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는 경험하는가, 경험되어지는가?
그로부터 두 해가 지났다. 회사를 그만두면서 차를 반납했다. 이제 나에게는 남은것은 오토바이 뿐이었다. 사실 여러모로 오토바이는 차에 비해 편리한 교통수단이기도 하다. 도로에서 요리조리 쏙쏙 빠져나갈 수 있어서 차보다 더 기동력이 뛰어나며 연비가 좋아 주유비도 얼마 들지 않는다. 주차도 아무데나 할 수 있고 주차비도 무료다. 짐을 많이 실을 수 없지만 그래도 뒷자석과 사이드백을 활용한다면 혼자 필요한 만큼의 짐을 실을수도 있다. 단점이라면 추운날과 더운날 혹은 바람불거나 비오는 날처럼 기상의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한여름엔 어떻게든 탈 수 있어도 한겨울에 타는 것은 무척 고역이다. 그래도 방한에 신경을 쓴다면 가까운 거리는 어떻게든 타고 다닐 수 있다. 이 단점은 또 그것을 보완하고도 남을 만큼의 장점이 되기도 하는데, 그건 차를 타면서 알 수 없었던 바람과 대기의 흐름이나 향기 혹은 온기 같은 것들을 만끽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오토바이에는 차와는 다르게 많은 사람을 태울수가 없지만 그래도 한 사람은 태울 수 있으니 그것도 그거 나름대로 장점이다. 내 엉덩이와 등짝을 상대에게 무방비로 밀착시켜야 하기 때문인데, 이렇게 서로의 체온을 보듬는 자세로 덜덜 떨리는 오토바이에 몸을 싣고 쏘다니다보면 그 사람과 묘하게 친밀감이 생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친구와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아침 운동을 가고 있다. 친구에게 등을 맡긴 채 쌀쌀한 공기를 가르며 체육관과 수영장으로 향하는 길은 참 좋다. 처음부터 오토바이만 탔더라면 자동차의 안락함을 몰랐을텐데, 그래도 회사 다니면서 몇번 차를 이용했던적이 있어서 오토바이의 불편함을 친구가 느낄까 봐 미안하기도 했다. 그 친구와 몇번의 엎치락 뒤치락 하는 감정의 널뛰기를 하고 난 뒤면, 아직 아침잠이 가시지 않은 마음의 부침에다가 새벽녘의 깔깔하고 싸늘한 공기가 더해져서 괜시리 더 어색해질 때도 많았다. 그 친구는 나와 가장 날것의 감정을 공유하는 사이이기도 하고 나의 마음을 섬세하게 읽으려고 항상 애쓰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말이 없을 때에 가장 많은 말을 하고 있곤 했다. 그럼에도 그 친구와 오토바이를 타고 왕복했던 길이 수북해질수록 나의 작은 오토바이에 대한 마음도 변화하는 것을 느낀다. 오토바이를 좀 더 아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정비도 맡기고 고장난 핸드폰 거치대도 바꿨으며 세차도 해주었다. 주행할 때 엔진소리나 바퀴의 회전 같은 것에 주의를 기울이려 하고 타고 내릴 때에 상한 곳은 없는지 살피게 된다.
그 친구가 오토바이를 타고 싶다고 해서 몇 번 주행을 가르쳐 준 적이 있었다. 조심성이 많은 친구는 배우는 것이 더뎠다. 이리저리 부딪히고 깨지면서 배웠던 나로써는 그 친구의 조심스러움이 답답하기도 했지만 만약 내가 그 친구였어도 그랬을 것 같았다. 그 날은 날이 좋았다. 그 친구에게 직진하면서 기어 변속을 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는 친구가 주행하는 뒤를 따라 달렸다. 그 친구의 불안하게 비틀거리는 뒷모습 너머로, 키 큰 가로수의 라임색 이파리에 소금 입자같은 햇빛이 부서져 내리는 광경을 보았다. 뛰는 것을 멈추고 친구가 다시 이쪽 방향으로 오토바이를 돌려서 주행해오는 것을 바라보았다. 어정쩡한 포즈로 몸이 잔뜩 굳은 채 핸들을 쥔 뼈마디가 새하얘진게 보였지만 활짝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때 처음으로 나의 주황색 오토바이가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연습이 끝난 뒤 친구와 밥을 먹으며 그날의 연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근데 너가 타니까 주황색 오토바이 예쁘더라"
"네가 타도 예뻐" 친구는 내가 오토바이를 타고 있는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 신기하게도 사진 속 오토바이의 주황빛이 앙증맟고 귀여워 보였다. '짜요' 보다도 주황빛 감귤이 떠올랐다. 그 친구와 올해 여름 제주에서 삼박사일동안 여행을 했다. 주황색 햇살이 내리는 제주의 감귤밭을 보며 나의 오토바이를 떠올렸다.
사람들과 오토바이를 타고 이곳저곳 다녀 보았다. 헬멧에 부착하는 음성 송수신 장치 덕분에 라이딩 중에도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여러명의 친구들과 무리지어 일렬종대로 떼빙을 하기도 했다. 친구와 둘이서 대화를 하며 서울 시내를 쏘다니고 강화도나 마장호수 같은 서울 근교를 둘러보기도 하고 제주에서 렌트한 오토바이로 제주도 한 바퀴를 돌기도 했다. 마음이 맞는 사람과 대화를 하며 라이딩 하는 것은 또 다른 묘미였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때로는 친구의 등을 바라보면서, 때로는 뒤에 있는 친구의 시선을 느끼면서 같은 바람을 맞고 같은 풍경에 에워싸여 달리면 자동차나 버스로 같은 길을 달릴 때에는 느낄 수 없는 것들이 느껴진다. 뻔뻔한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외계인이 되어 낯선 지구별을 탐험하는 것 같달까.
오토바이에 몸을 싣고 하는 대화는 평소와는 다른 물결이 된다. 때로는 얼굴을 보지 않고 하는 대화가 어떤 안정감 같은 것을 주기도 한다. 그것이 다소 비겁한 성격이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좁은 헬멧 안에 울리는 목소리와, 그 날의 병아리 솜털같은 햇볕과, 적당한 습기를 머금은 미풍과, 파랗게 갠 하늘이 더해지면 씨앗이 뿌려졌던 자리에 심장이 움트고 적당히 영근다. 숨겨두었던 마음들이 천천히 개화하고 그 순간 그걸 보여줘도 될 것 같다는 믿음이 반짝 스쳐간다. 이 순간이 지나면 스러져버릴 눈송이꽃. 그것을 네가 받아든다. 너도 품 속에서 눈송이꽃을 꺼내 손바닥에 모아쥐고 건넨다. 꽃의 결정 무늬마다 투명하게 새겨진다.
오토바이와 나 단 둘이 여행을 다녀왔다. 대관령을 넘어 강원도 강릉과 동해를 지나 삼척에 당도한 뒤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가 경상북도 울진을 둘러봤다. 장거리 주행에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첫 날 400 km 주행을 끝내고 온 몸이 쑤셨다. 겨울이라 해가 일찍 떨어질 것이 염려되어 쫓기듯 했던 것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시속 90 km 이상으로 주행하는 긴 도로의 끝에 오토바이에서 내리면 손바닥과 손가락 마디에서 오토바이의 진동이 느껴졌다. 그 느낌이 불쾌했다. 기름이 잔뜩 뭍은 오토바이의 끈끈한 지문이 남은 것만 같아서였다. 출발할 때에만 해도 오토바이는 나에게 차가운 쇳덩어리와 다름 없었다. 이 녀석과 함께한 지 이제 4년이 되어가는데도, 그동안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라이딩을 하며 추억을 쌓았어도 그랬다. 심지어 이 여행을 계획하고 바로 며칠 전까지 나는 아팠다. 그래서 출발 날짜를 예정보다 하루 더 미루기도 했다. 영 정감이 가지 않는 이 주황색 녀석과 함께 단 둘이 그 멀리까지 여행을 다녀와야 한다는 사실이 퍽 부담스러웠나보다.
그럼에도 나는 꼭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명확히 설명할수는 없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나의 과거를 미워하지 않고 잘 보내줄 수 있을것만 같았다. 내가 여행을 떠날 거라고 말하자 친구가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같다고 했다. 체 게바라와 포데로사 그리고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오랜만에 Gustavo Santaollala 의 음반을 들었다. 먹먹함이 멍울처럼 번졌다. 사고 후에 입원했던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그는 나에게 CT 촬영 사진을 보여주었다. 까만 배경 위로 뢴트겐선에 의해 하얗게 표백된 뼈들과 회백색으로 물든 장기들이 유령처럼 놓여있었다. 의사 선생님이 데칼코마니같은 둥근 풍선모양 중 왼쪽 중앙의 검은 음영 부분을 가리키며 말했다.
"간에 멍이 든 거예요"
외상에 의한 간 열상을 그는 그렇게 설명했다. 외부 충격에 의해 출혈이 있었고 고인 피가 내부에서 굳으면서 피멍이 든 것이라고 했다. 비전문가인 나를 위해 그렇게 설명해 준 것이었겠지만 그의 말은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아서 그 사건과 거기에 달린 기억들을 떠올릴때면 나는 마치 사라지지 않는 멍자국을 만지는 것처럼 먹먹해지곤 했다.
오토바이에는 여러가지 얼굴이 있다. 어떤 사람의 다양한 모습을 보려면 함께 여행을 떠나 보아야 알 수 있듯이 오토바이도 마찬가지다. 도시에서의 오토바이와 산맥을 넘을 때의 오토바이와 해안도로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달릴때의 오토바이는 다른 얼굴과 감정을 가진다. 어쩌면 나의 표정이 달라졌기 때문에 오토바이도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어느새 늠름해진 이 녀석에게 의지하고 있었고 이 녀석도 왠지 나에게 의지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처음 출발할 때엔 음악을 들으며 라이딩을 했으나 중간부터는 껐다. 바람이 헬멧에 스며들어와 벽을 치고 들리는 메아리소리가 듣기 좋았다. 터널을 지날때 달라지는 울림소리와 대관령이나 태백산맥에서 느껴지는 공기의 온도가 새파랗고 푸른소리로 뭍어나는 것 같았다. 바닷가를 달릴 때에는 11월의 늠름한 파도가 철썩이는 소리가 짠내를 풍기며 들려왔다. 무엇보다 오토바이의 배기음이 좋았다. 비싸고 좋은 오토바이나 차에 한참을 못 미치는 싸구려 배기음이라고만 생각했기에 못미더운 소음에 불과하던 소리였다. 그러나 처음으로 이 녀석의 숨소리가 좋았다. 가래끓는 골초의 숨소리 같다고 느꼈던 그 소리가, 밭은 숨을 뱉으며 달리기를 하던 어느 날의 숨소리 같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녀석의 마음도 많이 짓물렀을 것 같다고. 쓰다듬으면 여기저기 멍울 자국이 만져질것만 같다고.
마지막 날 울진에서 태백시까지 80 km의 일차선 직진도로를 달렸다. 반대편 차선에 비해 내가 가는 차선에는 차가 거의 없었다. 사위는 적막했고 나는 금강송이 장대하게 펼쳐진 산맥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곳을 지나며 마음이 고요하게 가라앉고 맑은물처럼 개이는 것을 느꼈다. 오토바이와 내가 한 몸이 된 것 같았다. 태백시에 도착해서 시동을 끄고 오토바이에서 내려섰다. 하늘은 맑았고 공기는 쾌청했고 선명하고 텅 비어 있었다. 산맥과 폐탄광촌 사이 웅덩이처럼 고여있는 도시였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의 소설의 배경이 되기도 하였던 이 도시가 나에게 또 다른 멍울이 되었다. 피멍이 까맣게 되고 푸르스름해지고 다시 노래져 노을이 된다.
어릴적 가끔 도달하기도 하였던, 현실 너머로 드리워져 있던 반투명한 벨벳 장막 너머로 보이던 그 세계. 울렁거리며 흐르는 물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듯 굴절되고 일렁이는 세계가 있다. 멀미와 현기증과 죽을 것 같은 외로움도 함께 거기에 있다. 오토바이를 타면서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집에 돌아와보니 장막을 잠시 걷고 그 세계의 틈에 새어들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려운 나머지 완전히 젖어들지 못했지만, 그곳에 머리끝까지 담그고 나면 고통스러운 고독도 평안함이 되리라는 어설픈 예감같은 것을 간직하고 돌아왔다. 누적 주행거리 10,000 km 을 넘긴 대견한 녀석은 다시 얌전히 잠들어 있다.
내 오토바이의 주황색 피부는 여전히 촌스럽고 싸구려 같았던 아빠의 주황색 경량 패딩과 "짜요" 를 연상시키지만 나는 이제 그게 밉지만은 않다. 오히려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애처롭다. 집으로 돌아와 오토바이에서 내렸을 때엔 더 이상 손에서 진동이 느껴지지 않았다. 익숙했던 동네와 작은 원룸이 낯설었다. 짧지만 길었던 여행길, 그 길 위에서. 나는 오토바이가 되었던 것일까 오토바이가 내가 되었던 것이었을까.