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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보경 Jun 07. 2023

영화 후기 - 클로즈

루카스 돈트, 2023

<클로즈> 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영화가 끝난 뒤 눈물이 멈추지를 않았다. 세상이 뭉개지고 멍든 것 같았다.


두 소년 레오와 레미는 어렸을 적부터 단짝이었다. 둘은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적군들로부터 도망치는 놀이를 하기도 한다. 레오는 레미의 초상화를 그려준다. 레오는 레미가 클라리넷 연주를 하는 모습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을 난생 처음 본다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레미가 생각이 너무 많아 잠 못 들 때 레오는 아기 오리와 도마뱀 이야기를 들려준다.


레오와 레미는 같은 중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같은 반이 된 레오와 레미는 교실에서도 둘만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숨기지 않는다. 친구들은 그런 레오와 레미를 호모라고 놀린다. 점점 동급생 친구들의 눈치를 보게 된 레오는 레미를 밀어내기 시작한다. 레미는 그런 레오의 모습에 상처를 받는다.


그 무렵, 레오는 같은 반 친구를 따라 '남자들의 스포츠'인 아이스 하키를 시작한다. 레미는 레오가 아이스하키 하는 모습을 구경 가기도 하고 레오와 함께 아이스하키를 배우고 싶어하지만 자신이 아이스하키를 배우지 않길 바라는 레오의 마음을 눈치챈다. 다음 날, 레오는 늘 함께 등교하던 길에서 레미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학교에 가 버린다. 레미는 그런 레오에게 찾아가 울면서 화를 내고 둘은 몸싸움을 하게 된다. 레오와 레미는 점점 더 멀어진다.


그러던 어느 날, 학급에서 바닷가로 단체 여행을 떠난다. 그런데 레미는 참석하지 않는다. 레오는 레미가 오지 않은 것이 신경 쓰이지만 이내 잊어버리고 친구들과 즐겁게 논다. 그런데 갑자기 버스는 일정보다 일찍 학교로 돌아가게 된다. 아이들은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끼고 웅성거린다. 레오는 이미 직감하고 있었을 것이다. 레미와 관련된 일이라는 것을. 마지막까지 버스에서 내리지 못하는 레오를 데리러 레오의 엄마가 등장한다. "레미가 이제 여기에 없어". 레오는 버스를 뛰쳐 나간다. 자전거를 타고 미친듯이 달린다. 레미의 집을 향해 달려간다. 창문을 통해 레미의 방문이 뜯겨져 나간 것을 본다.


고통스러움에 몸부림 칠만한데도 레오는 자신의 감정을 내보이려 하지 않는다. 아이스하키에 병적으로 몰두하고, 단체 상담 시간에 할 이야기가 없다고 대답하고, 엄마 아빠의 질문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종종 친구들과 웃고 떠든다. 부모님을 도와 하는 꽃 재배 일에 예전과 다르게 에너지와 열정을 쏟는다. 그러나 그도 잠시일 뿐, 레오의 얼굴에 드리운 그늘은 점점 더 어두워진다.  


그 무렵 레미의 어머니 소피가 등장한다. 그녀는 레미의 자살과 관련된 실마리를 찾으러 학교를 방문한 듯하다. 소피는 아이스 하키장에 레오를 찾으러 온다. 예전부터 레오와 레미는 소피와 친했다. 영화 초반, 잔디밭에 소피와 레오와 레미가 함께 누워서 오손도손 이야기하던 장면이 나온다. 소피는 레오가 자신의 친아들이 아님에도 '가슴으로 낳은 자식' 이라고 할 정도로 아꼈었다. 레오도 소피를 좋아하고 따랐다. 그랬던 레오와 소피 사이에 어색한 기류가 흐른다. 소피는 레오에게 "둘이 무슨 얘기 했니?" 라고 묻는다. 레오의 눈이 흔들린다. 레오는 소피로부터 도망친다.


그 뒤 레오는 레미가 공연을 하곤 했던 오케스트라 연주회에 찾아가 객석에 앉아 있던 소피를 본다. 얼굴 표정과 눈과 그 눈 속에 담겨있는 것을 본다.  어느 날엔 소피를 만나기 위해 레미의 집을 찾아가지만 애꿎은 물만 꿀떡꿀떡 마시고 레미의 방을 돌아보고는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집으로 걸어온다. 그날 밤 레오는 침대에 오줌을 싼다. 어느 날 저녁 두 가족이 모여 함께하는 식사 시간에 레미의 아빠가 울음을 터뜨리는 광경을, 소피가 남편의 그 모습을 보고 집 밖으로 나가 어둠 속 풀숲으로 걸어가는 뒷모습을 말없이 바라본다.


레미의 자살이 자신 때문이라는 죄책감에 시달리던 레오는 아이스하키를 하다가 왼팔이 부러진다. 깁스를 하고 있던 도중 레오는 갑자기 눈물을 터뜨린다. 레오는 레미의 자살이 자신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소피가 일하는 조산원에 찾아간다. 소피는 차로 레오를 집으로 데려다 주기로 한다. 레오는 소피에게 고백한다. "저 때문이예요. 제가 걔를 밀어냈어요". 소피는 천천히 차를 멈춘다. 소피의 몸이 가늘게 떨리고 그 눈으로 레오를 바라보며 말한다. "내려".


레오는 차를 뛰쳐나와 숲 속을 헤치며 걸어간다. 뒤에서 소피가 레오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소피가 자신을 헤치러 오는 것이라고 생각한 레오는 도망친다. 카메라는 레오를 찾고 있는 소피를 비춘다. 그 때 소피의 등 뒤에서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소피가 뒤를 돌자 거기에 바들바들 떨고 있는 레오가 서 있다. 손에는 기다란 나뭇가지를 단검처럼 들고서.






한동안 레오의 그 모습이 계속 잔상처럼 따라 다녔다. 너는 그 순간에도 살아 보겠다고 그러고 있구나. 그 순간에서조차 레미의 아픔도, 소피의 아픔도, 그 누구의 아픔도 보이지 않는 비쩍 꼴은 어린애구나. 자신 때문에 자식을 잃은 엄마로부터 자기 목숨 하나 건사하겠다고 발버둥치는, 인간의 모습을 한 짐승이구나. 그런 레오의 모습에 구역질이 났다. 그 이후의 장면들에서 나는 너무나 무력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두 팔과 두 다리가 모두 없어진 채로 깊은 바다에 가라앉아 있는 것만 같았다.


레오는 레미를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소피를 좋아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레미가 자살한 것이 진심으로 마음이 아팠을까? 형에게 "많이 아팠을까?" "레미가 보고 싶어" 라고 말했던 마음은 어디까지가 기만이고 어디까지가 정직한걸까?


어느 시점 이후로 나의 가슴에 가장 깊숙히 새겨진 말이 있다. 약한 사람은 아무도 사랑할 수 없다. 약한 사람은 그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치명적인 상처를 준다. 레오는 어린 아이이다. 어린 아이는 약하다. 그래서 반 친구들이 호모라고 놀렸을 때 레미를 밀어냈던 것이다. 레오는 레미가 자살을 했을 때에도 레미의 죽음을 슬퍼하기보다는 그것을 자신이 직접적으로 초래했다는 사실이 들킬까 봐 두려워 하느라 상처 받은 소피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숲에서 소피가 레오를 쫓아 갔을 때조차도 자신을 지키려 한다. 레미는 자기 자신만을 사랑했다.


만약 레오가 강한 사람이었더라면 어땠을까? 반 친구들이 놀렸을 때 레미를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레미가 자살을 한 상황이었다면 어땠을까? 레오는 호모라고 놀렸던 반 친구에게 당당히 사과를 요구하지 못한다. 자신의 잘못이 더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레오가 강한 사람이었더라면, 남들이 너는 그런 이야기 할 자격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 아이에게 사과하라고 따지지 않았을까? 만약 레오가 강한 사람이었다면 소피를 어떻게 대했을까? 죄책감에 못 이겨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그게 어떤 방향이든 어떤 방법이 소피에게 상처를 덜 주는 방법인지 고민하지 않았을까?



마음이 데인 것처럼 느껴졌던 한 장면이 있었다.

그래서 자꾸만 놓고 싶었다.

그런데 이제 알겠다.

그 장면을 품고서 다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영화의 마지막, 레오가 잠시 뒤를 돌아본다.

이내 다시 몸을 돌려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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