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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oYoo for You Dec 24. 2015

산타 클로스는 있다

Dear Santa, I've been a good girl.

Tom boy


말괄량이라는 뜻으로, 전통적으로 남자들이 하는 활동을 즐기는 소녀를 의미한다.


예상했을지 모르겠지만, 그렇다.

박혜림 어린이는 굉장한 tom boy였다.


참해 보이는 인상에 속지 마라.  나, '불여우'가 별명이었던 녀자다.


요새 같이 스마트폰 카메라가 있었던 시절이 아니라 그 당시 나의 활약상(?)을 사진으로 증명할 수 없어 아쉬울 뿐이다.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지만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지나가는 사람에게 분무기로 물 뿌리기, 남의 집 연탄 깨기, 담 타고 다니며 술래잡기 놀이하기, 2층 옥상에서 큰 우산 쓰고 뛰어내리기 등이다.


뭐, 꼭 악동짓만 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약자를 괴롭히는 악의 무리를 물리치는 역할도 했기 때문이다.

머리를 잡아당기거나 아이스케끼 (여자 아이들의 치마를 들춘 다음 도망가는 행위인데,  이때 '아이스케끼!'라고 외친다. 그 유래는 정확히 알 수 없다)를 하는 등, 여자 아이들을 괴롭히고 도망가는 남자 놈(!)들을 끝까지 쫓아가서 무릎을 발로 차고 꼬집는 등 함무라비 식의 응징을 하는 정의의 사도이기도 했다.  



산타클로스는 없어.
크리스마스 선물은 엄마 아빠가 주는 거야.


산타 클로스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내가 3학년 때의 일이다.

당시 학교에서 산타 클로스가 실존하는지, 아닌지에 대해 아이들과 한참 논쟁이 붙었더랬다.

박혜림 어린이는 '산타  실재론'을 열렬히 옹호하는 순수파였고, 그런 와중에 몇 해 전 선물을 놓고 가는 산타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노라는 목격자까지 등장했다.


내 주장에 쐐기를 박고자 방과 후 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엄마에게 따지듯 물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거듭 질문하는 내 집요함에 지친 어머니께서 '사실대로 말해줘도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느냐'고 확인하실 때 그만뒀어야 했다.


잠시 망설인 다음 '네'라고 대답하자, '산타 클로스는 없다'는  폭탄선언을 하셨던 것이다.


누군가 성급한 진실로 섣불리 행복에 찬물을 끼얹을 필요는 없다고 했던가.

사실은 알았으나  마음속 깊은 곳이 헛헛해지는 느낌은 아는 사람만 안다. 그 이후  크리스마스이브 새벽에 잠을 설치고 떠지지 않는 눈을 뜨며 손을 뻗어 머리맡부터 확인해보는 낭만이 사라졌으니 말이다.



선물 바꿔치기

기차 모양의 연필깎이 통은 당시 머스트해브 아이템! 필기를 연필로 했으니 연필깎이는 필수용품이었다. 연필을 뾰족하게 깎아두는 것은 다음 날 '학교갈 준비'에 속했다.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느 해  크리스마스이브에 있었던 일이다.


여느 때처럼 나와 내 동생은 설레는 마음 때문에 새벽녘까지 잠 못 들고 있었더랬다. 그런 우리는 '잠을 안 자면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오지 않는다'는 엄마의 말씀에 잠자리에 누워 애써 잠을 청했다.


그렇게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산타가 왔다 가셨으려나?' 하는 생각에 화들짝 잠이 깼다. 그리고 거의 반사적으로 머리 맡을 확인했더니 세상에, 선물이 금색 포장지에 싸여 있는 것이 아닌가?!




고개를 돌려 내 동생을 바라보니 아직 한잠 들어있다.

그런데 내 동생 선물의 크기가 내 선물의 두 배는 되어 보였다.

'더 큰 선물 = 더 좋은 선물'이라는 공식이 머리에 박혀 있었기 때문일까, 순간 물욕이 발동한 박혜림 어린이는 깜찍하게도 머리 위 선물을 바꿔놓고 다시 잠을 청하기로 했다.  


약 3시간이 더 흘러 아침 8시가 되었다.

동생 녀석이 먼저 일어나 선물을 뜯으며 부산을 떠는 바람에 눈을 떴다.

 '역시, 내가 바꿔놓은 선물인 줄 모르고 함박웃음 지으며 선물을 뜯고 있군.'

 녀석을 향해 회심의 미소를 지은 뒤, 나도 천천히 큰 선물 포장을 뜯었다.  


멜로디언.

더 큰 박스에서 나온 선물은 멜로디언이었다. 일 년 내내 동생은 멜로디언을 사 달라고 엄마에게 졸라댔었다.

내 선물을 보며 '어? 멜로디언 내가 가지고 싶었던 건데...'하는 녀석 때문에 나는 살짝 당황했고, 선물 포장지를 뜯는 소리에 엄마가 방으로 들어오셨다.


그리고 본인의 의도하신 것과 반대로 안고 있는 선물을 보며 이러저러한, 지금 생각해보면 별로 논리적이지 않은 정황 설명을 하신 뒤, 선물  교통정리를 해주셨다. 설명인즉슨, 어젯밤 산타 할아버지가 오셔서 혜림이한테 공부 열심히 하라는 의미에서 연필깎이를 주라 하셨다는 것.

그렇게 내 선물 바꿔치기는 아쉽게도 미수에 그쳤고, 나는 내 기차 연필깎이를 초등학교 졸업을 한 뒤에도 한참 동안이나 썼다.



I believe in Santa Claus.


어른이 되고 나서 매년  크리스마스이브가 되면, 부모님 덕에 누릴 수 있었던 크리스마스에 얽힌 작은 추억을 떠올린다.  크리스마스이브를 기다렸던 건, 좋은 일을 하면 보상을 받게 된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그래서 타고난 성질머리를 부리고 싶어도 꼭 있을 '연말 보상' 때문에 마음을 가다듬고 행동을 정갈히 하려 애썼던 적이 많았다.


모두가 어려운 요즘, 지금 열심히 살면 언젠가 보상이 꼭 돌아온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미래만 바라보며 현재를 희생하라는 뜻이 아니라, 미래의 행복을 생각하며 현재에 더 몰두하자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아직 산타 할아버지가 있다고 굳게 믿는다.


https://www.youtube.com/watch?v=bI1LRcx2c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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