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ooYoo for You Oct 26. 2015

Behind the Scenes

통번역 현장, 그 뒷 이야기

고객사 관계자의 무례한 태도, 어떻게 대응할까?


통역사로 일하다보면 여러가지 곤란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그 중 유독, 고객사 쪽 관계자가 안하무인 격 태도로 무례한 요구를 할 때에는 당혹스럽기 그지 없다. 업계 동료들 중에도 이런 고충을 토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즉, 어쩌다 한 번 우연히 일어나는 일도 아니고, 나만 겪는 일도 아니라는 것.

통역사들 뿐만 아니라, 전문인으로 활동하는 분들 역시, 형태는 다르지만 본질은 비슷한 곤란함을 겪게 된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나름의 원칙을 가지고 대처할 수 있을까?

 



통역 주제에!


올해 초, 한 회사로부터 급하게 통역을 의뢰 받은 적이 있다.

통역에 들어가기 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한데 촉박해도 너무 촉박한 일정이어서 고사할까 했는데, '꼭 좀 부탁 드린다'는 관계자의 설득에 결국 승낙했다. 마감이 급하지 않은 다른 업무를 뒤로 미루고, 짧은 시간 최대한 효율적으로 자료를 조사하며 준비했다.


당일 아침 약속 시간보다  시간 먼저 도착해서 현장 안내 담당자(처음 내게 통역을 의뢰한 분과는 다른 분이다)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대기실 쪽 위치를 알려주며 들어오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즈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내 전화를 받은 담당자와 함께 걸어나오는 한 여자분이 나를 보자마자 "혹시 통역?" 이라고 확인하더니 그렇다는 내 대답과 맞물리게 소리를 지르는 것이 아닌가?


 "아니, 통역이 이렇게 늦게 오면 어떻게 해요? 우리 회장님은  시간 전부터 대기하고 계시는데! 나 참!"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화가 끓어올랐으나 크게 심호흡하며 감정을 눌렀다.

먼 곳에서 귀한 발걸음을 하신 연사를 극진히 모시고자 하는 마음은 가상하나, 국제 행사에서 통역사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면, 더구나 주최 일원의 이 같은 태도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서로 통성명도 하기 전에, 그것도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로비에서 무례한 태도를 보이는 이 사람이 누구인지 알 길이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좀 해주시죠?'하는 내 눈빛을 현장 안내자가 읽었겠지만, 요령있게 수습하기에는 그녀가 너무 어려보였다.  

 

잠시 후, 대기실에서 그녀는 스스로를 '홍보 담당'이라 밝히며 '원래 하기로 한 통역사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펑크를 내는 바람에 대타를 구한 것'이라는 모욕적 언사도 서슴지 않았다.

이 분의 무례함과 경우없는 태도는 계속 이어졌다.

무대에 오르기 전 뒷편에서 대기하고 있자니, 누가 내 어깨를 툭 친다.

돌아보니 아까 그 홍보 담당자.


 "우리 회장님께서 말씀하실 때 목 마르실 테니까 물병 좀 연단에 가져다 놓으세요."




Case Study   


자, 처음부터 되짚어 보자.

먼저 부당한 대우를 받을 빌미를 제공했는가부터 살펴볼 일이다.


나는 처음 약속한 시간보다 한 시간 먼저 현장에 도착했다.

주최측에 알리지는 않았으나, 사실 나는 행사 당일 아침 교통 체증으로 혹시라도 현장에 늦게 도착할까봐 하루 전날 이미 근처 숙소를 잡아 투숙했더랬다. 나는 사전에 합의된 부분을 충실히 이행했으니, 이제 부당한 대우를 한 주최측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았다.    


여기서 문제.

이런 상황에서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1. 그 자리에서 홍보담당자에게 부당함을 어필한다.

    2. 찜찜하지만 고객이니까 참고 지나가려 노력한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1번도, 2번도 아니다.

일단 현장에서 통역 퍼포먼스를 저해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잡음에 신경쓰지 않았다. 오직 내가 맡은 일을 잘 해낼 수 있도록 애썼다.

집중이 흐트러져서 통역의 질이 떨어지면 변명할 여지 없이 게임은 끝난 것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는 일단 결과로 승부해야 한다. 결과가 좋지 않으면 과정 상 생긴 문제에 대한 불만을 제기할 명분마저 사라진다.


다행히 행사는 무사히 잘 끝났다.

연사조차 내게 와서 탁월한 통역이었다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동시에 처음에 섭외를 부탁했던 현장 책임자 역시 행사 중간 짬을 내서 여러가지로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잘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전화를 걸어왔다.


내가 정중한 항의 이메일을 쓴 것은 그 다음날이다. 행사의 취지와 통역사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그 날 홍보 담당자의 대처는 있을 수 없는 태도였다는 논지였다. 일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마찰이 생길 수 있는데 그 때마다 부정적인 감정을 즉각적으로, 여과 없이 드러내게 되면 반드시 후회하게 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감정을 추스리는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얼마 후 담당자는 '정말 뭐라 드릴 말씀이 없을 정도로 죄송하며, 회사 차원에서 대처하겠다'는 답장을 보내왔다. 아울러 '그 홍보 담당자는 자사의 사람이 아니며, 협력사 직원인데 이미 도를 넘은 행동을 여러 곳에서 했기 때문에 더 이상 좌시하지 않으려 한다'는 설명까지 보내왔다.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사히 행사를 잘 마쳐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무엇이든 사람이 하는 일인 이상, 통역 자체의 질도 중요하지만, 고객 관리 및 상황 대처가 더 중요할 때가 많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The less you respond to negative people the more peaceful your life will become.   - Zig Ziglar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