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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보경 Jul 02. 2024

지켜봐줘

오랫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는 쓸 수가 없었다. 글은 곧 삶이기 때문에. 나는 삶을 제대로 살아오고 있지 못했다. 그래서 좋은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스피노자에게 욕망이란 노력이다. 노력은 곧 내가 밟아온 무수한 발자취들이다. 긴 세월동안 나는 무슨 노력을 하며 살아오고 있었을까. 그저 또 다시 나로 그득그득한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아무 곳으로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나 때문에 꺾여야 했던 마음.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 별안간 상처 받아야 했던 마음. 죽은 마음들. 


그 무거움에 짓눌려 도망을 쳤다. 때로는 사람에게로. 때로는 일로. 때로는 몸으로. 때로는 자연으로. 걷고 뛰고 달리고 헤엄쳐간 끝에는 다시 과거의 내가 있었다. 다잡고 다잡으려 할수록 돌아오는 길은 짧아져만 갔다. 어느새 길이 없어졌다. 그리고 해가 들지 않는 심해의 풍경이 끝없이 펼쳐졌다. 내 몸을 조이는 수압과 고갈되어 가는 산소는 순수하고 악의가 없었다. 그랬기에 나의 저항은 곧 나를 향하는 칼날이 되었다. 


나를 죽일수는 없었다. 그러기에 나는 너무나 비겁한 사람이기 때문에. 나를 향하던 칼날은 나를 빗맞고 다른 표적들을 겨누었다. 칼날이 나를 스치고 여러 표적들을 거친 덕분에 흘려야 했던 피는 적절히 배분되었다. 

나는 덕분에 심해에서 꿈결같은 날들을 보냈다.


나는 알고 있는 것들을 알고 있지 못하다. 

나는 해야 하는 것들을 하고 있지 못하다. 

살고 싶다고 하지만 살고 있지 못하다.

죽고 싶다고 하지만 죽고 있지 못하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데 혼자이고 싶지 않아서 혼자가 되려고 한다. 

나는 어리석고 또 어리석었다.


나는 심해에서 벗어날 것이다. 꿈에서 깨어나 수면으로 솟구칠 것이다.

혼자가 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나 대신 피 흘리는 이의 상처를 두 눈 똑똑히 볼 것이다.

칼날로 나를 겨누지도 않을 것이다. 대신 독살스럽고 구차하더라도 칼날을 모조리 씹어 삼킬 것이다. 


무거움에 질 것 같아도 평생 두 다리와 두 팔로 지탱해 낼 수 있다는 걸 증명해낼게.

나 자신에게 속고 속아도, 이 글 조차도 속이는 글이더라도,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걸 증명해낼게.

너를 지옥에서 구할 수 없을지 몰라도 지옥에서도 꽃이 피고 새가 지저귄다는 걸 증명해낼게.

이토록 형편없이 살아왔어도 조금이라도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걸 증명해낼게.

그래서 부끄러움도 염치도 모르고 나는 말할 것이다.

지켜봐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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