래까지 올라오는 카키색 가죽부츠. 그녀를 관찰하다가 눈이 마주치자 날 보며 'sorry'하며 활짝 웃어 보였다. 멀리 서성이던 노숙자가 그녀에게 다가가 '똑바로 살아'하고 욕과 고함을 치고는 옆에 잠깐 앉았다가 돌아갔다. 잔에 채워진 술이 조금씩 줄어들 때마다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외침은 더욱 알아듣기가 힘들다.
누구나 한 가지 이상의 아픔을 지니고 살아간다. 그녀의 아픔이 어떤 것인지, 그 외침에서 조금이나마 엿듣고 싶었지만 횡설수설함에 알아챌 수가 없었다. 이것이 자신의 아픔을 달래는 나름의 방법이라면, 그녀는 지금 자신을 위로하고 있는 중인가 보다.
하루 한 장의 드로잉, 하나의 단상.
1장 1단. 스무 번째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