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세 번째.
잠에서 덜 깬 모습으로 공항 밖으로 나섰다. 갑작스러운 햇빛의 강렬함과 눈부심에 눈이 잠깐 아려왔다. 이마와 배낭을 멘 등에서는 땀이 흘러내렸고 잠을 깰 요량으로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곤 깊이 들이마셨다. 그림자의 선명함, 짙은 파란색의 하늘. 내 첫 번째 베트남 그리고 하노이.
공항 입구는 비행기에서 내려 택시를 타려는 사람들로 잠깐 북적이다 이내 조용해졌다. 미처 손님을 맞이하지 못한 택시기사들이 내게 다가와 무어라 흥정을 하다 아무런 대답이 없자 인상을 쓰며 되돌아 갔다.
비행기를 타던 당일 날 아침 급히 메모해 두었던 버스노선이 적힌 쪽지를 꺼내 들고 정류장을 찾아 나섰지만, 그 흔한 정류장 팻말조차 잘 보이지 않았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들려오던 반가운 한국말.
"한국사람이죠?"
그녀는 하노이 노이바이 공항에서 일한다. 한국에서 몇 년간 일을 한 적이 있다며, 한국사람은 단번에 알아챌 수 있다고 했다. 서로의 이름을 묻고 하노이엔 왜 왔냐며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었다. 딱히 숙소를 정하지 않았다는 말에 그녀는 친구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를 소개해주며 자신의 이름을 말하면 싸게 해 줄 거란다. 그 호의에 보답할까 나중에 그녀가 알려준 숙소를 찾아다녔지만 너무 많은 숙소들로 결국 찾지를 못했다.
여행자 거리까지는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했고, 버스에 올라타자 사람들의 시선이 한 몸에 느껴졌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조리 스캔당하는 기분. 좌석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들판과 논밭을 지나고, 자욱한 먼지 속을 빠르게 뚫고 달렸다. 지금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 설사 여행자 거리가 아닌 그 어떤 장소에 내리더라도 어디든 괜찮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목적지는 하노이. 가야 할 곳도 애써 찾아 나서야 할 곳도 없었으니까. 심지어 숙소 예약도 없이 '여행자'라는 그 단어에 끌려 하노이의 여행자 거리로 가고 있을 뿐이었다. 50세는 족히 넘어 보이던, 배가 제법 나온 차장은 옆 안전바에 기대어 힐끔힐끔 나를 쳐다보다 한참 후에 말을 건넸다.
"어디서 왔어?"
베트남 억양이 가득 섞인 영어 덕분에 그의 물음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입고 있던 찢어진 청바지가 생소해 보였었는지, 슬금슬금 눈치를 보던 그는 검지를 들고선 찢어진 부분을 조심스레 만지작 거리며 웃었다. 그러다 버스를 갈아타려면 여기서 내려야 한다는 차장의 말에 허겁지겁 배낭을 들고 내린 정류장. 내린 비가 아직 덜 말랐는지 한발 내딛을 때마다 발이 진흙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 그럼에도 햇빛은 여전히 뜨거웠고, 피할만한 작은 그늘 조차 없었다. 정류장 팻말이라도 있으면 마음이라도 편했을 텐데, '아무렴 어때'라는 생각으로 그냥 길을 걷기 시작했다.
몇 걸음이나 걸었을까. 출발하던 버스가 멈춰 서더니 차장을 비롯한 몇 사람이 창문을 열고 나를 향해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외쳤다. 손으로 서있는 위치를 가리키며 움직이지 말라는 표현. 바디랭귀지는 만국 공용어라 했던가. 그 다양한 손짓과 표정은 ‘어이! 거기로 가면 안 돼! 네가 타야 할 버스는 여기서 기다려야 해!’라고 정확하게 전달받았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 고개를 숙여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내가 베트남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들은 말은 이 곳은 참으로 고약한 곳이었다. 불친절과 악명 높은 바가지요금에 다들 두 번 다시는 베트남에 가고 싶지 않다고 했었지. 내가 운이 좋았던 것인지 처음 공항에 도착해서 버스를 갈아탈 때까지 받은 소박한 호의들. 차장과 나누던 대화를 엿들었는지 무뚝뚝해 보이던 몇몇 승객들이 창문을 열고는 그제야 호들갑스럽게 손을 흔들 때엔 사실 가슴이 제법 뭉클했다.
인터넷과 여행책자를 통해서 보고 느꼈던 베트남의 모습이 도착하자마자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와장창 하고 깨져버리던 순간. 조금 부끄러웠다. 한 번도 보고, 접해보기도 전에 내가 가진 편견이 저 순수하고 소박한 사람들을 이유 없이 매도한 것 같아서.
그래서 미안했다.
2007년 첫 번째 하노이 여행.
하루 한 장의 드로잉, 하나의 단상.
1장 1단. 스물세 번째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